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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규제' 입장은 비슷하지만...美는 당근과 채찍, 中은 몽둥이

입력
2021.10.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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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
최창환프로메타 투자연구소 소장

편집자주

비트코인으로 상징되는 가상자산, 암호화폐는 더이상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시장, 규제, 기술 등 암호화폐를 둘러싼 동향과 쟁점들을 입체적으로 스캔한다.


미국과 중국의 암호화폐정책 어떻게 다른가

중국이 지난 5월에 이어 또다시 암호화폐와 관련된 모든 거래를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인민은행을 비롯한 금융감독기구뿐 아니라 사법당국까지 총동원된 '관계 기관 대책회의'를 가졌다. 회의 결과는 지난 9월 24일 웹사이트에 공지함으로써 강력한 단속 의지를 나타냈다.

미국은 재무부, 연준,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등이 암호화폐 규제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했다. 조만간 암호화폐 규제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규제의 틀을 잡아 나갈 방침이다.

미국과 중국은 가상자산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같은 태도다. 그러나 접근 방법은 다르다. 시장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중국, 암호화폐 대해 탄압→묵인→탄압

중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암호화폐 규제안을 내놨다. 홍콩의 키네틱 캐피탈 설립자인 제한 추는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를 탄압하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중국 당국은 암호화폐가 자유롭게 거래되고, 관련 프로젝트가 힘을 키워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다.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상 중앙의 지배권을 갖는 누군가가 프로젝트를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2017년 코인을 이용한 투자자금 모집(ICO Initial Coin Offering)을 금지했고, 비슷한 시기에 암호화폐 거래소도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중국계 암호화폐 거래소인 후오비, OKEX 등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영업을 했다. 조심하면서. 사법당국도 말로는 불법이라 하면서도 대충 눈감아 주며 영업을 하게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암호화폐는 불법"이라는 말은 그냥 말에 그쳤다. 그 사이 중국은 비트코인 채굴산업의 중추가 됐고, 전 세계 채굴 네트워크의 70%를 담당하기도 했다.


중국의 암호화폐 탄압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차트다. 블룸버그

중국의 암호화폐 탄압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차트다. 블룸버그


심지어 중국 당국의 디지털 관련 행사에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협찬을 하기도 했다. 신흥 산업과 정책 당국 사이에 '기묘한 공생'이 이어진 것이다. 2019년 말에는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문을 닫았다. 상하이 시 당국이 관련 업체들에 압력을 가한 것이다.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돼 있는 동안에 중국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2020년 가을부터 시작된 암호화폐 가격 상승이 2021년 4월 최고치에 달하자 중국 당국은 다시 제동을 걸고 나왔다. 2021년 5월 국무원이 암호화폐 금지 조치를 발표했고, 인민은행 등 금융감독기구가 산하 협회를 총동원해서 암호화폐 채굴과 거래를 금지하는 조치들을 내놨다. 이로 인해 비트코인 가격은 6만4,000달러를 넘기는 빅 랠리에서 급전 직하, 3만2,000달러까지 추락했다.

민간암호화폐 대신 통제가능한 디지털 위안화 선호

중국은 내년 2월 개최하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디지털 위안화를 본격 상용화할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디지털 위안화는 기존 금융시장, 결제회사의 '전폭적 지원'하에 실전 테스트를 마친 상태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불법행위를 엄단한다는 명분으로 비트코인 채굴과 암호화폐 거래를 막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통화를 어떻게 도입하면 좋을지, 기존 금융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이 중국은 속전속결로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한 것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극단적으로 모든 상업은행을 일개 은행 영업점으로 만들 수 있다. 인민은행이 중국 국민에게 계좌를 하나씩 만들어주고, 이 계좌를 통해 디지털 위안화를 거래하게 할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중국 국민 한 명 한 명이 어떤 금융 행위를 하는지 인민은행이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 상업은행은 디지털 위안화가 거쳐 가는 중간 통로 역할에 그친다. 따라서 요구불예금에 대해 이자를 줘야 하는가, 통화정책을 구사할 때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가와 같은 이슈들은 중국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민간 암호화폐는 컨트롤할 수 없는 전자화폐인 반면 디지털 위안화는 완벽한 중앙 통제가 가능하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와 민간 암호화폐가 경쟁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암호화폐를 탄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 암호화폐를 품는 방법 고민 중

미국은 어떨까. 미국 정책 당국자들도 민간 암호화폐가 기존 금융 시스템에 위협 요소임을 수차례 경고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이 "암호화폐는 마치 서부시대 무법자들이 판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할 정도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암호화폐는 내재 가치가 없으며 비트코인은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처럼 암호화폐를 직접 탄압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전략은 암호화폐를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규제의 틀 안으로 민간 암호화폐를 끌어들임으로써 기존 금융 시스템의 헤게모니도 유지하고 돈이 되는 신사업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입장은 친 암호화폐 성향의 신시아 루미스 상원의원의 발언에서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미국, 암호화폐도 '비즈니스'로 인식

신시아 루미스 와이오밍주 상원의원. 블록미디어 자료 사진

신시아 루미스 와이오밍주 상원의원. 블록미디어 자료 사진


루미스 상원의원은 지난달 상원 연설에서 장시간 스테이블코인의 규제 방안에 대해 발언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가치를 달러로 보증하는 암호화폐다. 전 세계적으로 1,300억 달러가 발행돼 유통 중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구매, 암호화폐와 관련된 파생상품 매매, 탈중앙금융(DeFi)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루미스 의원은 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과 같은 규제받는 금융기관으로 한정하자는 제안을 했다. 루미스 의원은 "스테이블코인은 현금으로 그 가치를 지지 받아야 하며 은행들이 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100% 현금과 현금성 자산으로 보호하고,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도록 하자"고 말했다.

달러에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은 기술적으로나, 실용성으로나 민간 디지털 달러와 동일하다. 중국이 인민은행 주도로 디지털 위안화를 만들면서 민간 암호화폐를 탄압하는 것과 달리, 민간 암호화폐를 육성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루미스 의원의 이 같은 주장은 와이오밍주의 암호화폐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와이오밍주는 적극적으로 암호화폐 산업을 유치하려고 노력 중이다. 와이오밍은 주법에 따라 일부 은행에 대해서 자유롭게 암호화폐를 취급할 수 있도록 면허를 내주고 있다. 루미스 의원의 주장처럼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권한이 주어진다면 와이오밍주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싶어하는 금융기관들을 유치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치인들은 암호화폐 산업을 비즈니스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규제를 통해 탄압할 것이 아니라, 감독 체계 속으로 유인해서 새롭게 돈을 벌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이 아닌, 금융 당국자의 생각은 어떨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29일 의회 청문회에서 "암호화폐를 금지할 생각이 없으며, 스테이블코인은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루미스 상원의원과 같은 맥락의 답을 한 것이다.

시장의 힘 vs. 국가의 힘

디지털 자산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혁신과 규제의 충돌은 시장과 국가라는 관점에서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암호화폐는 출발 자체가 반체제적이었다. "왜 국가가 중앙화된 통화를 지배함으로써 개인의 금융 활동을 방해하는가?" 이것이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의 질문이다.

여기서 파생된 기술적, 상업적 혁신이 대체불가능토큰(NFT) 열풍, 디파이 금융의 부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간 암호화폐를 탄압하는 중국이나, 민간 암호화폐를 제도의 틀에 품으려는 미국이나, 암호화폐 철학에는 둘 다 맞지 않는 행동이다.

비트코인이 탄생한 후 지금까지 디지털 자산시장을 키워 온 것은 99% 이상이 민간의 힘, 시장 자체의 힘이었다. 디지털 자산시장도 고민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더 큰 성장을 위해 국가가 만든 질서를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탈중앙 정신을 끝까지 지킬 것이냐 선택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역으로 국가도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지킬지를 고민할 시점이다. 영원한 권력은 없기 때문이다.

최창환 프로메타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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