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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경의 엔터시크릿] '루저' 이정재가 눈물나게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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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경의 엔터시크릿] '루저' 이정재가 눈물나게 반갑다

입력
2021.09.2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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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재의 열연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틸 컷

배우 이정재의 열연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틸 컷


"연기란 참 하면 할수록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해요. 아는 만큼 재미를 느끼게 되거든요."

이정재

배우 이정재가 일을 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전 세계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급기야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를 제치고 미국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한국 외에도 홍콩 태국 대만 베트남 등 동아시아 지역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중동 지역과 멕시코 페루 등 중남미 지역의 여러 나라에서 1위에 올랐다.

'오징어 게임'은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이들이 거대한 공간에 갇혀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색채감이 돋보이는 미장센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배우들의 열연이 만난 '오징어 게임'은 9회까지 정주행하게 만드는 강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이 중심엔 이정재가 있다. 참가번호 456번, 쌍문동 성기훈을 연기한 이정재는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든다.

요즘 젊은 관객들에겐 '신세계' '관상'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의 카리스마 넘치는 이정재의 모습이 익숙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정재는 1999년 '태양은 없다', 2003년 '오, 브라더스' 등을 통해 이미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 바 있다. 가볍고 껄렁한 연기도 잘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오징어 게임' 속 이정재는 성기훈 그 자체다.

이혼남에 정리 해고를 당하고 도박과 사채 빚에 허덕이는 성기훈은 소위 말하는 '루저'지만 '악인'은 아니다. 그에겐 인간적인 정과 의리 그리고 순수함이 있다. 수척한 얼굴, 덥수룩한 머리 위에 대충 걸친 모자, 구겨진 양복바지에 싸구려 운동화를 신은 성기훈의 모습은 우리가 알던 '잘생김 묻은' 이정재를 떠올릴 수 없게 한다.

배우 이정재의 열연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틸 컷

배우 이정재의 열연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틸 컷

엄카(엄마 카드)를 훔쳐 돈을 인출하고, 도박으로 딴 돈을 소매치기 당하고, 여직원에게 팁으로 준 돈을 돌려받아 인형뽑기로 딸의 생일선물을 마련하는 한심한 남자. 비열했다가 슬퍼했다가 분노했다가 딸 앞에선 한없이 따뜻해지기도 하는 성기훈의 얼굴을 이정재는 마치 그의 삶을 살아본 것처럼 선명하게 그려낸다.

또한 게임에 돌입한 후에는 생존에 대한 갈망과 혼란 등 인간 내면의 여러 감정을 자유자재로 내보인다. 믿었던 동네 친구의 배신에 아파하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절박한 몸짓과 표정이 보는 이들을 극한의 상황 속에 더 스며들게 한다. 지난 1993년 데뷔한 이정재의 넓은 연기 스펙트럼과 켜켜이 쌓아올린 경험치가 '오징어 게임'을 통해 폭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작품에 임할 때마다 예전에 했던 표현 방식은 가급적 안 하려고 한다. 연기란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다"며 겸손함을 드러낸 바 있다. 또한 "출연작 중 인생작을 몇 개만 꼽아달라"는 기자의 요청엔 "모든 작품들이 나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 거 같다. 실패한 영화조차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이정재에게도 당연히 슬럼프가 있었고 모든 작품이 흥행했던 것은 아니다. 배우로서 늘 좋은 평가를 받고 좋은 결과만을 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노력으로 바라봤다. "만드는 작업을 즐겁게 생각해야 돼요. 열심히 하는 거보다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하면 할수록 많이 알게 되고, 아는 것만큼 더 재미를 느끼게 되죠."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 성기훈 역을 이정재에게 맡긴 이유에 대해 "늘 멋진 이미지를 갖고 계신데 그것을 한 번 망가뜨려 보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감독의 바람대로 이정재는 완전히 망가졌고, 멋짐을 내려놓으면서 그의 연기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이정재를 처음 본 해외 관객들은 그가 얼마나 세련된 패셔니스타인지를 알게 되면 아마 깜짝 놀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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