시리얼, 중장비, 의료계 등 각 업종 파업 돌입
열악한 업무환경·저임금 개선, 인력 충원 요구
"팬데믹 후 노동자들 '새로운 지렛대' 휘둘러"
미국 노동시장에 ‘파업’ 바람이 불고 있다. 10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노동 현장을 떠나 거리로 향했거나, 파업 채비에 나섰다. 열악한 근무 여건과 저임금을 개선하라는 게 주요 요구 사항이다. 게다가 이런 목소리는 ‘회사 성장’ 구호에 묻혔던 종전과 달리, 점점 힘을 얻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일할 사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인데, 일터를 떠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으면서 남은 이들의 ‘입김’이 강해진 영향이다. 미국 노동 시장이 ‘노동자 우위’로 재편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7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노동자 파업은 미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상업용 트럭 제조업체 볼보부터 유명 시리얼 제조업체 켈로그, 농업·건설용 중장비 업체 존디어, 미국 의료장비 업체 카이저, 뉴욕과 매사추세츠주(州) 의료계에 이르기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블룸버그통신 분석 결과, 8월 이후에만 약 40개 사업장이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다.
할리우드 산업을 이끄는 ‘국제극장무대종사자연맹(IATSE)’ 조합원 6만 명도 주요 제작사를 상대로 128년 만에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가 이날 가까스로 협상을 타결했다. 앞서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지난 13일 “IATSE 등 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기업도 포함할 경우 노동자 10만 명이 거리로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달을 ‘스트라이크토버(파업+10월)’라고 불렀을 정도다.
요구는 단 하나, ‘열악한 업무 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여파로 너나 할 것 없이 회사를 떠나면서 현장 일손이 크게 줄었다. 남은 사람들의 격무는 당연한 수순이다. 예컨대 켈로그 노동자들은 하루 16시간 근무를 감내해야 했다.
동료의 빈자리까지 채웠건만, 노동의 대가는 짰다. 미국이 코로나19 경기 침체를 극복하며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에 불이 붙었지만, 임금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가 5.4% 오르는 동안 미국 노동자 평균 시급은 전년 대비 4% 인상에 그쳤다. 반면 기업들은 역대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늘어난 파업은 ‘정당한 대우’와 ‘노동 대가’를 못 받았다고 여긴 이들이 자신을 대변할 창구로 노조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간 미국 민간 부문에서 노조 입지는 약했다. 지난해 미국 노동자 중 노조원의 비중은 10.8%였다. 1983년(20.1%)과 비교하면 반 토막이다. WSJ는 “일부 제조업체가 노조 불모지 남부로 공장을 옮기고 노동 시장이 느슨해진 점도 노조원 수 감소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인력을 찾는 기업은 늘어나는데, 열악한 일자리 환경과 넉넉한 실업급여 영향으로 직장을 떠난 노동자 수백만 명은 일터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올해 8월 기준 미국의 노동자는 작년 1월 코로나19 대유행 직전보다 497만 명이나 줄었다.
당장 일손이 부족한 회사로선 노동자의 목소리를 무시하기도 힘들다. 발언권이 점점 강해지면서 노조의 파업 강행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블룸버그는 “감염병 이후 노동자들은 임금 등 협상에 있어 자신들이 갑자기 우위를 점하거나, 최소한 더 견고한 기반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WP는 “물류 대란 등 여파로 회사가 직원을 교체하기 어려워지면서 노동자들이 ‘새로운 지렛대(파업)’를 휘두르게 됐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WSJ는 “결국 소비자 가격을 올리고 생산을 둔화시켜 잠재적으로 미국 경기 회복을 저해할 수 있다”며 “이미 공급망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더욱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경영진이나 경제 매체 등에서 나오는 주장이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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