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물'이 된 반도체 찌꺼기...역발상으로 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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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이 된 반도체 찌꺼기...역발상으로 캐냈다

입력
2021.10.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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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올 초 백악관에서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관한 행정명령 서명에 앞서 반도체 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촌이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근래 불어닥친 완성차 출고난 또한 반도체 대란에서 비롯됐다. 반도체 없이는 우리 주변의 어떤 전자기기도 사용할 수 없다. 현대인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스마트폰은 물론 TV, 컴퓨터, 자동차, 드론에다 심지어 가정에서 사용하는 냉장고나 세탁기까지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를 떼어놓고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특히 D램과 낸드플레시로 대표되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위상은 압도적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삼성전자(38.3%)와 SK하이닉스( 21%)는 세계 메모리 시장의 과반을 점유하며 1, 2위를 달렸다.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02년 1,410억 달러에서 2018년 4,850억 달러로 급성장 했다. AI의 발달로 2030년에는 1조 달러로 전망되는데 문제는 생산량만큼 증가하는 폐기물이다. 메모리 1위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이 폐기물 재활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정에 사용된 물을 정화할 때 생기는 침전물(왼쪽 사진 위)과 현대제철에서 광석을 제련한 뒤 남은 찌꺼기(왼쪽 사진 아래)를 혼합해 성형하면 오른쪽 사진의 형석 대체제가 나온다. 삼성전자 제공


문제는 반도체 폐기물…침전 찌꺼기 재활용 방법은?

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반도체 세정 공정에는 화학물질과 가스 등이 사용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폐수 처리에 평균 12시간이 걸린다. 폐수 처리 과정에서는 침전물 형태의 찌꺼기가 배출된다. 폐수 슬러지다.

다행히도 폐수 슬러지는 쓸모없는 찌꺼기는 아니다. 시멘트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시멘트는 생석회(CaO), 실리카(SiO2), 알루미나(Al2O3) 등의 성분으로 구성된다. 기본적으로 석회석, 점토 등을 혼합한 원료혼합물을 1,400℃에 달하는 소성로에서 분쇄하고 석고를 섞어 시멘트를 만든다.

삼성전자 폐수 슬러지에는 20~30%의 CaO, SiO2 성분이 포함돼 있다. 슬러지를 소성로에 투입하면 나머지 유기성분들은 소각돼 날아가고 CaO, SiO2가 남아 시멘트의 구성 성분으로 재활용되는 원리다.

반도체 공정 중에는 폐수 슬러지가 발생하는데, 반도체 생산라인이 증설되면서 슬러지의 양도 늘었다. 삼성전자 제공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삼성전자 DS부문 폐기물 중 약 60%는 폐수 슬러지다. 이를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하면 삼성전자는 폐기물을 줄일 수 있고, 시멘트 회사는 안정적으로 원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이었다. 그러나 건설경기가 악화하면 건설 주재료인 시멘트 생산도 직격탄을 맞게 된다. 시멘트 생산량이 줄어든 만큼 재활용 가능한 폐수 슬러지의 양도 줄어드는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2018년 4월 폐수 슬러지 저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는 '케미컬 사용량 줄이기'와 '폐수 슬러지 함수율 줄이기', '시멘트 업체 추가 계약' 등을 통해 슬러지 처리 이슈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연간 7만5,000톤의 슬러지를 저감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 반도체 라인이 증설되면서 늘어난 슬러지 처리는 여전히 고민거리였다. 2019년 10월 폐수 슬러지 절감 해법을 찾기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시작했다.

‘불순물 불소 성분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

삼성전자 TF는 여러 논문을 살펴보다 철광석을 녹인 선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강(鋼)을 만드는 공정에 불소(F) 성분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냈다. 제철소의 제강 공정에서는 쇳물 속에 들어있는 황(S)이나 인(P) 등의 불순물을 더욱 쉽게 제거하기 위해 플루오린화칼슘(CaF₂)이 주성분인 형석을 사용하는데, 마침 폐수 슬러지에도 CaF₂가 포함돼 있었다. 형석 대체제를 찾은 것이다.

형석은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광물이다. 우리나라 광산에서는 형석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국내 제철회사들은 남미와 중국 등에서 형석을 수입한다. 현대제철은 그동안 연간 약 2만 톤의 형석을 수입해 사용했지만 삼성전자와의 협업으로 반도체를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로 형석을 대체할 수 있게 됐다. 반도체 찌거기가 하나의 '광물 광산'이 된 셈이다.


쇳물 생성과정. 그래픽=박구원 기자

슬러지가 형석을 대체하는 원리는 반응식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형석은 쇳물 내 황(S)과 인(P)을 제거하는 작용을 한다. 생석회(CaO)와 황, 인이 쇳물 속에서 반응하면 쇳물보다 밀도가 낮은 부유물이 생성돼 떠오르게 된다. 이때 형석의 CaF₂ 성분이 쇳물의 액상화를 촉진시켜 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촉매 역할을 한다. CaF₂ 성분이 풍부한 슬러지도 형석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폐수 슬러지에서 형석 대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와 현대제철, 재활용업체 제철세라믹은 지난해 8월 폐수 슬러지 재활용 기술협약을 체결해 공동 연구개발을 시작했고, 8개월 만인 지난 4월 30톤의 형석 대체품을 사용해 철강재 생산에 성공했다. 이 신기술은 한국환경공단의 1차 평가와 국립환경과학원 평가를 거쳐 최종 승인됐다.

신기술 개발로 그동안 시멘트공장에서만 활용됐던 폐수 슬러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될 길이 열렸다. 현대제철은 당장 형석 1만여 톤을 폐수 슬러지 재활용품으로 대체하는 등 형석 구매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 환경안전센터장 장성대 전무는 "폐기물 재활용률 100% 달성을 목표로 친환경 자원순환기술 개발을 지속해 ESG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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