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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탐욕이 불러온 코로나, '인구 균형'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21.10.19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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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 단위로 화요일 연재합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8일(현지시간) 인권단체 회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희생자를 상징하는 흰 깃발을 줄에 걸고 있다. 브라질은 이날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60만 명을 넘어섰다. 누적 사망자가 60만 명을 넘어선 나라는 미국에 이어 브라질이 두 번째다. 연합뉴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8일(현지시간) 인권단체 회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희생자를 상징하는 흰 깃발을 줄에 걸고 있다. 브라질은 이날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60만 명을 넘어섰다. 누적 사망자가 60만 명을 넘어선 나라는 미국에 이어 브라질이 두 번째다. 연합뉴스

<27>코로나19의 교훈 ‘인구 균형과 지속 성장’

‘위드 코로나’가 시작될 모양이다. 불안·좌절로 점철된 균의 역습에 맞선 조심스러운 공존실험이다. 종식은 아니나, 이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바이러스의 생존력·확장세는 놀라울 따름이다. 한껏 나약해진 인간·사회의 허술함을 확인시켰다. 반성과 대응에서 배울 교훈은 한둘이 아니다.

인류사도 역병의 공격과 인간의 대처로 쓰였다. 가능하면 근본적인 접근법이 요구된다. 언제든 꿈틀댈 제2, 제3의 자연역습에 맞서기 위함이다. 이번에도 엄청난 수준·범위의 유무형 충격으로 사회 전체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수혜그룹이 있었지만, 절대다수는 천문학적인 경제·심리 난관에 맞닥뜨렸다. 그간의 삶을 규정했던 패러다임도 설 땅을 잃는다. 많은 게 변했고, 또 바뀔 터다. 상식 파괴다.

문제는 앞으로다. 백신보다 더 빨리 진화하는 균의 변모술은 확인됐다. 반복을 막는 우선접근은 인간분석일 수밖에 없다. 탐욕과 개발, 그리고 재난의 연결고리다. 그 원점에 인간이 있다. 지속 가능한 인구해법만이 전염병에서 비켜설 지름길이란 얘기다.

균에 맞선 인류 ‘위기와 대응의 공존역사’

인구와 질병은 불가분의 관계다. 특히 전염병은 인구변화와 밀접하다. 의학계는 역병 원인을 인간의 무분별한 영역 확대가 부른 생태계의 자연 질서 파괴에서 찾는다.

인간이 균의 공간까지 침범하며 생태계의 자연 균형을 깼다는 얘기다. 전염병만이 아니다. 인간탐욕은 빈번해진 이상기후를 말할 때도 통용된다. 가뭄·홍수·산불·폭염 등 전에 없던 이상현상은 인구문제, 즉 인간욕구로 해석해야 설득적이다.

즉 자연 파괴가 심해질수록 질병 창궐도 비례한다. 환경결정론을 내세운 '총, 균,쇠'는 농경 정착·집단생활·인구 증가·토지 부족·전쟁 발생·이동 확대·질병 전파의 귀결을 주장한다.

더 많은 인간의 더 높은 행복에 맞춘 인구집단의 크기·숫자가 고밀도형 정주생활과 질병 발생을 부추겼다고 본다. ‘거대도시=세균천국’의 논리다. 반대의 자연자정도 균에서 시작한다. '전염병의 세계사'는 ‘질병 발생→인구 감소(인구 이동)→노동 부족→기근 심화→전쟁 발발’을 낳는다고 했다. 실제 인류사는 전염병에 맞선 응전사다. 또 대부분은 졌다. 문명을 몰살시킨 전염병도 주기적으로 출현했다. 갑자기 찾아왔고, 언제나 패배했다.

사례는 많다. 페스트는 6세기 로마제국을 강타해 도시 인구의 40%를 몰살시켰다. 14세기 유럽인구의 3분의 1 이상(2,500만 명)을 앗아간 역병도 페스트였다. 이동·교역이 늘자 균은 더 빨리 넓게 퍼져갔다. 16세기 2,500만의 아즈텍문명이 스페인발 천연두 탓에 250만으로 쪼그라든 것도 충격적이다.

피사로의 스페인군 168명이 8만 잉카군대를 이긴 것도 천연두 때문이었다. 매독은 유럽사에서 빼놓기 힘들다. 페니실린 개발 때까지 유럽인구의 15%가 매독으로 사망했다. 몇 달 만에 발생해 어떤 질병보다 많은 목숨을 앗아간 건 독감이다. 1918년 스페인독감이 유명하다. 추정 사망만 최소 2,000만 명에서 1억 명까지 거론된다. 전염병이 꼭 악영향만 미친 건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도 낳았다. 어쩌면 시대변화를 불러온 뉴노멀의 창시자다.

페스트의 유럽 강타는 ‘중세→근대’로 넘어오는 발판이 됐다. 대량 사망·노동 부족으로 협상력이 커진 농업노동자가 장원제의 봉건주의를 흔들었다. 대항해 등 제국주의·식민주의도 확대됐다. 또 천연두로 남미를 정복한 구대륙은 유럽의 교환화폐였던 금은의 대량 공급지였다. 화폐 증가는 물가 상승·상업 발전을 통해 자본주의의 씨앗이 됐다. 풍요시대는 시민정신·계몽사상으로 연결되며 프랑스혁명 등 시대변화를 낳았다.

스페인 독감이 퍼졌던 1918년 당시 미국 캔자스주 임시병동에 수용된 독감 환자들. 위키피디아

스페인 독감이 퍼졌던 1918년 당시 미국 캔자스주 임시병동에 수용된 독감 환자들. 위키피디아


과부하 생태계 구원할 인구학적 균형셈법

남들보다 더 빨리 많이 크게 가지려는 인간욕망은 자연스럽다. 단 많은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즉 욕구실현적인 인류사와 자연대항적인 전염병은 중첩된다. 절체절명의 충격 위기와 전화위복의 도약 기회를 동시에 던진다. 선택한다면 후자 일 수밖에 없다.

인구의 양적·질적 변화가 파괴적인 지구 과부하보다 건설적인 공존생태계로 연결되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이대로면 지속 불능이다. 인구변화발 게임원칙이 지금의 세대 전쟁처럼 이기·탐욕적이라면 미래는 어둡다. 약탈적 자본셈법이 야기한 기후변화는 벌써 또 다른 전염병의 출현을 예고한다.

자연·미래를 위한 겸손·배려가 필요하다. 이는 코로나19가 인간에 던진 강력한 화두다. 결국 착취가 아닌 공존을 택하는 게 좋다. 인구구조도 균형과 지속을 위한 방향으로 전환·모색하는 게 권유된다. 적정인구를 위한 균형 유도로 정책 방향을 바꾸자는 얘기다. ‘인구+균형=지속 가능’의 셈법 도출이다.

과도한 탐욕(원인)과 치우친 쏠림(결과)은 경계 대상이다. 지구자원은 한정적이다. 누군가의 이득은 누군가의 피해인 제로섬에 가깝다. 인간의 편함은 자연의 불편함이자 현재의 이익은 미래의 손실이다.

또 기성그룹의 자원 독점은 후속 멤버의 기회 상실일 수 있다. 근로소득의 불안 증가와 불로소득의 기대 확대도 지속 불능의 인구변화를 심화시킨다. 도시 집중과 한계농촌의 이극분화도, 고령 증가와 청년 감소의 대비 현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인구구조를 위한 리밸런싱(Rebalancing)이 중요하다. 유한한 지구자원과 무한한 인간 욕구를 재조정해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차원이다. 인구구조의 변화 흐름도 지속 가능성에 총력을 기울일 때 쏠림보다 균형으로 다가선다.

역병 공격이 자연 저항의 선발대라면 출산 포기는 미래 인구의 생존술일 수 있다. 겉보기엔 후속세대의 패배처럼 보이나, 실은 자기인생의 승자일 수 있다. 고생길의 가족보다 나 홀로의 앞날이 편한 법이다. 세대 단절의 피해는 불균형을 잉태한 쪽으로 향한다. 자연을 파괴한 인간에, 미래를 당겨 쓴 현재에 향한다. 전염병의 교훈처럼 자승자박의 딜레마적 자충수를 회피할 때다.


전염병의 역습을 막을 신경제학의 출현

자본주의는 인구변화와 밀접한 인과·상관성을 갖는다. 자본·토지와 함께 노동은 3대 생산요소임과 동시에 인구는 효용 극대화의 최종소비도 관할한다. ‘소비=생산=인구’인 셈이다.

만고불변은 없듯 자본주의는 빈부 격차처럼 곳곳에서 고장이 났다. 균형감을 잃은 독주자본의 탐욕 탓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모두를 넘어뜨린다는 점에서 자본의 반성·제안은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경제학의 출현을 뜻한다. 당장 인간의 합리·효율성도 재구성에 돌입했다.

250년 자본주의가 설파한 절대학설이 먹혀들지 않거나 설득력이 낮아진 경우가 늘었다. 그 대안 실험이 요컨대 행동경제학·생태경제학이다. 인간행동을 보니 자본주의 교리처럼 이성을 갖추고 이상을 향하는 합리성이 누락·결여된 사례가 많아서다. 둘은 모두 단편적인 수익 극대에서 종합적인 사회 진화로 시선을 확장했다. 성장관점을 이용·착취에서 동반·공생으로 전환한다. 이때 배려 주체와 대상은 ‘자본→지구’와 ‘현재→미래’, 그리고 ‘기득→후세’로 요약된다.

자본은 반성에 들어갔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란 단어처럼 이해관계자를 위한 비중 확대로 무게 중심을 옮긴다. 내로라하는 거대기업도 고개를 끄덕인다. 당장의 단기이익은 줄어도 길게는 생존 이상의 성장동력이라고 본다.

세계사회(UN)도 지속가능개발목표(SDGs-17)를 통해 경제·사회·환경의 통합 해결이야말로 균형 회복의 우선과제로 강조한다. 정부도 경영목표에 지속 가능성을 반영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코로나19는 인구변화의 균형 회복에 시간이 없음을 잘 보여줬다. 인구 이슈가 지구 파괴의 근원인데도 승자 독식의 쏠림체계만 고집하면 지속 가능성은 없다. 총체적 대타협과 실질적 자구안이 절실하다. 자본의 반성처럼 인구의 균형 회복도 그 노하우를 학습·차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인구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균형 파괴적인 삶의 현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도시↔농촌’ ‘고령↔청년’ ‘남성↔여성’ ‘정규직↔비정규직’은 물론 ‘자본↔노동’ ‘근로소득↔불로소득’ ‘자가↔임대’ ‘급부비↔보험료’ 등 당면한 불균형의 세부 이슈 전부 해당된다. 지속 가능성에 주목한 신경제학처럼 생산·소비로 사회구조를 떠받치는 인구영역도 균형적인 뉴노멀을 찾아야 할 때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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