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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권 주장하면 페미나치?... 진짜 나치는 뭘 했나

입력
2021.10.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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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페미나치'라는 역사 왜곡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945년 1월 소비에트군이 폴란드에 위치한 나치 독일의 유대인 집단 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한 직후 찍힌 사진에서 수용자들이 가시철책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45년 1월 소비에트군이 폴란드에 위치한 나치 독일의 유대인 집단 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한 직후 찍힌 사진에서 수용자들이 가시철책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댓글에 '페미나치'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여기 한국일보 '젠더살롱'의 연재 지면뿐만 아니다. 다른 지면, 다른 필자가 쓴 다른 글의 댓글에도 꽤 있다. 흥미롭다. 페미나치는 '페미니스트'에 '나치'를 합해 만든 말이다. 아마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악질적이라고 생각하는 집단이 나치이기에, 페미니스트 필자들 특히 여성 필자를 강하게 공격하기 위해 그 말을 쓰는 것이리라.

특히 페미나치라는 용어는 '페미니스트들은 낙태권을 요구하는 살인마집단이다'라는 주장을 할 때에 꼭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살인면허권'이 아니다. 자신의 몸에 대한 온전한 통제권을 갖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주장하는 '안전한 임신중단권'이다. 이를 2차대전을 전후하여 나치가 저지른 대학살에 빗대는 것은 의아하다. 역사 왜곡에 가깝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과거 나치가 벌인 일과 그 명분을 살펴보면, 페미니스트들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편 성차별주의자들이 현재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같기 때문이다.

유대인 600만 명 학살한 나치

먼저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반사! 당신들이 나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글의 목표가 아니다. 나는 상대방과 의견 대립이 있을 때 '너는 나쁜 자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토착왜구'니 '빨갱이'니 '나치'니 하며 상대를 악마화, 타자화하면 더 이상 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나치가 인명을 경시하는 악마적 집단의 대명사로 쓰이게 된 것은 과거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사건) 때문이다. 나치는 왜 유대인들을 학살했을까? 다른 독일인들은 이를 왜 방조했을까? 그 바탕에는 서구인들의 뿌리 깊은 유대인 혐오가 있었다. 고대, 중세 때는 예수를 처형했다는 이유로 유대교를 배척하고 유대인들을 개종시키려고 했다.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하는 등 차별받던 유대인들은 19세기에 들어 유전학과 진화론에 기반을 둔 인종적 반유대주의가 등장하자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더 나아가, 유대인은 원래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종족이며 다른 유럽 민족의 순수함을 오염시키는 존재라는 인종적 반유대주의가 유럽에 확산되었다.

독일의 경우, 인종적 반유대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암울해진 독일의 현실과 맞물려 힘을 얻었다. 독일인들은 패전의 책임을 유대인에게 돌려서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을 달래려 했다. 독일 유대인 55만 명 가운데 10만 명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해 그중 1만 2,000명이 전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권리만 요구하는 집단이기에 차별한다'는 차별주의자들의 말은 이렇게 늘 사실과 달랐다. 국가 재정이 바닥난 상황에서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공황까지 겪게 되자 독일은 극심한 사회 혼란에 빠진다. 이 혼란을 틈타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다. 히틀러 치하 나치 독일은 유대인 대학살을 벌였다. 그 결과,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600만 명이나 되는 인명이 희생당했다.

나치시대에 출산한 아이의 숫자에 따라 여성에게 제공된 '어머니 십자 훈장'. 위키피디아 캡처

나치시대에 출산한 아이의 숫자에 따라 여성에게 제공된 '어머니 십자 훈장'. 위키피디아 캡처


아리아인 '순수 혈통' 늘려라... 출산기계가 된 독일 여성

한편, 나치는 유대인만 학살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제3제국은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정신지체장애인 등 '기생충'을 박멸한 '청결한 제국'이 되기를 원했다. 나치가 이상으로 삼은 독일 시민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순수하고 건강한 아리아인이었다. (원래 아리아인은 언어학적으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인종과 민족을 일컫는 말이지만 히틀러는 이를 북유럽인에게만 한정해서 사용했다. 남아시아인인 인도인은 아리아 인종으로 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하여 나치는 유대인이나 집시는 열등한 민족으로 여겨 학살했고, 같은 독일민족이라도 동성애자나 정신지체장애인이라면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하기 위한 강제 불임과 출산 제한을 행했다. 나치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스를 사용한 유대인 대량 학살을 시작한 것은 1942년부터이지만, 그 이전 1939년 10월부터 안락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8만여 명의 정신지체장애인들을 총, 가스, 주사를 사용하여 학살했음을 기억하자.

반대로 아리아민족의 우등한 유전자를 보존한 '순수 혈통'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 나치는 무엇을 했을까? 1935년 9월 15일 나치스 집회에서 승인한 뉘른베르크법을 살펴보자. 이 법은 두 가지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제국시민법이다. 독일인이나 독일 혈통 국민들에게만 시민권과 참정권을 부여한다는 이 법안은 유대인 차별 목적으로 제정되어 이후 유대인 탄압과 차별의 법적 근거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독일혈통 및 명예보존법이다. 이 법은 독일인 및 독일 혈통의 국민과 유대인의 혼인 및 성관계를 금지한다. 혈통 보존의 의무는 여성들에게 지워지기 마련이다. 이로부터 독일 여성들에게 순수 혈통의 자손을 낳아 '청결한 제국'을 실현할 의무 수행을 강제하기 위한 여러 법령이 제정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프로이센 주도로 통일한 후 이어지는 독일의 군국주의 전통, 남부 가톨릭 지역의 보수적 전통과 결합되어 독일 여성의 인권은 같은 유럽 내에서도 낮은 편이었다. 독일 여성의 삶은 아이(Kinder), 부엌(Kuechen), 교회(Kirche)의 '3K'로 요약될 정도다.

설상가상, 이런 부정적 현실에 나치는 한술 아니 한 삽 더한다. 나치 독일의 여성은 어머니와 주부라는 낡은 역할만을 수행해야 했다. 나치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아동 수당을 증액했으며, 5명 이상 자녀를 낳은 가정에는 세금 완전 면제 혜택을 주었다. 1936년부터는 출산한 아이의 숫자에 따라 여성에게 '어머니 십자 훈장'을 수여했다. 4명을 낳은 여성은 동메달을, 6명은 은메달을, 8명은 금메달을, 10명은 금과 다이아몬드 메달을 받을 수 있었다. 시상식은 히틀러의 어머니 생일인 8월 12일에 열렸다.

2019년 독일에서 진행된 낙태법 개정안 운동. 뉴시스

2019년 독일에서 진행된 낙태법 개정안 운동. 뉴시스


독일 페미니스트들의 외침 "낙태권 보장하라"

다산 장려를 위해 당근 정책만 사용한 것은 아니다. 나치는 낙태를 금지하고 비밀리에 낙태한 여성을 발각하면 엄격하게 처벌했다.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기 위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남편이 직장에 다니는 기혼 여성의 경우 공직 취업이 허용되지 않았다. 예비 부부가 결혼 전에 저리로 융자금을 받으려 하면 예비신부가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드디어 나치는 여성의 투표권을 박탈했다. 전쟁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져도 다른 나라와 달리 여성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았다. 부족한 일손은 독일인 아닌 이민 여성으로 채웠다. 이렇게 나치는 자국민 여성을 철저히 출산 기계로 이용했다.

나치의 부정적 유산은 현대 독일 여성들에게 오래 악영향을 미쳤다. 독일에는 결혼한 여성의 직장 생활을 금지하는 말도 안 되는 법이 1977년의 부부, 가족법 개혁 이전까지 남아 있었다. 낙태권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 독일의 형법이 만들어진 1871년에 제정된 형법 218조는 임신 중단을 처벌하는 조항이었다. 독일 통일을 전후하여 독일 여성들이 시위한 결과 1995년에 지금 적용되고 있는 새로운 법안이 마련되었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온전한 결정권을 주고 있지는 않다.

현재 독일 여성은 "내 배는 나의 것이다(Mein Bauch gehort mir)"라는 구호를 외치며 온전한 임신중단권을 획득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안전한 임신 중단권'을 요구한다고 해서 페미나치라니, 이것이야말로 역사 왜곡 아닌가. 나치는 여성의 낙태권을 부정하고 여성을 출산 기계로 여겼고, 독일 페미니스트들은 이에 맞서 싸웠는데 말이다.

요약한다. 낙태권을 주장한다고 해서 '페미나치'가 아니다. 나치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으로서의 낙태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굳이 어느 쪽이 나치냐고 따진다면, 여성을 온전한 동료 시민으로 대우하지 않고 인구를 늘리기 위한 출산도구로 취급하거나, 이를 정책으로 만들어 실행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나치에 가깝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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