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기업 "급격한 에너지 전환이 불균형 초래"
"에너지 전환 속도 못 낼 경우 위기 반복" 주장도
EU "화석 연료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경종"
‘탈(脫)탄소 정책’은 성급한 선택이었나. 최근 탄소를 대거 내뿜는 화석연료 공급난으로 에너지 값이 폭등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어둠 속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글로벌 에너지 대란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충분한 준비 없는 ‘탄소중립(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은 단계)’ 정책이 화를 불렀다”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못 내고 주저앉으면 향후 위기는 더 커질 것”이라며 이참에 아예 화석연료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에너지 위기 진단과 해법을 두고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세계 각국의 청정에너지 정책도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세계 곳곳에서 ‘탈(脫)석탄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부분 출처는 각 나라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 때문에 손실을 보고 있는 글로벌 에너지 회사다.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의 패트릭 푸야네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한 국제 행사에서 “급격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 시장 불균형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각국 정부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며 화석 연료 사용을 줄였고, 그 결과 투자자들도 손을 떼면서 지금의 에너지 위기가 초래됐다는 말이다.
영국 정유업체 BP도 힘을 보탰다. 버나드 루니 CEO는 “공급은 사라지는데 수요가 그대로라면 결과는 딱 하나, 가격 상승뿐”이라며 “단순히 공급원만 바꾸려 하면, 향후 전력 공급 시스템의 불안정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후변화 위기가 심화하면서 석탄과 석유 등은 ‘악당’으로 인식됐다. 유럽은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석탄 발전소를 무더기 폐쇄했다. 미국도 올해 1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203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2005년 대비 절반 이하로 감축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친환경 에너지 도입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이상기후 현상이 급증하면서 청정 에너지는 줄어들었고, 석탄과 천연가스 가격은 끝없이 상승했다. 겨울을 앞둔 지금, 전력난 공포는 극에 달하고 있다.
사실 ‘탄소 중립’의 방향성에는 큰 이견이 없다. 문제는 속도다. 각국이 신속한 목표 달성만을 위해 부작용을 줄일 대안 없이 기존 발전원(석탄, 석유 등)을 대폭 줄인 탓에 원자재 값이 폭등하는 ‘그린플레이션’으로 번졌다는 게 속도조절론자들의 주장이다. 심지어 “화석 연료의 복수”(티에리 브로스 파리정치대 교수)라는 지적도 있다. 당분간은 화석연료와의 공존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다른 옵션이 실행 가능해질 때까지는 화석 연료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당장 가까운 미래에 가스와 석탄, 원자력을 이용하지 않으면 국가가 마비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오히려 더 강력한 탈탄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보고서에서 “각국 정부의 기후 대응 노력은 파리협약 목표를 충족하는 데 충분치 않다”며 “청정 에너지로의 전환에 전념한다는 뚜렷한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빠른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시장이 ‘격동의 시기’를 맞을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를 늦출 경우, 오히려 △지속적인 대기 오염 노출 △잠재적인 가격 급등 충격 등 위험이 더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유럽연합(EU)도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카드리 심슨 EU 집행위원회 에너지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에너지 대란은 ‘화석 연료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분명한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2050년까지 유럽 가스·수소 시장의 탈탄소화 조치를 각국 지도자들에게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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