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안전망 고용보험 가입자에 한정
"재난실업수당 지급 등 대책 필요"
A씨 회사는 지난달 직원들을 불러모아 종이 한 장씩을 나눠줬다. 종이엔 '무급휴직 동의서'라고 적혀 있었다. 코로나19로 사정이 어려우니 3개월 정도 무급휴직에 들어가야 한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작년 코로나19 초기 때에 이어 두 번째로 받은 동의서였다. A씨는 "올해는 회사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무급휴직을 강요해서 항의했더니 이젠 노골적으로 괴롭히고 있다"며 "계속 거부했다가는 실업급여도 못 받고 쫓겨날 판"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2년 가까이 이어지는 사이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있고 기약 없이 일을 쉬어야 하는 이들도 생겼다. 소득이 줄고 일터가 사라진 노동자가 기댈 곳은 새 직장을 찾는 사이 생계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 줄 실업급여나 휴업수당과 같은 제도이지만, A씨 같은 비정규직에겐 '그림의 떡'이다. 사회안전망이 정작 고통에 내몰린 취약계층은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임금·비정규직이 실직 5배
17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이후 실직을 경험한 비정규직은 32%에 달했다. 정규직(6.8%)의 5배에 육박한다. 비자발적인 휴직을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30%, 소득 감소를 경험한 비중은 절반이 넘는 53.5%로 집계됐다.
실직 경험의 경우 사무직(8.8%)보다는 서비스직(28.4%)이, 300인 이상 대기업(9.0%)보다는 5인 미만 사업장(26.6%)이, 월급 500만 원 이상의 고임금노동자(5.4%)보다는 150만 원 미만의 저임금노동자(28.3%)가 3~5배 높았다.
코로나19 실업 고통은 일터의 약자들에게 집중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보호 장치는 턱없이 부족했다. 실직한 비정규직 노동자 중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22.7%, 휴직당한 비정규직 중 휴업수당을 받은 사람은 18%에 불과했다. 정규직의 48.8%가 실업급여를 수급하고, 43.3%는 휴업수당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2배 넘게 차이가 난다.
일자리 위기 양극화 갈수록 심각
정규직도 실업급여 수급 비중이 절반을 넘지 못하는 것 역시 문제지만, 유독 비정규직이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로 내몰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회사가 휴업수당 지급 등을 위해 정부로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거나 실직한 노동자가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은 대부분 이 고용보험제도 밖에 있다. 실제 이번 설문조사 전체 대상 중 고용보험 비율은 22.8%에 그쳤다.
취약계층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이 일자리 위기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4월 실직 경험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을 때는 정규직이 3.5%, 비정규직이 8.5%였다. 당시 2.4배였던 격차가 약 1년 반 뒤 5배까지 벌어졌다. 권두섭 변호사(직장갑질119 대표)는 "이미 코로나19 사태가 1년이 한참 지났기 때문에 누가 소득이 줄었고 실직을 했는지 관련 기관에서 다 파악이 가능할 것"이라며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취약 노동자들을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재난실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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