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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가 장애인 탈시설 계획 반대하는 까닭은…"시설에 거주할 권리도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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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가 장애인 탈시설 계획 반대하는 까닭은…"시설에 거주할 권리도 보장해야"

입력
2021.10.0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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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최고의사결정기구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산하 사회복지위원회가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종합계획)’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종합계획의 골자는 현재 사회복지시설 등 거주시설에 머무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자립기반을 마련하고 이주를 지원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지역사회의 장애인 지원체계가 부실한 상황에서 추진되는 종합계획이 중증발달장애인이나 최중증장애인의 돌봄과 보호책임을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에게 전가할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해 종합계획을 새롭게 구축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유경촌(오른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반대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주교회의 제공

유경촌(오른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반대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주교회의 제공


천주교 “장애인과 가족에게 선택권 보장해야”

위원회는 6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 유경촌 주교는 천주교가 운영하는 사회복지 기구들을 대표해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로드맵이 집중적 돌봄이 필요함에도 지역사회에서 충분한 지원체계가 구축되지 않아서 어려움에 놓여 있는 중증발달장애인, 최중증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어려운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천주교는 지난해 기준 345개 장애인 복지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또 위원회는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장애인 당사자에게 적합한 생활 형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중증발달장애인 중 도전적 행동 정도가 심하여 부모가 통제할 수 없거나, 부모의 건강 악화, 사망 등으로 장애인 자녀를 돌볼 수 없는 경우 등 장애인 거주시설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장애인 가족들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권리”라고 밝혔다. 이어서 위원회는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은 이러한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없애고 오로지 온전한 자립만을 강조하는 비현실적 정책”이라면서 “이미 시작된 장애인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도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 주교는 “전국 장애인 거주 시설의 80%는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숫자는 전체 발달장애인의 10%에 불과하다”면서 상당수 최중증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자녀를 돌봐줄 시설을 찾지 못해 정신병원에 보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유 주교는 “지금 눈앞에 있는 불도 끄지 못하면서 그나마 발달장애인의 10%가 머무는 시설을 없애려는 이유를 우리는 납득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새로운 방향의 ‘탈시설 로드맵’을 구축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회원들이 지난달 10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인 탈시설 정책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 사이에서도 이번 정책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정책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정책에 담긴 지원책이 미약하다는 비판도 있다. 뉴스1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부모회 회원들이 지난달 10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인 탈시설 정책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 사이에서도 이번 정책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정책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정책에 담긴 지원책이 미약하다는 비판도 있다. 뉴스1


천주교, 종합계획 현실성·의도 불신

종합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20년간 단계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역사회에 주거시설 등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기반을 구축하고 2025년부터 본격적인 탈시설 지원사업을 추진한다. 이에 따르면 탈시설 정책이 본격화되는 2025년부터 매년 740여명의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정착하게 되고 2041년에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 전환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발언자로 참가한 천주교 사회복지시설 관계자들은 정부가 사실상 시설 폐쇄를 목적으로 강압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정책을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불평등 조약이었던 ‘강화도 조약’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기수 신부는 “시설들은 1년에 한번씩 전수조사를 받아야 하고 한 번만 문제가 되면 원스트라이크 아웃(폐쇄)이라고 돼있죠. 이런 식으로 앞으로 시설들을 자연감소시켜서 장애인들을 강제적으로 내보내는 것을 2041년이라고 돼 있는 것. 이 과정에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부모가 개입할 수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병훈 신부는 “시설들도 장애인들이 바깥에서 생활하고 싶다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야기하는 탈시설화는 사회복지계에서 이야기하는 (시설 거주자와 복지서비스의) 지역화, 개별화, 분산화와 전혀 맞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이 신부는 “정부가 이전의 것(시설 중심 체계)을 없애고 (복지서비스) 전달체계를 만드는 핵심 이유가 정부가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 또 50만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목적에 있지 않은가 의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체장애인들이 주축이 돼 구성한 탈시설 관련 시민단체의 의견만 받아들여서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기수 신부는 “탈시설 단체를 구성한 사람들은 전부 지체장애인들인데 시설 거주자의 80%는 발달장애인”이라면서 “왜 제3자가 개입하는지 의도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신부는 “정부는 노인도 결국 이렇게 (탈시설) 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장애인과 노인들을 돌보기 위한) 인력파견센터를 곳곳에 집어넣겠다는 것인데 이게 돈 싸움, 시장 싸움이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기수 신부 등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관계자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반대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주교회의 제공

이기수 신부 등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관계자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반대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주교회의 제공


"탈시설도 장애인에게 자기 결정권 줘야"

위원회 총무를 맡은 김봉술 신부는 “장애인 복지와 노인 복지는 근본적으로 같은데 지금 노인 복지의 방향은 시장경제로 나아가게 돼 있다. 모든 것이 경쟁체제이고 노인의 삶이 피해를 받는다”라면서 “최근 국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회서비스원 등을 통해서 노인이나 장애인 복지를 정부 주도로 하겠다는 것인데 이게 제대로 된 길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김 신부는 이어서 “사회서비스원도 이것을 주도하던 세력이 묵묵히 사회복지 현장에 있던 흐름을 사회서비스원법과 그 공간으로 옮겨놓은 것뿐”이라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탈시설은 장애인 자기결정권의 개별화이고 대형화 된 시설들을 각 지역에, 각 장애인 복지현장으로 분산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철학을 가지고 로드맵을 풀어가야 하는데 정부의 로드맵은 그렇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복지부 “우려 이해하나 오해에 근거한 것”

이에 대해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천주교가 정책을 오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합계획의 목표는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지, 시설 폐쇄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신적 신체적 상황 때문에 시설을 떠나기 어려운 장애인까지 지역사회로 내보내려고 한다는 인식 역시 오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선영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과장은 “탈시설 개념은 장애인들 또는 장애인 단체들로부터 10년 전부터 나온 개념이어서 로드맵 마련이 오히려 늦었다는 여론도 있다”면서 “로드맵을 만들었다고 지금 당장 시설을 폐쇄시킨다는 것이 아니며 어쩔 수 없이 시설에 남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도 정부는 인정하고 있다. 나가고 싶어하지 않은 장애인까지 쫓아낸다는 것은 과도한 우려”라고 반박했다. 김 과장은 “시설에 들어가는 예산은 매년 확대되고 있으며 절대로 감소되고 있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다만 정부는 의사표현이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전문가들이 참여한 위원회를 꾸려서 지역사회 거주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입원적합성심사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서 김 과장은 “전수조사 결과 현재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2만여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6,000여명은 의사표현이 가능하고 이 가운데 30%가 당장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며 이들이 우선 지원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사회의 장애인 지원체계를 탈시설을 지지해온 단체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김 과장은 “정부는 특정 단체에게 지원체계를 맡기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면서 “시설들의 주장대로 자신들이 경쟁력이 있는 종합서비스를 장애인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시설들이 역할을 바꿔서 (새로운 체계에서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지역사회의 장애인 지원체계가 부실하다는 비판에 대해서 김 과장은 “정부가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서비스를 해나가겠다니 걱정하실 수 있다”라면서 “그러나 앞으로 3년 동안 시범사업을 하면서 과정을 만들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합계획은 국가적 차원으로 추진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앞으로 국비가 확보되면 지방자치단체들도 적극적으로 사업에 투자하리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김 과장은 “정부도 시설이 그 동안 장애인을 위해서 해왔던 역할을 알고 있고 시설을 배제하고 정책을 진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구체적인 지원책 담긴 종합계획 내놔야"

여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종합계획에 보다 구체적인 지원책이 담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기룡 중부대학교 특수교육과 교수는 "시설에서의 생활이 자녀의 미래가 될 수는 없기에 장애인들이 하루빨리 지역사회에 나와서 자립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달라는 부모들이 있는 반면, 여러 가지 여건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설 입소를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부모들도 많이 계실 것"이라면서 "장애인 탈시설 정책 요구가 나온 지 20년 만에 정부가 로드맵을 내놨는데 이것도 굉장히 소극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오려면 집이 필요하고 생활비도 필요할 텐데 로드맵에는 그러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지 않다"라면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지만 분양이냐 임대냐도 담겨있지 않고 또 탈시설 장애인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지원할지도 제시돼 있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공공임대주택 지원의 경우, 정부가 그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냥 말뿐인 내용일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강력한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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