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서 요구
무력시위와 대화의지 '강온양면'
북한이 미국을 향해 한반도 주변 합동군사연습과 전략무기 투입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전략 탓에 핵을 보유했다며 한반도 긴장 책임을 조 바이든 미 행정부로 돌리면서도, 해당 정책을 중단하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유화적 제스처도 취했다. 이 같은 입장은 28일 오전 북한이 동해상에 미확인 발사체를 발사한 지 약 20분 뒤 나왔다. 무력시위는 이어가면서도 대화 여지는 남겨두는, 강온양면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미국 정부가 진정으로 조선의 평화를 바란다면, 조선반도(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합동군사연습과 전략 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대(對)조선 적대정책 포기의 첫걸음을 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조선전쟁이 70년이나 종결되지 않은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항시적 긴장과 대립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원은 미국의 적대적 대북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적대적 의사가 없다'는 뜻을 미국 정부가 말이 아닌 실천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김 대사의 발언은 최근 북한이 밝힌 ‘종전 선언’ 전제 조건을 보다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유엔총회에서 종전 선언 카드를 꺼내자 이틀 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독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불공정한 이중기준 철회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합동군사훈련과 전략무기 투입 중지는 ‘적대시 정책 철회’와 맥을 같이 한다. 국제 무대에서 실질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한반도 갈등의 책임을 미국 및 한국으로 돌리며 핵 보유 정당성도 강조했다. 김 대사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거론하면서 “우리가 핵을 가져서 미국이 적대시하는 게 아니라,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이 우리를 적대시해 우리가 핵을 갖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북한에는 외국군이 전혀 없지만, 한국에는 약 3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며 한미군사연습을 비판했다. “미국 정부가 군사동맹 같은 ‘냉전 유물’을 갖고 우리를 위협한다면 정말 재미없을 것”이라는 경고도 남겼다.
한국 정부를 향해서도 김 대사는 “남조선 당국이 미국의 묵인하에 첨단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전쟁 장비를 반입하는 것도 조선반도의 균형을 깨뜨리는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남북 관계가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수위를 넘지는 않았다. 김 대사는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는 걸 포기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조선에 대한 이중 기준을 철회하는 용단을 보이면 기꺼이 화답할 준비가 돼 있다” 등의 언급으로 대화 의지를 내비쳤다. 아울러 “미국이나 남조선 등 주변국의 안전을 절대 침해하거나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태를 확전시키지 않겠다는 의사도 에둘러 표명했다.
다만 미국은 북한에 ‘조건 없이 협상장에 나오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당장 실질적 대화로 이어지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젤리나 포터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종전 선언이나 대북 제재 완화에 관한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우리는 선제 조건 없이 북한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만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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