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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야홍' 바람의 딜레마... 중도 확장? 보수 분열?

입력
2021.09.27 17:00
수정
2021.09.27 19:17
24면
0 0

편집자주

‘송용창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2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2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홍준표 대통령 보고 싶다” “홍준표 대통령 만들려면 정신 차려라”

이는 2030세대 남성들이 주축인 인터넷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홍준표 대통령’은 이들의 바람대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유력한 선택지로 떠올랐다. 어쩌면 게임 속 농담 같았던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 ’돌돌홍’(돌고 돌아 홍준표)에 정치적 리얼리티를 부여한 것은 2030세대 남성들의 에너지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초기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 상승이 여당 지지자들에 의한 역선택이란 의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무야홍' 바람의 진원지가 2030세대 남성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야권뿐만 아니라 역선택에 가담했던 여권 지지자들조차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 바람은 4·7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을,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이준석을 당선케 했던 그 정치적 이변과 맞닿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7 재·보궐선거를 통해 집단적 힘을 자각한 2030세대 남성들이 이준석 당 대표에 이어 홍준표 대통령 만들기에도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두 번의 성공을 경험했던 이들의 프로젝트가 이번에도 통할까.


위선을 깨는 무야홍, 만렙의 캐릭터로

2030세대 남성들이 홍 후보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 것은 무엇보다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하다”는 점이다. 홍 후보가 지난 10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김준일 뉴스톱 대표 등이 패널로 참여해 진행된 압박 면접에서 '막말 발언으로 여성층 지지율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자 “그렇다”고 인정한 게 대표적 사례다. 구질구질하게 변명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비친 것이다. 일각에선 “홍 의원의 과거 발언이나 이미지를 몰라서 그런다”는 시각도 있지만 젊은 세대의 답변은 다르다. 한국외국어대 재학 중인 최모씨는 “홍 후보가 막말 정치인이라고 하지만, 현 정부 인사들의 위선적이고 내로남불 하는 모습에 염증을 느낀 젊은 세대엔 오히려 시원하고 통쾌한 모습으로 역전됐다”고 말했다. 홍 후보의 과거 막말이 재치 있는 입담과 결합돼 그의 별칭대로 톡 쏘는 콜라 맛으로 인식된 셈이다. 더군다나 조국 사태 이후 부각된 위선의 시대에서 위악적 포즈가 보다 진실한 모습으로 여겨지는 것도 젊은 세대의 달라진 세태다.

사법고시 부활이나 모병제 등 홍 후보의 정책 공약이 이들의 관심에 부합한 측면이 있지만 이런 스타일의 캐릭터 자체가 '홍준표 팬덤'의 핵심 동력이라는 데에 큰 이견은 없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젊은 세대 사이에선 이미 지난해부터 홍준표 캐릭터를 이용한 밈이 놀이 소재로 유행했다”며 “홍준표 후보가 부상할 여건이 조성돼 있었던 셈이다”라고 말했다. 어찌보면 재미있는 게임 속 캐릭터 같은 이미지가 현실 정치 무대로까지 확장돼 힘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무적의 야권 주자’ 홍준표는 2030 남성들에겐 현실의 불만을 해소하는 만렙의 게임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3일 오후 대구 동성로 민주광장에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는 모습. .뉴스1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3일 오후 대구 동성로 민주광장에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윤석열 후보가 자초한 반문 비윤의 정치 공간

2030세대가 홍 후보로 집결하는 과정에서 야권 유력주자인 윤석열 후보의 헛발질도 빼놓을 수 없다. ‘주 120시간 노동’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등 잇따른 말실수가 젊은 세대들이 윤 후보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든 일종의 잽이었다면,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은 결정타였다. 당내 갈등 과정에서 이 대표의 정치적 미숙함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 대표는 여전히 2030세대의 정치적 결실이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윤 캠프가 필요 이상으로 이 대표와 마찰을 빚으면서 젊은 층에서 미운 털이 톡톡히 박혔다”며 “홍 후보가 이 대표 편을 들면서 반사이익을 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반문(反文) 비윤(非尹)’의 정치적 노선을 낳는 효과를 초래했다. 특히 윤 후보가 반문 기치만 내세우고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반문 비윤의 공간은 더욱 확장됐다. 야권에서 윤 후보를 지속적으로 공격한 홍 후보가 세대를 떠나 호응이 늘고 있는 것도 비윤 정서와 무관치 않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전문위원은 "홍 후보의 최근 지지율은 20대를 넘어 전반적으로 다 올랐다"며 "탄핵 과정에서 국민의힘에서 이탈했던 보수층이 윤석열로 모였다가 윤 후보에게 실망하면서 다시 홍 후보 측으로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외교안보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외교안보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무야홍의 딜레마, 중도 확장성 vs. 보수 결집력

젊은 세대를 포함해 반문 비윤 표심을 흡수하게 되면 홍 후보 주장대로 본선 경쟁력이 윤 후보보다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여권 일각에서 윤 후보보다 홍 후보를 더 까다로운 맞수로 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진영주의가 한층 강화된 정치 현실에서 홍 후보 노선은 보수 본진에선 ‘내부 총질’이거나 ‘실체 없는 바람’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2030세대 표심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데, 홍 후보가 확실한 지지층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윤 후보만 공격하다 보니까 역선택을 노린다는 식으로 보수층의 반감도 크다”고 지적했다.

달리 보면 홍 후보의 확장 전략이 보수의 결집력을 약화시키고 보수를 분열시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윤 후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조국 전 법무 장관을 두둔하는 것으로 비쳐 '조국수홍' 논란에 휩싸였던 것도 홍 후보가 안고 있는 딜레마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도 확장과 진영 결집은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늘 제기되어 왔던 상호 충돌적인 과제다.

홍 후보가 2030세대 표심을 모으고 있지만 이준석 대표와 사정이 다른 것도 그로선 쉽지 않은 숙제다. 30대 당 대표란 새로운 기대감을 불어넣은 이 대표와 달리, 홍 후보는 가벼운 막말 정치인이란 중·장년층의 고정된 인식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당내 경선을 통과하기 위해선 진영의 코어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국민의힘 의원들은 홍 후보가 나서면 본선에서 필패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양날의 칼 2030 남성... 캐스팅보트는 확실

2030 세대 남성 표심 역시 양날의 칼이다. 이 표심이 집단적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정치 현상을 만드는 것은 역으로 보면 그동안 이들의 이해관계가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을 등에 업으면서 새로운 정치적 동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이 표심이 안티 페미니즘 성향을 띠고 있어 확장성의 한계 역시 분명하다. 자칫 여성층을 놓칠 수 있는 장애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홍 후보가 여성 정책을 잘못 내놓았다간 이도 저도 아닌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홍 후보 캠프 관계자도 "고민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며 "페미니즘 대신 휴머니즘을 내세우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국민의힘이 정권 교체 과정에서 홍 후보와 비슷한 딜레마를 안고 있는 형국이다. 이념적으로 보수 결집과 중도 확장, 세대별로는 중·장년층과 젊은 세대 간 결합은 정권 교체를 위한 필수 과정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서 '무야홍 바람'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비윤 정서 역시 커져 자칫 보수층 분열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경선에서 윤 후보가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 승리하더라도 지금으로선 2030 표심이 윤 후보를 찍는다고 볼 수 없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이재명 대 윤석열로 본선이 치러지면 2030 표심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며 "2030세대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박빙의 대선 본선에서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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