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통해 애인을 찾는 시대. 사진 몇 장과 소개글 몇 줄이면 가입할 수 있고, 내 취향에 맞는 이성을 직접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팅 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미 2년 전에 '비게임 앱 중 전 세계인이 가장 돈을 많이 지출한 앱'이 데이팅 앱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2012년 창립된 틴더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데이팅 앱이다. 이미 1억 명 이상이 설치하고, 세계적으로 100억 번이 넘는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국내엔 서류 심사를 통해 학력·재력 등의 능력을 검증 받고 가입할 수 있는 앱, 본인의 사진을 올려 회원들의 실시간 (외모) 심사를 받은 뒤 합격하면 가입이 가능한 앱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팅 앱이 있다. 이와 관련해 부정적 이야기들도 많이 나온다. 만남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더 큰 자괴감이나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소개팅보다 데이팅 앱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직접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빠르고 간편하다" "주선자 등 이것저것 신경써야 하는 불편함이 없다" "사람을 통해 소개 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내가 원하는 외모의 이성을 사진을 보고 고를 수 있다" "맺고 끊는 과정이 비교적 쉽다" 등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많은 답변은 "외로워서"였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일차적으로 찾는 건 아마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일 것이다. 상대가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좋아해 준다고 느껴질 때 마음을 짓누르던 공허함도 가신다. 데이팅 앱을 악용하는 범죄자들은 피해자들의 외로움을 먹고 사는 괴물들이다. 이런 괴물들이 지금도 수많은 앱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데이팅 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무척이나 많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더티 존(Dirty John)'을 봤다. 팟캐스트에서 6주 만에 1,000만 건 이상 다운로드를 기록한 범죄 실화를 8부작 이야기로 재구성한 드라마다. 어느 정도 각색을 하긴 했지만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만큼 몰입도가 꽤 높다.
지난 2004년 영화 '트로이'에서 브래드 피트 뺨치는 매력을 자랑했던 호주 출신 배우 에릭 바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도 작품에 강한 호기심을 갖게 했다. 하지만 '더티 존'을 보고나면 젠틀하고 멋진 에릭 바나가 '더티'하게 보이기까지 하니 그의 연기력을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더티 존'은 능력있는 돌싱 데브라 뉴웰(코니 브리튼)의 이야기를 다룬다. 성공한 인테리어 사업가인 데브라는 네 번의 결혼을 거친 중년의 이혼녀이자 두 딸을 둔 엄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은 바로 '진정한 사랑'이다. 그렇게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도 또 사랑에 목말라 하는 게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사람마다 삶의 기준이나 가치관은 다를 수 있으니까.
데브라 역시 이성을 만나는 창구로 데이팅 앱을 택한다. 그는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많은 남자들과 데이트를 시도하지만 만남은 실망만 남기고 데브라의 쓸쓸함은 커져만 간다.
그러다 어느 날, 잘생긴 마취과 의사 존 미한(에릭 바나)을 만나게 된다. 즐거운 대화 끝에 함께 데브라의 집으로 온 두 사람. 존은 데브라를 침대로 이끌고, 데브라는 "거실에서 대화를 더 나누자"며 이를 거부한다. 화를 버럭 내며 나가버리는 존. 데브라는 돌변한 그의 모습에 놀라고 상처 받는다.
다음 날 존은 데브라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실수를 정중히 사과한다. 두 번째 만남부터 그는 데브라에게 무리해서 다가가지 않고 일부러 거리를 두며 그녀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린다. 데브라는 존에게 완전한 신뢰를 갖게 되고 둘은 급격히 가까워진다. 존의 세심한 애정 표현과 꿀 떨어지는 눈빛·말투로 인해 데브라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딸들이 엄마의 새 연인을 강하게 경계하지만 그럴수록 존과 데브라의 결속력은 강해진다. 이들은 아무도 모르게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까지 하게 된다. 조금씩 존의 이상신호(데브라의 돈을 맡아주겠다는 등)가 감지되지만 데브라는 강한 믿음으로 의심을 튕겨낸다. 엄마가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딸 베로니카(주노 템플)가 존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결과는? 존은 의사도 아닐뿐더러 심각한 약물중독에 협박, 스토킹 등 전과 기록이 있는 아주 위험한 남자였다.
존을 철석같이 믿는 데브라의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답답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극 전개상 데브라보다 시청자가 먼저 존의 실체를 알아서일지도 모른다. "데브라, 안돼!"라 외치고 싶은 상황의 연속. 하지만 그녀는 눈치가 없다기보다 너무 어렵게 찾은 인생의 반쪽을 다시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을 게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서까지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가엾은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수차례 이혼 경험에도 또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서는 데브라는 '더티 존'에서 순수하고 외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오히려 딸들이 엄마보다 어른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코니 브리튼은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미니시리즈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에릭 바나는 비열하고 교활한 본성을 숨긴 두 얼굴의 사내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여자가 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자상하다가 순식간에 얼음처럼 차갑게 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의 탁월한 연기력이 극에 개연성을 부여한 지점도 있다.
데이팅 앱의 위험성을 이미 우리는 많은 뉴스들을 접해 알고 있다. 성범죄는 물론, 데이팅 앱이나 SNS를 통해 친분을 쌓은 뒤 돈을 요구하는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문제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전문가는 "실제 만남을 갖는 것보다 소리나 영상을 통한 간접적인 만남이 이성을 향한 환상을 더 많이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그 이유를 분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데이팅 앱의 부정적인 면만 들췄지만, 무조건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실제로 앱에서 만나 결혼까지 이어진 긍정적 사례들도 많이 있지 않은가.
다만 데브라의 사연을 보며 느낀 건, 결국 스스로가 외로움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통해 내 마음속 외로움과 공허함이 완전히 채워질 수는 없다. 일시적으로 채워진다 해도 분명히 또 외로워질 테니까. 상대가 설령 '더티 존'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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