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의 원호연 감독
강원 산골에서 홀로 살며 소를 키운다. 소 여물을 주고 외양간을 청소한 후 채소를 다듬는다. 하루 일과를 보면 ‘촌부’라는 수식이 떠오른다. 다큐멘터리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20일 개봉) 속 68세 임선녀 할머니는 평범하다. 하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이 적지 않다. 그의 일상을 다룬 ‘한창나이 선녀님’이 특별한 이유다. 원호연(46) 감독은 별스럽지 않은 할머니의 삶을 통해 비범한 순간들을 포착한다. 15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원 감독은 “할머니가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 할머니는 3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 18세에 결혼해 50년을 산 배우자였다. 자녀들은 모두 결혼해 도시에서 산다. 하늘과 맞닿은 듯 높은 산골 허름한 집에서 홀로 지낸다. 그는 소를 키우고 작물을 키우는 등 바쁜 와중에도 공부에 매진한다. 뒤늦게 한글을 깨치기 위해서다. 한글 학교에 가기 위해 매번 2만8,000원 정도 드는 택시비를 아끼지 않는다. 주경야독으로 분주해도 꿈을 하나 더 이뤄가고 있기도 하다. 자신만의 안락한 집 짓기이다. 제목에 ‘한창 나이’가 들어간 이유다. 83분 동안 할머니의 일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삶에 대한 의욕이 강하게 일어난다.
원 감독은 당초 한글 학교 할머니들 이야기를 기록하려 했다. 여러 할머니들 이야기를 듣다 임 할머니 사연에 눈길이 갔다. 1년 넘게 할머니를 지켜보며 삶을 기록했다. 영화 속에는 강원 산골의 사계가 함께 담겨있다.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걸린 시간은 약 4년. 원 감독은 “다큐멘터리가 꼭 중요한 사건, 중요한 인물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재미있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도 말했다.
원 감독은 SBS ‘VJ특공대’로 방송계에 입문했고, KBS1 ‘인간극장’ 작업을 하면서 다큐멘터리 작업에 빠져들었다. ‘한창나이 선녀님’은 그의 세 번째 다큐멘터리영화다. 그는 “‘VJ특공대와 ‘인간극장’을 통해 다큐멘터리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고, 관객이 즐겨 볼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촬영자와 촬영 대상자의 관계가 중요하다. 촬영 대상자는 카메라를 의식하기 마련이고, 자신의 일상을 다 보여주길 원치 않는다. 촬영자는 촬영 대상자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모두 담고 싶어한다. 둘 사이엔 미묘한 갈등과 신경전이 있기 마련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임 할머니는 달랐다. 원 감독은 “처음부터 흔쾌히 촬영을 허락해줬고, 거리를 두지 않았다”며 “따스함과 배려를 매번 느꼈는데 그 감정을 관객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겨울 밤 눈이 살랑거리듯 휘날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원 감독은 “할머니 살아가시는 모습이 마치 동화 같아 동요 ‘눈’의 ‘하늘나라 선녀님들이…’라는 가사가 떠올리며 넣은 장면”이라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의 삶이 판타지 같아서 영화가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강원 삼척이라고 지역을 영화 속에 명시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영화는 9월 열린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첫 상영됐다. 임선녀 할머니는 영화제에서 자신이 나온 영화를 처음 관람했다. 원 감독은 “영화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이라 큰 스크린에 자신의 모습이 나온 걸 보고 좀 놀라셨으면서도 기분 좋아하셨다”고 전했다. ‘한창나이 선녀님’은 DMZ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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