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셰트 후보 잇따른 연정 주도 발언에
기사당 "총리 될 기회는 사민당에... 축하한다"
일각에선 "사퇴해야 할 사람이 현실감각 잃어"
“실시간으로 권력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봤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정권 재창출이 사실상 힘들어진 독일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자중지란에 빠진 모습이다. 사상 최악의 참패 속에 기민·기사당 연합의 총리 후보로 나선 아르민 라셰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총리가 기민·기사 연합 주도 연정을 이뤄낼 수 있다고 잇따라 주장하고 있지만 연합의 다른 한 축인 기사당은 되레 패배를 인정하며 사회민주당(SPD)에 축하 인사를 건넸다. 기민당 내부에서도 당이 반성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마르쿠스 죄더 기사당 대표는 28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총리가 될 가장 절호의 기회는 올라프 숄츠 사민당 총리 후보에게 있다”면서 사민당의 총선 승리에 대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기민당 내부에서도 총선 패배를 인정하는 의견이 속속 나온다. 기민당 소속 폴커 부피어 헤센주 지사는 “우리는 연립정부 구성을 책임질 아무 권한이 없다”고 말했고, 틸만 쿠반 기민당 청년연합 회장도 “우리는 선거에서 졌다”고 동의했다.
화살은 일단 라셰트 후보로 향한다. 라셰트 후보가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며 ‘자메이카 연정(기민·기사 연합, 자민당, 녹색당)’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죄더 대표는 이날 기사당 내부 회의에서 “이미 사민당 주도의 ‘신호등 연정(사민당, 자유민주당, 녹색당)’으로 사태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면서 “그러면 자메이카연정은 협상조차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의 반성도 잇따르는 모습이다. 기민당 소속인 미하엘 크레취머 작센주 지사는 “기민당은 이제 지난 수개월 내지 수년간의 잘못을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말루 드라이어 라인란트팔츠 주지사(사민당)는 쥐트도이체차이퉁(SZ)에 “옛날 같으면 이런 패배 후 총리 후보가 사퇴했을 텐데, 라셰트 후보는 자기가 연립정부를 이끌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면서 “현실감각을 잃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총선 패배 책임론은 16년 임기를 마무리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도 뻗치고 있다. 장기간 집권하면서 후계자 창출에 실패했다는 이유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메르켈 총리가 후임자를 단계적으로 관리하려고 시도했으나 되레 무질서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독일 정치학자 헤르프리트 뮌클러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기민당의 필수성분이 사라졌다”며 “메르켈이 빠진 기민당은 지도력도, 프로그램도 없다”고 꼬집었다.
메르켈 총리가 지난 네 차례 임기에서 사민당과 세 차례 연정을 실시하면서 당의 정체성을 흔들었다는 질책도 나온다. NYT는 “메르켈이 당의 외연을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당의 정체성을 잃었다”고 해석했다. 메르켈 총리의 개인적 매력에 기민당이 과도하게 의지한 나머지 중도 보수 성향 기독교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정책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WSJ는 “기민당이 장기집권하면서 단순한 피로감 이상의 무언가가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민당은 자신만의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환경 문제를 끌어냈지만 녹색당이 이 문제는 더 전문가였다”고 전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