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고소라, 아프리카 말리 교도소서 옥사
1996년 체포 후 '징역 35년' 확정돼 수감
"끝까지 죄 뉘우치지 않아" 비판 목소리
80만 명 이상이 희생된 르완다 대학살을 일으킨 주범이 수감 중 사망했다. 복역 중에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그에 대해 르완다 관료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27일(현지시간) AP통신은 아프리카 말리의 한 교도소에서 테오네스테 바고소라 전 르완다군 대령이 80세 나이로 25일 옥사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국제형사재판소도 그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는데, 구체적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바고소라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을 이용해 1994년 4월 르완다 대학살을 주도한 전범이다. 후투족 출신인 하비야리마나 당시 르완다 대통령이 전용기를 타고 귀국하던 중, 비행기 격추 사건으로 숨진 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바고소라는 “투치족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시민들의 투치족 학살을 부추겼다. 당시 르완다 주둔 유엔 평화유지군을 이끌던 로메오 델레어 캐나다군 대장은 “바고소라가 학살 배후에 있는 ‘킹핀(중심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바고소라와 친분이 있던 학살 생존자 도낫 루타이시르도 AP통신에 “국방장관이었던 바고소라가 대통령 사망 이후 국가 통치권을 넘겨받았고, 대량학살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약 100일간 이어진 ‘인종 청소’로 목숨을 잃은 사람만 80만 명을 웃돈다. 당시 르완다 인구가 700만 명 정도였던 걸 감안하면,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희생된 셈이다. 일부 기관에선 “사망자는 100만 명이 넘는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르완다 학살이 “나치의 홀로코스트 이후 최악의 제노사이드(인종학살) 범죄”로 불리는 이유다.
대학살 직후 바고소라는 카메룬으로 망명했고, 1996년 그곳에서 체포됐다. 2002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첫 재판이 열렸으며, 2008년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다만 2011년 항소심에서 감형돼 최종적으로는 징역 35년형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바고소라가 르완다 총리나 헌법재판소장 등 고위 관료를 살해한 것은 물론, 조직적으로 이뤄진 투치족 학살에도 깊숙이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바고소라의 사망 소식에 르완다 외교관들은 그가 끝까지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네덜란드 주재 르완다 대사인 올리비에 은두훙기레는 “바고소라는 제노사이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거나 반성할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조기 석방을 요구했다”며 그의 뻔뻔함을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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