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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했다니 연봉 500만 원 깎겠다는 병원장... 이래도 되나요?

입력
2021.10.14 04:30
수정
2021.12.25 10:5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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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저는 직원이 40명 정도인 한방병원에서 3교대로 일하는 간호사입니다. 8월 중순 임신했다는 소식을 병원에 알리자 사흘 후 연봉 500만 원을 삭감하겠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자 크고 작은 괴롭힘이 시작됐습니다.

임신 사실 알리자 월급 늦게 주고 수당 삭감

먼저 아무 공지 없이 지난달 월급이 닷새 늦게 입금됐습니다. 병원장은 "돈이 없어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월급을 받았더군요. 이번 달에도 저만 월급이 늦게 들어왔습니다. 이유를 묻자 "통장이 해지됐던데?"라는 황당한 답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계좌번호 숫자 하나를 잘못 입력했더군요. 과거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단순한 실수로 보이지 않습니다.

늦게 들어온 월급도 평소보다 적었습니다. 회사는 80만 원 정도 고정적으로 받아온 수당을 임신 기간 동안에는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이용했고 앞으로 연장근로에서 제외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임신을 알리기 전에 했던 주말·야간수당은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근무 중 식사도 사실상 막아

또한 병원장은 근무 중 식사하는 것조차 어렵게 했습니다. 작은 병원이라 병동 근무자가 한 명뿐이어서 자리를 비우기 힘듭니다. 그래서 8시간 근무를 하는데 중간에 별도의 식사시간이 없습니다. 대신 병원 측은 환자에게 밥을 나눠 줄 때 근무자에게도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간호사실에서 10분 안에 밥을 먹고 다시 근무를 하는 식이었죠.

그런데 연봉삭감을 거부한 후부터 병원장이 식당에 연락해 병동 간호사실에 밥을 주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병원장은 한층 위에 있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식사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동료들 모두 끼니를 거르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 때문에 다른 동료들까지 피해를 보게 된 것이지요.

"퇴근할 때마다 별도로 보고하라" 지시

최근에는 병원장이 술 마시고 밤 9시쯤 병동을 돌아보다 저에게 "너는 근무를 마칠 때마다 나한테 따로 보고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근무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지 확인하겠다는 의도로 보였습니다. 다른 동료들에겐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신하기 전까지는 병원장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500만 원 삭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설립된 지 1년 반밖에 안된 병원이라 지금까지 임신을 한 직원이 한 명도 없었는데, 전례를 만들지 않으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원래 병원들은 소규모인 경우가 많고 여직원이 대부분이라 임신을 하고 이런저런 차별을 받는 일이 적지 않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수모를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앞으로 출산을 하고 육아휴직까지 써야 되는데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너무 두렵고 막막합니다.

A씨(30대 여성·한방병원 간호사)

전형적인 '직장 내 괴롭힘'... 증거 확보해 즉각 신고해야

A씨가 겪고 있는 일은 임신을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가하는 전형적인 ‘직장 내 괴롭힘’ 사례로 보입니다. 임신 사실을 알리자마자 연봉 500만 원을 깎겠다고 하고 이를 거부하자 본격적인 괴롭힘이 시작됩니다. 두 달째 월급을 늦게 지급했고, 임신부인데도 근무 중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급여 등 추가적인 불이익을 줄 것처럼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갑질119에 신고되는 갑질 사례 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경우입니다.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임신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걸 '차별'로 보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임신한 근로자에게 인사발령·승진·임금·해고 등에서 불리한 조치를 취한 경우 다른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대상이 됩니다. 다만 아직은 급여를 500만 원 삭감한 것이 아니기에 법적인 불이익이 발생했다고 보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신 사실을 알리자마자 급여를 삭감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은 분명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입니다. 일부러 급여를 늦게 지급하고, 식사를 할 수 없게 하는 등 저열한 괴롭힘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므로 관할 노동청에 신고하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상사 등 다른 근로자가 괴롭히는 것은 회사의 직장 내 괴롭힘 담당 부서에 신고해야 하지만 이처럼 사용자가 직접 괴롭힌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관할 노동청이 사건을 다룹니다.

사람들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증거자료에 관한 부분입니다. 관련한 카카오톡 메시지나 녹취 등이 있다면 증거로 제출할 수 있으며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면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떠한 발언과 행위를 했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일지를 작성하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경우에는 임신 소식을 알리자마자 괴롭힘이 시작되었다는 행위의 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인 연봉 삭감과 수당 미지급은 '임금체불'

임금체불까지 발생하고 있어 고통이 더욱 클 것 같습니다. 근로계약서를 확인해봐야겠지만, A씨 병원은 고정연장·야간·휴일수당 등이 포함된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임신을 해서 시간외 근로를 못하거나 근로시간 단축이 있더라도 일방적으로 수당을 삭감할 수 없습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근로자가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해도 기존과 동일한 임금을 보장해야 하며(근로기준법 제74조 제8항), 포괄임금제이기 때문에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를 했는지, 몇 시간이나 했는지 등을 따지지 않고 정해진 수당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별개로 임신 사실을 알리기 전인 8월 1~15일 사이에 했던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수당은 당연히 지급해야 합니다. 임금체불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임신을 이유로 한 임금 삭감은 위에서 말한 남녀고용평등법상 차별에 해당하여 더 큰 처벌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휴게시간 보장하거나 급여로 지급해야

식사와 관련해서도 또 다른 위법 행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근무시간이 4시간 이상이면 30분, 8시간 이상이면 1시간의 휴게시간이 주어져야 합니다.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A씨는 평소에 자리를 떠나지도 못한 채 10분 만에 밥을 먹고 일을 해야 하는 등 휴게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태까지 제대로 쓰지 못한 휴게시간은 근로시간으로 간주해 급여를 추가로 지급받아야 합니다. 회사는 휴게시간을 제대로 보장해 식사를 하든 볼 일을 보든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야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과 임금체불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령 법위반은 관할 노동청에 신고할 수 있습니다. 병원의 법위반 사실이 한두 가지가 아니므로 상담내용을 토대로 신고 전에 잘 정리해보시기 바랍니다.

임신소식 알릴 때부터 괴롭힘에 노출되는 현실 바로잡아야

병원은 여성 근로자의 비중이 높은 직장임에도 결혼을 하면 다니기 힘든 상황을 조성하거나 임신을 하면 불이익을 주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는 곳입니다.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퇴사하면 더 젊은 사람을 뽑아 메우는 식으로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지요.

직장갑질119가 지난 9월 발간한 '모성보호 갑질 보고서'를 보면 A씨처럼 임신 소식을 알리는 순간부터 출산 전후, 육아기,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후까지 시기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를 관둘 생각이 아니라면 불법사실을 신고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차별을 A씨 개인이 감당하여 신고하라는 조언밖에는 드릴 수 없어 안타깝지만, 부당함을 말하는 용기가 모여 앞으로 태어날 아기들은 출산과 육아가 괴롭힘의 원인이 되지 않는 환경에서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말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해결책이 궁금하시다면 누구라도 제보를 해주세요. 이메일(119@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직장갑질119 여수진 노무사

정리=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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