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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의 슬픈 '집 구하기' 무용담

입력
2021.10.19 00:00
수정
2021.10.19 00:3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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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흔히 투덜거리며 살지만, 그래도 선생이 참 좋은 직업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졸업한 지 오래된 친구들이 불쑥 소소한 안부를 전해올 때가 그렇습니다. 제 기억 속엔 어리숙한 스무 살 무렵으로 새겨져 있는 친구들이 자못 어른 행세를 하며 찾아와 일터 이야기며 가정 이야기를 나눌 때 느끼는 뿌듯함과 대견함은 선생이 아니라면 쉬이 느끼기 어려울 복락입니다. 특히 청첩장을 들고 자신의 배우자와 함께 오는 친구들은 인생의 한 절정기를 지켜볼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합니다.

그런데 최근 수년 사이 결혼 소식을 전하는 친구들로부터는 거의 예외 없이 집 구하기 전쟁의 무용담을 듣습니다. 얼마 전 만난 예비부부는 전세대출이 막혀 잔금을 치를 수 없을 뻔한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대출을 얻을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주었는데, 며칠 전 본 007영화의 액션신을 압도하는 긴장감이 가득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커피 마시는 것을 잊을 정도였으니까요.

무용담은 종류도 많습니다. 빌라사기로 두 사람이 모아둔 돈을 다 날리기 직전 탈출한 이야기,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뚫기 위해 했던 은행 공략의 이야기도 극적이었습니다. 예비부부들은 이런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씩씩하고 밝습니다. 고통과 공포도 의연히 견디게 하는 젊음과 사랑의 힘이라니! 그러나 신축에서 구축으로, 아파트에서 빌라로 심지어 원룸으로 목표를 바꾸고, 수도권 지하철의 종점을 향해 점점 더 멀어지면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는 저는 그들만큼 씩씩하기 어렵습니다.

아득하고 미안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가 줄어든다고, 저출산 노령화로 나라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자못 걱정의 포즈를 취하지만, 사실 우리가 만든 세상은 젊은 세대들이 결혼해서 살 작은 둥지를 구하려면 저토록 안간힘을 쓰며 눈물 삼켜야 하는 곳인 겁니다.

무릇 청춘은 본디 궁핍합니다. 우리도 가난한 청춘이었다고, 돈이란 열심히 일하면서 모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세대는 어느 정도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조금씩 돈을 모아 안정된 주거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결혼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안정된 주거를 어쩌면 영원히 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신기루로 여기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정부가 젊은 세대의 주거문제를 아예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 겁니다. 생애최초주택 특별공급처럼 젊은 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로 불리는 분이 우리나라 집값이 홍콩에 비하면 그리 높은 것은 아니라고, 혹은 동아시아 사람들은 농경민족이라 집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을 펴내는 것을 보면 의심이 싹틉니다. 그가, 혹은 높은 자리에 계시는 분들이 정말 젊은 세대의 주거문제를 진실하게 마음에 담았던 것일까요?

저는 그 쓸쓸한 무용담을 전해주는 친구들에게 가까스로 힘을 내서 말합니다. 우리 나이 든 세대가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을 꿰차고 앉아 있지만, 대신 청춘들처럼 미래를 살펴볼 능력은 젬병이라고요. 그대들이 미래에 중요해질 자산을 꿰뚫어보고 먼저 점유한다면 세대 간의 부는 이내 역전될 테니 힘을 내라고요. 격려로 시작한 말이지만, 이젠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소망이 되어갑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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