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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동인과 화천대유

입력
2021.09.29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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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일
전형일명리학자·철학박사

편집자주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은 사주팔자에서 연유됐다. 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과 행동, 관습들을 명리학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본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서판교에 위치한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 사무실 입구 모습. 뉴시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서판교에 위치한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 사무실 입구 모습. 뉴시스

서양 정신과 사상의 원류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있다면 동양에는 '주역(周易)'이 있다. 예로부터 한자 문화권에서는 주역을 천지 운행과 성인의 지혜가 모두 담긴 것으로 여겨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했다.

이러한 주역이 불미스러운 일로 전 국민에 회자되고 있다. 회사 이름에 주역의 괘명(卦名)을 사용한 것도 생소하지만 의미도 왜곡해 결국 사달이 났다.

주역은 대부분의 점서(占書)와 마찬가지 위험스러운 말이 많아 사람들이 경계심을 갖고 위험 속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게 구성돼있다.

천화동인(天火同人)과 화천대유(火天大有)는 주역 64괘 중 각각 13번째와 14번째 괘(卦)다. 동인의 괘상은 하늘(天)을 상징하는 건괘 아래에 불(火)을 나타내는 이괘가 있다. 그래서 天火라 한 것이다.

불은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이들 둘은 다르지만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이것이 同人의 뜻이다. 즉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일을 도모하는 모양이다.

들(野)은 막힘이 없이 모두가 다 볼 수 있는 곳이니 공명(公明)하고 정대(正大)하게 사람을 모으면 형통하다(同人于野 亨). 그래야 곤란한 상황에서도 큰일(大川)을 성사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을 추진하는 군자 또한 바르게 나아가야 이롭다(利君子貞)는 의미다.

군자는 혈연과 학연, 지연 등 연줄을 이용한 인맥으로 뭉치지 말고, 무리 밖에서 사람들을 널리 구하여 함께하면 길(吉)하다고 해석한다.

대유괘는 바로 앞의 동인괘의 상·하괘를 뒤집어 놓은 도전괘(倒顚卦)가 된다. 건하이상(乾下離上)의 모양을 하고 있어 火天이라 한다. 천화동인이 해가 아래에서 떠올라 하늘과 같이하는 모습이라면, 화천대유는 해가 이미 떠 있어 천하를 비추고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대유괘는 '태양이 하늘 위에 있는 상'으로 만물을 비추고 생육하는 것이 큰 덕이다.

주역의 64괘 중 일음오양(一陰五陽)의 괘는 모두 여섯 개가 있다. 하지만 이효와 오효가 음양 상응(相應)하면서 일음의 소(小)가 오양의 대(大)를 거느리고 있는 것은 대유괘뿐이다. 그래서 대유(大有)는 크게 소유하고 있다고도 하고, 많이 모여든다고도 한다. 그래서 길괘다.

대유괘에서 형통함을 얻기 위해서는 때에 맞춰 인사(人事)를 잘하고 천명(天命)에 따라야 한다.

공자도 "사람과 더불어 함께 한 자는 사물이 반드시 돌아온다. 그러므로 대유괘로 이어 받는다’(與人同者 物必歸焉 故 受之以大有)고 했다"고 했다.

대산(大山) 김석진 선생은 천하동인에 대해 "공정하고 의리에 맞게 하면 어떠한 일이든 성공할 운이나, 삼가며 조심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며 또 "큰일을 하되 동인이 할 일과 아닌 일을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화천대유에 대해서도 "대유는 대체로 길한 운이다. 만사가 형통하고, 물질적인 일보다 정신적인 일에 좋다, 소인보다는 군자에 이롭다"고 설명했다. ('주역점해(周易占解)')

대동(大同)의 경우도 "의견이 분분할 때, 임금과 조정 대신, 백성 그리고 점괘가 일치하는 경우가 대동이다." ('홍범(洪範)') 이것이 후대에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로 진화됐다. 80년대 대학의 축제인 '대동제(大同祭)'가 바로 여기서 연유했다. 하나 되자는 것이 대동제의 목적이다.

그러나 천화동인과 화천대유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차린 사람들은 '덕행'보다는 '물질'을 추구하고, 전체보다는 자기들끼리의 이익만 극대화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주역의 정신과 목적을 훼손하고 자신들의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추구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주역은 군자(君子)의 근심이지 소인(小人)의 욕심이 아니다.

전형일 명리학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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