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보다 서울에 살고 싶다... 불완전한 매혹의 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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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보다 서울에 살고 싶다... 불완전한 매혹의 도시에서

입력
2021.10.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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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하여

편집자주

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자 <한국일보>에 실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렸을 땐 파리에 가면 겨울에도 혼자 몇 시간을 걸을 수 있었다. 파리는 고독하지만 감수성이 강한 창고 같았다. 언젠가부터 센 강을 바라보며 이상한 공포를 느꼈다. 파리의 모든 것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는 공포는 보다 구체적이었다. 멀리서 보면 오랜 부르주아 문화의 붕괴, 앞에서 보면 도시 중심을 대체한 관광의 형해로 자욱했다.

중요한 것은, 파리는 정말로 성장한 적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도시의 작은 표면적은 파리의 비밀. 19세기에 베를린, 런던, 뉴욕이 주변 작은 도시들과 합병할 때, 파리는 반대로 중심부에 집중했다. 이윽고 도시의 내부는 과도한 매력으로 빛을 내뿜는 인형의 집이 되었다. 세상을 향해 열린 창문이 아니라 그 안에 진열된 유리 케이스. 그것이 인형의 집에 사는 파리 시민들이 그렇게 보수적인 이유일까.

쾰른에 사는 독일 친구가 말하기를, 독일인들은 서울이 아주 멋진 도시라고 생각하며 서울 여행을 굉장한 자랑으로 여긴다고 했을 때 귀를 의심했다. 이렇게 과도하게 행정 관리된 도시가? 가끔 침울하며 자주 무례한 시민들이 사는 도시가? 그 비싼 압구정동 땅에 전선줄이 물귀신 머리처럼 엉킨 도시가?

10년 전까지 서울은 세계 무대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초조하게 몸을 불리던 도시였다. 123층 롯데타워를 지어 21세기 아이콘이 되고 싶었으나 실패한 도시. 속도를 냈으나 좌절된 메가로폴리스의 꿈.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쇼 케이스. 선두적인 도시 설계자들이 받쳐주는 비전과 대립되는 증거는 차고 넘쳤다. 압구정로에서 한남대교로 진입하기 위해 인터체인지를 돈 다음 몇 차선이나 끼어들 때마다 서울은 의문투성이 도시 같았다. 모든 것이 이 도시가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미국적인 동시에 집착적인 외래 문화 소모품으로 스스로 포장했는지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서울 안에 구겨 넣어진 에너지와 속도와 인간들에 대해선 뭐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가 서울이 변하는 모습을 투지만만하게 지켜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모든 것이 무작위로 섞인 채의 난리 법석, 그 불완전한 날것의 감각이 좋아졌다. 수정할 수 없다고 믿었던 시간의 개념도 구부러졌다. 서울의 1분은 우리가 아는 어떤 60초보다 빨랐다.

어느 순간, 서울이 문명의 어느 갈피에도 없었던 자생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은 맨틀처럼 지표와 핵 사이에서 끝없이 움직였다. 하도 요동쳐서 중력으로도 붙잡아 맬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정리되지 않은 미학, 범위 지을 수 없는 부조화, 추한 것을 예쁘다고 비틀어보는 마음은 시간의 더께 탓일까, 새로운 지리학일까.

서울은 두드리면 모양이 변하는 금속과 같은 도시. 아침에 집을 나섰다 저녁에 돌아왔을 때 어제 만났던 친구가 오늘 영원히 사라지듯 옆집 세탁소가 카페로, 단골 떡집이 클럽으로 변한 광경을 보면 아방가르드한 어긋남이 무슨 모양인지 금방 알게 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카오스를 보며 외부인 같은 기분이 들긴 해도 5분이면 그 안에 속하게 되는 마음. 10년 뒤에 들러도 인테리어 하나 바뀌지 않아 사회주의적 냄새까지 풍기는 파리의 카페를 참아줄 서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티이미지뱅크

이 즈음의 건축 담론과 현재성에 충실한 강철 탑이 블루그린 유리를 덮은 채 도로 양쪽으로 부풀고 꼭대기에 불빛이 깜박거릴 때면 뉴욕 건축의 한 신과 얼핏 비슷해 뵈지만, 서울에는 덜 알려진 건물들이 보다 비범하고 다층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이크로 크기의 동네가 이렇게 자기들만의 반짝임을 가진 채 반항적으로 별난 도시가 또 어디일까.

200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 건설은 지리적 요건만으로도 충분했다. 도시는 무역과 상업을 발달시킨 강의 교차점이나 산으로 둘러싸인 만 주변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늘 도시의 요건은 지형이 아니라 자율성, 포용력, 그리고 역동성이 되었다.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가 도시의 전성기를 만드는 법. 서울의 에너지는 도시의 진정한 필요로부터 왔다. 이렇게 도시에 흉터를 남기는 건물들과 공간을 재구성하려는 이들 간의 교전지는 코너마다 르네상스를 만들고 있었다.

코로나의 인위적 끄트머리에 다다른 지금, 서울 어디를 가도 달라진 이면도로와 가로변, 카페와 레스토랑이라는 두 개의 부메랑이 둥근 활의 끝에서 만나 북적거린다. 신당동과 필동의 아크릴 입간판과 포마이카 테이블 사이로 재난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엑스트라들처럼 경쾌하게 블록을 메운 청년들을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서울은 소음과 재능 그리고 에너지의 장소라는 것을. 이때 독창적인 가게 주인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도시가 아닐 것이다. 적정 임대료와 어느 정도의 치안만 보장된다면.

도시는 더 고착화되거나 더 새로워지거나, 두 가지 양상을 띤다. 망가지고 버려지는 일은 성장의 과정. 수시로 개조되고 재탄생될 역량을 지녀야만 오래 생존할 것이다. 삶과 기회가 여러 층으로 얽힌 데다 하나같이 다이내믹한 과정에서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런던은 70년대의 펑크, 80년대의 스타일 컬처, 90년대의 다소 천박해 뵈는 남자 등등 계속 변하며 관심을 끌었다. 서울은 그렇게 주도적인 유행을 만들진 못했다. 모든 좋은 것처럼 어떤 일은 그냥 우연히 일어났다.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다치고 아물면서 성숙을 배우는 사춘기 소년처럼. 놀랍게도 빌딩 벽의 그림자에서 새로운 면모를 재발견하는 이들은 빠르게 진화한 청년들이었다. 도회적인 삶에 관한 한 당할 자가 없는 분석적 향유자들은 서울의 캐릭터를 생성한 뒤 곧바로 다음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은 곳곳에 깜짝 놀랄 만큼 밀도 높은 커피 하우스를 숨겼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더 많다는 데 내 티셔츠를 걸겠다. 어떤 땐 발에 치이는 게 바리스타가 아닐까 싶지만 커피는 도시 팽창의 연료. 카페는 하나의 장소이자 개념. 차라리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하나의 기관과 같다. 서울의 커피 붐 전방에 선 커피 메이커들은 커피 성당 같은 공간에서 베이커리부터 커피를 추출하는 과학적 브루잉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커피 경험을 만든다. 요악하면 서울은 커피 우주의 중심은 아닐지 모르지만, 커피 자격증을 갖춘 세계 유수의 도시가 되었다.

벨트 구멍을 늘리는 도넛 버거부터 불닭 치킨까지 방대한 스펙트럼의 감각을 안겨주는 도시의 버블은 매일 커진다. 사람들은 똑같이 페티시화된 경험을 원하지 않는다. 선택은 계속 자라난다. 탐닉과 변덕을 충족시키는 쾌락의 놀이터에서 어느 날은 바보처럼 먹고, 다른 날에는 스스로 그 죄를 용서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문제는, 원하는 걸 '갖는' 게 아니라 '아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가끔 서울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장면은 지금의 서울이 아니었다. 논두렁과 흙무더기, 잡초와 관목 사이로 보이는 철근들은 부러진 뼈 같았다. 전쟁을 이겨낸 건축물은 하도 드물어서 근대 조상들의 영혼처럼 그 자체로 행인을 인도해주는 거리의 안내판이 되었다. 지금 같은 인스턴트 졸작들의 6개월 시한부 오픈이 널뛰는 시대에 사람들은 기원을 따지고 유래에 현혹되었다. 그리고 단숨에 지난날을 낭만화하고 최신 핫 스폿에 아첨한다. 독산동 빵집에서 먹는 크림 치즈와 베이글을 두고 지나간 향수가 얼마나 남았는지, 누구의 장밋빛 기억이 가장 생생한지 경쟁하는 것이다. 파괴 불가능한 향수의 독점권을 우기는 미심쩍은 기쁨이라니!

도시의 자연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철학적이기도 하고 경제적이기도 하다. 도시가 어떤 고갈, 긴장의 자극, 법적 공황 상태, 무의미해진 신념을 만들 때 공원은 방금 태어난 세대에게 유년기 기억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비록 주택가 공터엔 나태한 맥주 캔이 뒹굴고, 고수부지는 고기 굽는 연기로 난잡하다 해도.

우리는 자주 문화 인프라가 적다고 불평한다. 도시는 복잡한 선택사항들로 이루어진 광활한 문화 공간이며 중요한 기술과 덜 중요한 기술들의 피라미드라서. 그러나 북촌 공예박물관을 거니는 시민들은 실제적이고 빼어난 상상력으로 거대 컨설턴트가 독점한 예술 파벌에 반발한다. 경험의 배고픔은 나이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상기시키면서. 그리고 청자 매병 뒤로 도시의 영혼을 느끼는 순간의 낯섦.

새로운 경험을 감당할 수 없다면 그 도시는 끝난다. 서울은 파우스트적 메트로폴리스인 뉴욕과 다르고, 눈앞에서 디즈니랜드가 된 런던과 다르고, 숭고한 종교가 스러지고 불안의 동의어가 된 보스턴과 다르다. 끝난 도시는 끝난 것. 시대는 그럴 의향이 있을 때 변할 것이다.

어느 저녁, 한강을 얼리는 겨울 바람이 멎고 마법 같은 귤색 노을이 질 때, 그 바람이 다시 남산의 극적인 산등성이를 향해 밀고 올라갈 때 지금의 서울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힘이 아니라 시민의 힘으로 만든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안에서 보고 겪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에 상관없이 서울은 최후까지 살고 싶은 도시라고 가만히 읊조리면서.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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