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점토에 풍덩 담가 구운 '덤벙분청사기'...그 안에서 인생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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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점토에 풍덩 담가 구운 '덤벙분청사기'...그 안에서 인생을 보다

입력
2021.10.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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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동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편집자주

우리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 발견들을 유적여행과 시간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음미한다.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담겨진 흥분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함께 즐겨보자.

<10> 전남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도요지

전남 고흥 운대리 7호 가마에서 출토된 덤벙분청 그릇. 전면이 백토 분청으로 덮여 백자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 도자기 중에서 분청사기는 대단히 한국적인 도자기술 개발의 혁신일 뿐 아니라 우리 정서에도 딱 맞는 예술유산이다. 정교한 미(美)의 도자로 청자를, 여백의 미로 백자를 높이 평가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 마음이 푹 빠질 정도로 야성미가 돋보이는 것은 바로 분청자기, 그중에서도 덤벙분청이다. 특히 붓으로 휘익 돌려서 문양을 만든 귀얄분청을 보면 세상 사는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듯한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분청도자기 가마는 전국 곳곳에 있지만, 각각 독특한 기술적, 문화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남 고흥의 운대리 도요지 유적도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규모 요장이다. 국가사적 519호로 지정된 이후에도 발굴조사가 간헐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고흥 운대리 가는 길

고흥 가는 길에 만나는 남해안의 섬들과 잠자는 듯한 파도.

전남 고흥(高興). ’높이 흥하다‘라는 뜻인데 고려 때 이 지역 주민이 원나라에 통역으로 따라가 공을 세워서 얻은 이름이란다. 그런데 그 당시에 우리 우주선 나로호나 며칠 뒤에 쏘아 올릴 누리호가 이곳에서 발사될 줄 알았던 것일까? 오래된 지명이 오늘날 산업을 암시하는 것을 보면 조상의 선견지명에 놀랄 따름이다. 고흥은 남북 길이가 거의 60㎞에 이르는 반도이니 한반도의 또 다른 ‘땅끝 마을’이다. 서울에서 멀기는 하지만 섬의 구석구석 손이 덜 간 남해안 자연 풍광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여수에서 출발해 작은 섬들을 연결하는 멋진 다리들을 건너며 잠자는 듯한 섬들이 빚어낸 해안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고흥에 들어선다. 이때 만나는 팔영산(八影山)은 여덟 개의 봉우리가 바다에 비치는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국립공원이다. 제주행 배가 떠나는 녹동항에서 장흥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 고흥읍을 지나면 곧바로 운대리 도요지 유적에 진입하는 입구 표지를 발견한다.

도요지 유적

운대리 저수지에서 보는 운암산. 멀리 분청문화박물관이 보인다.

황금색의 벼가 펼쳐진 골짜기를 따라가면 운대리댐 뒤편으로 고흥 사람들이 신령한 산으로 여기는 운암산(雲巖山) 또는 운람(雲嵐)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아랫자락에 위치한 푸른색 건물이 바로 분청문화박물관이다. 도요지는 저수지를 끼고 오른쪽 골짜기로 향하는 도로 끝에 있다. 지금은 유적공원화되면서 한때 이곳에 살던 열녀들과 착한 관리들을 기리는 선정비가 텅 빈 정원에서 방문자를 맞이한다. 이곳골짜기에는 고대 도공들이 살던 운대마을이 자리했다. 골짜기를 포함한 이 지역 일대에서 아주 이른 시기의 청자 가마와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 청자나 분청자기를 굽던 30여 기의 도자기 가마가 발굴되었다.

이 지역이 사기시(沙器市)라고 불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릇 바닥에 '大(대)' '天(천)' '禮(예)' 자 명문이 새겨진 것을 보면 관급 도자기를 만들던 마을이다. 제작된 도자기는 골짜기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면 다른 곳으로 보내질 수 있었다.

공원의 오른편 사면에는 발굴된 도요지 한 곳이 노출되어 있고, 그 옆에는 복원된 도요지와 실험용으로 쌓아둔 장작더미가 있다. 노출된 가마터는 경사가 상당히 급한 사면에 만들어졌는데 원래 길이는 20m가 넘는다. 지금은 풀에 덮여 있지만 발굴 당시 드러난 가마의 각 부분은 전시된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운대리 1, 2호 가마터 유적과 복원된 가마.

운암산이 꽤 높아서 골짜기에 물이 마르지는 않았을 텐데, 그것이 이렇게 큰 도요지가 나무가 무성한 숲과 함께 조성된 이유이겠다. 물론 도자기를 만들 좋은 흙도 주변에 있었겠지만, 채취한 장소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인근에 도로 건설로 깎여 나간 고대의 지층을 보니 군데군데 백색의 풍화토들이 보인다. 도자기의 흙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적어도 두어 지점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도자기 흙광산은 어디에 있었을까?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도자기 가마, 불의 예술이 있었던 곳

이곳의 도자기 가마는 산비탈 경사진 곳에 바람의 방향을 따라 흙을 쌓아 긴 터널을 만든 형태다. 그러니 세월을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거나 바닥만 남고 윗부분은 사라져 버리기 십상이다. 도자고고학의 맛은 바로 가마의 바닥과 벽선을 따라 흙을 파 내려갈 때 불에 타 유리질이 더덕더덕 남은 가마의 표면이 드러나는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가마 안에 쓸쓸하게 남겨진 도자기 파편이나 열이 고르게 닿지 않아 쭈그러진 그릇들을 발견할 때일 것이다. 쓸쓸하다는 뜻은 용도가 없어서 도공의 손이 닿지 않고 버려졌거나 가마를 마지막으로 사용할 때 파손된 것이기 때문이다. 분청문화박물관의 전시품 중에는 멀쩡한 것이 별로 없는데, 아마도 제대로 된 것들은 관청이나 대갓집의 밥상과 제사상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을 것이다.

왼쪽부터 운대리 1호 분청가마의 발굴 현장과 흙을 쌓아서 올린 가마의 모형. 연소실에서 경사져 올라가고 중간에 턱들이 보인다. 셋째, 넷째 사진은 운대리 옆 계곡에서 새롭게 발굴이 시작된 청자가마터와 일대 도로변의 노출된 지질 속에 보이는 백색풍화토층.

가마 속은 불을 때는 동안에는 엄청난 열로 도자기를 익힌다. 대체로 1,200℃ 정도지만 이곳의 일부 가마는 그 이상의 온도에서도 구웠다는 사실이 도자기 속 점토광물의 상태로 확인되었다. 불은 도자기를 멋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굽는 동안 깨뜨리고 우그러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질 높은 도자기를 많이 생산해내려면 결국 불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곳 가마의 구조를 보면 불 때는 공간인 연소실과 빚은 그릇을 놓는 번조실(燔造室) 사이에 불턱이 있는데, 어느 곳은 불턱의 높이가 1m 이상이다. 또 연소실 사이에 불기둥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모두 불이 그릇에 닿아 깨지는 것을 방지하고 열이 가마 곳곳으로 골고루 흩어지게 만들기 위함이다. 가마 속을 ‘불의 예술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덤벙, 덤벙 그리고 쒸익 쒸익

분청사(자)기는 조선 초기 백토가루를 뒤집어 씌운 바탕에 여러 가지 기법으로 문양을 넣은 자기들이다. 이보다 앞선 청자에 비해 흙이 좋지 않고 기술이 떨어지니 대안으로서 백토 분장을 한 것으로 보이며, 흔히 분장 또는 화장자기라 부른다. 흰가루를 씌워 화장을 한 위에 도장으로 문양을 찍거나(인화분청), 칼로 바닥을 긁어내거나(박지문) 선을 긋는(음각선문) 등의 기법을 사용했다.

윗줄 왼쪽은 운대리에서 출토된 귀얄문분청(받침대 위에 올려진 것)과 덤벙분청의 조각들. 오른쪽은 분청 음각물고기 문양 큰 대접. 이 고장 명물인 삼치로 추정된다. 아랫줄은 7호 가마에서 출토된 완형 분청자기. 왼쪽부터 덤벙분청 음각 파초문(화염문) 병, 덤벙분청 철화 잔, 덤벙분청 병.

운대리 가마에도 분청자기가 많은데,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덤벙분청'이라는 말 그대로 그릇을 빚어서 백토물에 풍덩 담갔다 꺼내거나, 덤벙 담근 것을 붓으로 쒸익 돌리거나, 아니면 붓에 백토물을 적셔서 쒸익 돌리는 수법으로 표면을 마감한 것이다. 이러한 덤벙기법은 백자를 흉내 낸 것이지만, 그 안에는 거칠지만 솔직한 인간미가 담겨 있다. 흙으로 빚은 그릇을 거침없이 담그고, 마음 가는 대로 붓질하여 변신시키고, 가마 안에서 소성되면서 또 한 차례 변신하고, 사용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변하는 과정은 이 도요지를 발굴한 도자고고학자의 말씀대로 ‘인생과 함께 걸어가는 자기’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우리가 잊고 있던 그릇들의 맛

덤벙기법은 경기도 퇴촌 지역에 백자 관요가 생긴 이후 사라지게 되지만 일본에서 고비키(粉引)로 널리 알려진 도자기 제작에 크게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많다. 일본에서는 이 기법으로 제작돼 국보급 대우를 받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도자예술사가들은 이 지역, 즉 고흥의 운대리 자기나 보성이 산지인 호조고비키(寶城粉引, 보성 지역 덤벙분청의 일본말 호칭)와 장흥 일대 덤벙분청사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소위 ‘고라이 자왕'(高麗磁碗, 조선에서 수입된 다완의 일본말 호칭)의 원조가 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쩌면 임진왜란 중 도공을 끌고가기 이전에 이곳에 왔던 사람이 먼저 조선 도자의 맛을 알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수집된 덤벙분청 다완(찻사발). 왼쪽은 백토를 물감처럼 사용해 붓터치를 남긴 귀얄문이고 오른쪽은 차로 얼룩진 모양(물꽃)이 귀하게 여겨진다. 서울 L씨 소장

고흥 지역의 대표적인 고대 유적인 안동(雁洞) 고분이나 야막(野幕) 고분 등에서도 일본과 교류한 흔적이 발견돼 고대부터 지속적인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실 1980년대 초 운대리 유적을 처음 발굴한 계기도 일본 도예미술가인 고모토 히구지(香本不若治)가 정양모(鄭良模)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과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지역에 '일제 초기에도 일본인들이 와서 많은 도자기편을 가져갔다'는 말도 전해지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일본 사람들의 특별한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흥분청도자박물관에서

도요지에서 발굴된 도자기는 성한 것이 별로 없다. 가마 안에서나 폐기장에서나 모두 버려진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모아서 만든 박물관 내부에 복원된 가마터의 전시벽은 아름답다. 인생살이의 또 하나의 철학을 그 벽에서 배운다. 부서진 것도 모여서 같이하면 예쁜 것이 된다고.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분청도자문화박물관에서 불현듯 가슴에 와 닿는 메시지이다.

분청문화박물관 내부에 깨어진 그릇으로 이루어진 전시벽. 성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모여서 아름다운 분청벽이다.


글·사진=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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