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기다리던 응급환자의 갑작스러운 사망... 다 내 탓처럼 느껴졌다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순서 기다리던 응급환자의 갑작스러운 사망... 다 내 탓처럼 느껴졌다

입력
2021.10.19 17:00
0 0

<34> 한언철 외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의사에게 환자를 잘 치료한 성공담만 있는 건 아니다. 쓰라린 기억, 가슴 아픈 기억, 꺼내놓기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나 역시 아픈 손가락과도 같은 환자들이 있다.

#1

응급실 인턴 때였다. 여느 때와 같이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환자들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응급실 복도는 침대로 빼곡하게 차 있었고, 그나마 침대가 모자라 의자며 보호자 대기석이며 환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럴 때 인턴들에겐 일의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당연히 신체 징후가 불안정한 환자들이 최우선이고, 그다음으로 처치, 채혈, 수액 라인 잡는 일 등이 이어진다. 물론 그 사이사이 심폐소생술이 발생하면 무조건 달려가야 한다. 대략적으로 봐서 가장 마지막 순위는 간단한 소독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처리해도 환자가 밀려들면 해야 할 일이 계속 쌓이고, 결국 가장 후순위였던 소독은 점점 더 뒤로 미뤄지게 된다.

나 역시 정해진 우선순위에 따라 환자들을 보고 있는 데 한 보호자가 내게 다가왔다.

"저 선생님, 우리 아이가 히크만 카테터(약물 주입 등을 위해 가슴쪽 정맥에 삽입한 튜브)를 가지고 있는데 소독이 필요해서요. 좀 먼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이렇게 와서 이야기하는 보호자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난 다소는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어투로 "지금 바로 해드리기는 어려울 거 같고 최대한 빨리 해 드릴 수 있도록 할게요"라고 답했다. 보호자 옆에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학생이 항암으로 머리카락이 없는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 학생은 항암 진행 중 발열이 생기는 등의 증상으로 입원 대기 중이었다.

그렇게 잠시 스쳐 지나고 다시 정신없이 일처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심폐소생술이 발생했다는 연락이 왔다. 지체 없이 달려가 환자의 얼굴을 확인했더니, 바로 그 학생이었다. 나에게 소독을 부탁했던 그 보호자는 바로 옆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아니, 그 간단한 소독도 하나 못해주는 병원이 무슨 병원이냐고… 왜 애를 방치해서 죽게 하냐고... 어떻게 병원이 이럴 수 있냐고...

심폐소생술이 계속됐지만 결국 환자의 심장은 멈추고 말았다.

나는 너무나도 큰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다 너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보호자의 한 맺힌 외침이 계속 귀에서 맴돌았다. '그 간단한 소독이라도 해드렸더라면 어땠을까. 그냥 조금 둘러가더라도 먼저 해드리는 건데...'

물론 소독을 안 한 것이 사망 원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호자 입장에선 암을 앓고 있는 아들이 아파 응급실까지 찾아왔는데 간단한 처치마저 못 해준 의사와 병원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그날의 일은 1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의 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에게는 아주 간단하고 가벼운 소독이었지만,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그렇지 않았으리라. 의사에게 일의 우선순위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간단하거나 가벼운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2

휠체어를 탄 환자와 보호자가 반갑게 인사하며 진료실로 들어온다. 70대인 환자는 대장암 수술을 받고 5년이 된 환자다. 흔히 암 완치의 기준이라고 하는 5년을 재발 없이 무사히 넘겼다. 난 환자에게 검사 결과가 괜찮으니까 이제 1년에 한 번만 보면 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외래 문을 나서는 환자의 뒷모습을 보니 기뻤지만,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미안함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환자가 휠체어를 타게 된 건 암수술 직후에 발생한 뇌졸중 때문이었다. 환자들의 수술동의서를 작성할 때, 의사는 항상 수술 후 심정지, 심장마비, 뇌졸중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 말 속에는 '사실 발생할 일은 거의 없지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덜컥 수술 후에 뇌졸중이 왔다. 나는 주치의로서 낙담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후 회복하는 동안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나를 포함한 의료진은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환자는 진료를 잘 버텨줬고 보호자의 헌신적 도움 덕분에 안정을 회복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한쪽 몸을 사용할 수는 없게 돼, 재활을 할 수 있는 병원으로 연계해 퇴원했다. 환자는 이후에도 다양한 증상으로 내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그러는 사이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허황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그날 내가 수술하지 않았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환자도 보호자도 재발 없이 5년이 흘러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당시에는 수술한 나를 많이 원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죄스러움이 남아 있다.

아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 가슴 한편에 응어리처럼 품고 있는 환자들을 하나둘 꺼내 놓으면 아마 열 손가락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항상 좋은 결과와 쾌유를 바라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만은 않다.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국은 많은 부분을 주치의인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몫이다. 의사가 된 이상, 특히 외과를 선택한 이상, 이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그래도 더는 아픈 손가락으로 남을 환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외과 주임과장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라면 누구든 원고를 보내주세요.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라이브 이슈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