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개봉작 '푸른 호수' 주연·연출한 한인 2세 저스틴 전 감독
세 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돼 30년 넘게 살았는데 당국이 갑자기 불법체류자이니 한국으로 추방하겠다고 하면 어떡해야 할까.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자 13일 국내 개봉하는 ‘푸른 호수’는 이 같은 상황에 처한 입양인의 눈을 통해 미국의 불합리한 이민 정책을 꼬집는 작품이다. 지난 7월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서 처음 상영됐는데, 재미교포 2세인 저스틴 전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비롯해 주연까지 맡아 화제가 됐다. 12일 온라인 화상으로 국내 기자들과 만난 전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는 2009년 패널로 한 번 참석한 적이 있다"며 "코로나19만 아니었어도 부산을 방문했을 텐데 아쉽다"고 인사했다.
전 감독은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주인공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학교 친구 에릭 역으로 출연해 국내에 처음 얼굴을 알렸다. K팝 패러디 그룹 BgA의 일원이기도 하다. ‘푸른 호수’는 ‘맨 업’ ‘국’ ‘미스 퍼플’에 이은 그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 영화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돼 가족을 이루며 살다가 갑자기 서류 문제로 추방 위기에 처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계 미국인이 주인공이지만 방점은 '한국계 미국인의 삶'이 아닌 '입양인의 시민권과 주체적인 삶'에 찍혀 있다. 전 감독은 앞서 9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상영 후 온라인으로 관객과 만나 "한인 2세로 살면서 주위에 입양인 친구들이 많았다”며 "그들에게서 많은 입양인들이 서류 한 장 없다는 이유로 추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충격을 받고 이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2000년 아동시민권법이 통과되면서 해외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사람들이 자동으로 시민권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1983년 이전 출생해 입양된 이들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현재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주로 입양 과정에서 시민권 취득에 필요한 서류를 온전히 갖추지 못한 경우가 해당하는데, 18세 이전 파양됐거나 양부모가 사망한 경우 불법체류자로 간주돼 추방당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전 감독은 "내가 입양인이 아니어서 그들의 마음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다"면서 "실제로 추방됐거나 추방 위기에 몰린 사람들을 많이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보다 그들의 삶에 정면으로 깊숙이 들어가려고 조사를 오래 했다"면서 "진실하고 사실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푸른 호수'는 친부모와 양부모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국가에서 버림받으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 안토니오(저스틴 전)의 기구한 삶을 따라간다. 안토니오는 자신의 2세를 임신 중인 백인 아내 캐시(알리시아 비칸데르)와 아내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제시(시드니 코왈스키)를 지키기 위해 범죄까지 저지르는 인물. "나 역시 러시아계 아내와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운을 뗀 전 감독은 "입양인은 대부분 선택권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데 안토니오는 자신이 선택한 가정을 꾸려간다는 것, 영화 마지막 부분의 결정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는 안토니오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베트남 여성 파커와 그의 가족도 등장한다. 프랑스 영화 ‘인도차이나’, SBS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 등에 출연한 베트남 출신 프랑스 배우 린당 팜이 파커 역을 연기했다. 전 감독은 "파커는 안토니오에게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거울 같은 인물"이라면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다룬 영화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한 나라 출신들만 등장하는데 두 아시아 민족이 한 스크린에 함께 나온다는 것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저스틴 전 감독은 영화를 찍는 이유를 "사람들이 한국인인 우리가 누군지, 어떤 문화를 갖고 있는지, 우리가 세계를 보는 관점은 무엇인지 등을 보다 감정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푸른 호수'는 관객들이 불공평하고 비인간적인 관련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하고 직접 행동에 나서 법이나 정책을 바꾸는 현실적인 결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찍은 작품"이란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전 감독의 차기작은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소설을 극화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의 드라마 '파친코'다. 지난 칸영화제에 '애프터 양'으로 같은 부문에 초청됐던 또 다른 한국계 미국인 감독 코고나다와 함께 연출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올 초까지 한국에서 배우 윤여정 등과 촬영하기도 했다. "윤여정은 진정한 예술가입니다. 함께 일하게 돼 운이 좋았죠. 촬영할 땐 제가 틀린 점을 바로잡아 주시기도 했어요. 대단한 배우입니다. 함께 촬영했던 경험은 소중히 간직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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