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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모나리자, 5000억 원의 미술 스캔들

입력
2021.10.07 17:00
수정
2021.10.08 10:25
0면
0 0
김선지
김선지작가

다빈치 논란작 '살바토르 문디', 머니게임이 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살바토르 문디', 1500년경, 호두나무에 유채, 65.6 x 45.4cm, MBS 소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살바토르 문디', 1500년경, 호두나무에 유채, 65.6 x 45.4cm, MBS 소장


모나리자와 비슷한 얼굴 때문에 '남자 모나리자'라는 별명이 붙은 '살바토르 문디'는 5,000억 원의 그림값으로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2021년, 이 그림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 '구세주 판매(The Savior for Sale)'와 '사라진 레오나르도(The Lost Leonardo)'가 개봉돼 남자 모나리자는 다시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있다.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는 구세주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로, 그리스도가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본 채 오른손을 들어 축복하고, 왼손에는 구체(globe)를 들고 있는 종교적 도상이다. 비잔틴 미술의 관습적 도상인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Christos Pantokrator, 우주의 통치자라는 뜻) 이미지에서 발전했다. 이 작품에서도 그리스도가 왼손에 세계, 혹은 우주를 상징하는 수정 구슬을 쥐고 있다.

'살바토르 문디'는 어떻게 세계에서 제일 비싼 그림이 되었을까? 1500년경 제작된 이 그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1958년 소더비 경매에서 겨우 58달러에 팔렸다. 2005년,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레오나르도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1만 달러에 팔린 후, 저명한 복원전문가 다이앤 모데스티니에 의해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마침내 다른 화가들에 의해 겹겹이 덧칠된 층이 벗겨지면서 본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2013년에는 스위스 아트 딜러에게 약 1,000억 원에, 하루 뒤 러시아 재벌에게 약 1,500억 원에, 201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미술사상 최고가인 약 5,000억 원(4억5,000만 달러)에 판매되었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일어난 이 그림의 가파른 신분 상승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 편의 환상적인 서스펜스 스릴러물이다. 그림값도 놀라웠지만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MBS)가 구매했다는 사실 역시 충격적이었다. 독실한 무슬림이 왜 그리스도의 초상화를 산 걸까? 베일에 가려졌다가 드러난 구매자의 정체, 작품에 대한 미술전문가들 간의 치열한 진위 논쟁, 사고파는 과정에서 벌어진 화상과 사업가 간의 법적 소송,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속물적인 홍보전 스토리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글로벌 흥행 드라마 그 자체다. 크리스티는 초라했던 작품을 세계 최고가의 그림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셀럽까지 동원해 화려한 판매 캠페인을 벌이며 작품을 '신비롭다' '아우라' 등 모호한 용어로 묘사하며 한껏 분위기를 띄웠던 것이다.


왼쪽은 복원 전(1958년 판매 당시), 오른쪽은 복원 후.

왼쪽은 복원 전(1958년 판매 당시), 오른쪽은 복원 후.


'살바토르 문디' 드라마의 핵심은 이 5,000억 원짜리 그림이 레오나르도의 작품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프랑스 박물관 연구복원센터는 X레이 형광분석기, 적외선 스캔 등으로 그림을 분석하여, 레오나르도가 사용한 롬바르디아 지방 호두나무 캔버스와 유릿가루가 섞인 안료를 썼다는 것을 확인하고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밖에도 진짜임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스푸마토 기법의 얼굴과 특유의 머리카락 묘사, 의복의 세련된 자수, 피부 색채 톤, 그려진 시기 등을 근거로 든다.

레오나르도 전문가인 마틴 켐프는 그의 제자나 추종자 중 누구도 따라 하지 못했던 독특한 소용돌이 형태의 머리카락과 손가락 페인팅 기법을 진품의 근거로 든다. 레오나르도는 종종 독특한 핸드프린팅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손가락 끝으로 문질러 색채를 혼합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한편,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12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위원회가 진품으로 판정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레오나르도에 대한 최고의 권위자들은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그림은 작업장 제자의 작품으로 레오나르도가 일부 가필만 했거나 외부의 다른 화가가 그렸을 거라는 것이다. 심지어 미술비평가 제리 솔츠는 솜씨 좋은 복원전문가의 모사작에 불과하다고 조롱한다. 그는 현재 남아 있는 레오나르도의 15점의 그림 중 어느 것도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거나 예수만을 그린 그림은 없으며, 레오나르도가 이처럼 죽은 사람같이 보이는 활기가 없고 칙칙한 인물을 그렸을 리 없다고 말한다. 또 다른 레오나르도 전문가 자크 프랑크는 기껏해야 레오나르도가 약간 손을 댄 그의 작업장 조수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한 오른손의 손가락 모양, 유치하게 처리된 왼손, 이상하게 길고 얇은 코, 단순화된 입 묘사가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입장은 어떨까? 루브르는 2019년, 레오나르도 서거 500주년을 기리는 회고전을 기획했다. MBS는 모나리자 옆에 '살바토르 문디'를 전시하고 100%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것을 명시하는 조건으로 빌려주려고 했다. '구세주 판매'에 의하면, 루브르는 진위에 대한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MBS의 조건을 받아들여 '살바토르 문디'를 레오나르도의 작품으로 공인한다면 박물관의 국제적 신뢰성이 추락할 수 있다고 판단해 거부했다고 한다. 루브르 큐레이터들은 이 그림이 레오나르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일부 참여한 것이 확실하고 역사상 최고가로 팔려 흥행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해 전시하려고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또 다른 다큐 '사라진 레오나르도'는 다른 입장으로 접근한다.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 연구복원센터의 감정에 의해 진품이라고 결론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바토르 문디' 옆에 전시하기 위해 루브르의 대표 보물인 모나리자를 특수유리 보호장치에서 꺼내 이동시켜야 하는 것을 꺼려해 협상조건을 거절했고 결국 MBS는 대여를 철회했다. 이후, 루브르는 MBS에 보복하기 위해 이 작품이 진품이라는 감정 결과 발표를 보류했다고 한다.

이렇듯, 진위 다툼은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르네상스 회화는 일반적으로 화가의 스튜디오에서 그와 조수들의 협업에 의해 작업되었기 때문에, 이 그림 역시 진위를 따지기보다는 레오나르도가 얼마만큼 기여했는가의 관점에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다만, 레오나르도가 대부분을 그렸는가, 조수들이 그리고 그가 부분적으로 가필을 했는가, 전적으로 조수들의 작품인가에 따라 그림 가격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살바토르 문디'가 이 중 어느 범주에 속하든 간에, 현재의 그림은 발견 당시 워낙 손상이 심해 90%가 복원에 의해 재창조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복원가 ‘모데스티니의 걸작’이라고 냉소하기도 한다. 레오나르도의 작품이라고 한들 이렇듯 과도한 복원 작품에 매겨진 그 엄청난 가격이 온당한 걸까?

'살바토르 문디'의 몸값은 예술적 가치보다는 돈이 중심이 된 상업적 게임으로부터 산출된 것이다. 여기엔 이른바 미술전문가 그룹의 문화 권력, 경매회사, 사기꾼 아트 딜러, 투기 목적의 사업가, 허세 가득한 사우디 왕자 등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있다. 그들은 '살바토르 문디'에서 예술이 아니라 돈을 본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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