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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짓는다더니 오피스텔... 시민 우롱 신세계에 휘둘리는 울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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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짓는다더니 오피스텔... 시민 우롱 신세계에 휘둘리는 울산시

입력
2021.10.1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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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2013년 부지 매입 후 8년째 백화점 건립 연기
지난 6월 1440가구 대형오피스텔로 돌연 사업 계획 변경
"주민 우롱" 반발… 부족한 행정력 질타 목소리도


지난 12일 신세계 이마트 본사 앞에서 김진구 바르게살기운동 울산중구협의회 회장이 울산 혁신도시 상업시설 건립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울산 중구 제공

지난 12일 신세계 이마트 본사 앞에서 김진구 바르게살기운동 울산중구협의회 회장이 울산 혁신도시 상업시설 건립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울산 중구 제공


국내 굴지의 유통기업 신세계가 울산혁신도시에 대형 백화점을 짓겠다는 당초 계획을 8년 만에 뒤집고 대규모 오피스텔을 짓겠다고 나서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신세계를 향해 대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수차례 계획변경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울산시와 중구에 '기업 눈치보기'가 아닌 '시민우선 행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전에는 아트앤사이언스, 창원에는 스타필드, 울산에는?

지난 8월 대전에 신세계백화점 13개 점포 중 세 번째, 중부권에선 최대 규모인 '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가 문을 열었다. 올 연말 경남 창원에는 축구장 34배 크기에 달하는 스타필드가 착공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 지역보다 훨씬 일찍 백화점 건립 이야기가 오갔던 울산은 8년째 진전이 없다. 늦어지는 건 둘째 치고 신세계 입점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 이미 혁신도시 노른자 땅까지 부지로 내준 울산시 입장에선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참다못한 울산 지역 주민들은 지난 6일부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근무하는 서울 성동구 이마트 본사 앞에서 릴레이식 상경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2일 시위에 참여한 김진구 바르게살기운동 울산중구협의회 회장은 "올해 1, 2분기 역대 최대 영업실적을 올리며 다른 지역에는 쇼핑몰을 잇달아 열면서 울산만 안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백화점 짓겠다더니 오피스텔

사건의 발단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세계는 '울산판 센텀시티'를 만든다며 2013년 5월 울산 중구 혁신도시 특별계획구역 내 부지 2만 4,332㎡를 555억 여 원에 매입했다. 2016년 2월에는 중구와 2019년까지 백화점을 건립하는 내용의 업무협약도 맺었지만 약속한 기일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건립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지지부진하던 사업은 지난해 10월 지하 7층, 지상 49층 연면적 33만 6,000㎡ 규모의 복합상업시설을 짓겠다는 신세계측의 '울산 부지 개발계획' 로드맵이 공개되면서 탄력을 받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신세계는 다시 지하 1층, 지상 49층, 1,440세대 규모의 오피스텔을 짓겠다고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 가운데 상업시설은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3개 층으로 면적으로 따지면 전체 6% 정도인 2만1,780㎡에 불과하다.


13일 오전 울산시 중구 혁신도시 일대에 신세계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박은경 기자

13일 오전 울산시 중구 혁신도시 일대에 신세계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박은경 기자


백화점 건립만 믿고 주변 상권에 투자한 투자자들과 지역발전을 기대한 지역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신세계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고, 오피스텔 건립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은 한 달여 만에 5만 명을 돌파했다. 울산건축사협회와 울산공인중개사협회, 울산혁신도시노동조합 대표자 협의회 등 각종 단체는 "백화점을 짓든지 아니면 부지를 반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을 의식한 듯 신세계는 지난달 16일 또 한 번 개발계획을 수정 발표했다. 상업시설을 5개 층으로 늘리고, 트레이더스 등 신세계그룹이 보유한 유통시설과 함께 어린이 극장, 영화관, 서점, 아쿠아리움 등 편의시설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지난 6월 발표했던 것에 비해 2배가량 큰 규모로 현대백화점 울산점의 1.6배, 롯데백화점 울산점의 1.4배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상업시설을 울산 최대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매장전용 면적인지 상업시설 전체 면적인지 명시하지 않았고, 계획 자체도 오피스텔에 중점을 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한 자생단체 관계자는 "울산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땅이 장사꾼을 배불리기 위한 땅으로 전락했다"며 "신세계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불매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발끈했다.


신세계 울산 혁신점 조감도. 신세계그룹 제공

신세계 울산 혁신점 조감도. 신세계그룹 제공


기업 '눈치보기'에 헛도는 행정력

수차례 계획이 뒤집히는 동안 보여준 울산시와 중구의 행정력도 문제로 꼽힌다. 실제 신세계 측은 보란 듯이 백화점 부지 개발계획을 지자체가 아닌 지역구 의원이나 보도자료를 통해 밝혀 왔다. 지난달 상업시설 확대 계획 발표 역시 마찬가지다. 신세계는 언론에만 수정한 개발 계획을 알렸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중구청이 역으로 기자들에게 자료를 요청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신세계 대표의 국정감사 출석이라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급조한 개발 계획"이라며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이를 언론을 통해 발표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기대를 모았던 지난달 24일 중구청장의 이마트 본사 항의 방문도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보여주기식에 그쳤다. 한 달 가량을 준비해 상경했지만 정작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해외 출장을 떠나 만남이 성사되지도 못했다. 한 주민은 "울산시가 신세계 눈치를 보는 것 같다"며 "짜임새 있는 행정력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담당부서 관계자는 "지구단위계획변경이나 건축허가권 등으로 일부 통제는 가능하지만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을 마음대로 하기는 어렵다"며 사실상 신세계 제재에 대한 한계를 인정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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