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속도 5030, 방향은 맞지만 디테일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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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속도 5030, 방향은 맞지만 디테일이 틀렸다

입력
2021.09.25 05:00
수정
2021.09.2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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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서울 광화문 앞 도로에 붙어 있는 '안전속도 5030' 안내판. 뉴스1


<26> 도시의 속도, 안전과 효율을 모두 고려해야

현대 도시에서 속도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더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더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1순위 생존 전략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배송은 물론이고 심지어 코로나19 방역에 이르기까지 속도는 늘 강조된다. 이른바 ‘골든타임’으로 대표되는 신속한 대응은 여러 위기에서 우리를 구해왔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와 도심항공교통(UAM), 드론은 우리 도시를 지금보다 더 빠르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도시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노력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파리시장 이달고는 올해 8월, 파리 시내 모든 도로의 속도제한을 시속 30㎞로 낮췄다. 우리나라도 도심의 속도제한을 강화하는 ‘안전속도 5030’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속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과 낮추기 위한 정책이 공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도시의 적정속도는 얼마일까.

도시의 속도, 기준은 사람

도시의 속도는 비약적으로 높아져왔다. 더 빠른 교통수단이 계속 등장했고, 인간도 그 속도에 적응해왔다. 튼튼한 두 다리나 마차에 의존했던 때에는 상상할 수 없던 수십, 수백 배 빠른 도시에서 살고 있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시작된 도시의 속도혁명은 도시고속도로와 지하철을 통해 한층 강화됐고, 초현실적 새벽배송은 일상이 됐다. 이제는 도시의 하늘도 속도경쟁에 뛰어들 전망이다. 드론과 UAM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계속 빨라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까.

사람의 속도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출근시간에는 빨리 걷지만 점심때에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움직인다. 서울시청 앞 대로는 속도감이 느껴지지만 바로 옆 덕수궁 안마당은 한가롭다. 같은 길 위에서도 배달라이더는 달리지만 여행객의 발걸음은 여유롭다. 이처럼 도시는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수많은 주체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하루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그러니 도시는 이들의 사정을 포용하는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이 돼야 하며, 도시의 속도 역시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속도를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간선도로의 영어 표현은 ‘Arterial’인데 동맥(Artery)으로부터 파생된 단어다. 지역 간을 잇는 고속도로나 대로들은 동맥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심장에서 뿜어낸 피가 몸 구석구석에 닿으려면 동맥을 힘차게 달려야 하듯 간선도로는 고속으로 많은 사람들을 빠르게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도심에서는 그 속도를 줄여야 한다. 이곳에서는 실제 이동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므로 빨리 달려봐야 오십보백보다. 도심에서 차량은 많은 보행자와 만나고, 구간마다 신호등 눈치를 봐야 한다. 게다가 자전거나 이륜차와 갓길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도심에서는 속도보다 안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

도심을 통행하는 사람은 무엇을 타는지에 따라 저마다 속도가 다르므로 배려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결과가 초래되기 쉽다. 도심에서 자전거의 평균 시속은 10㎞ 내외로 보행자 속도(4.3㎞)의 두 배가 넘는다. 자전거가 빨리 달릴 때는 시속 20㎞가 넘으니 속도의 차이로 인해 돌발상황이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보행자가 자전거를 보지 못해 부딪히기도 하고, 보행자를 피하려다 자전거가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보행자가 있는 곳에서는 자전거가 보행자의 속도에 맞추는 배려가 있어야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다.

차와 자전거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차량이 시속 50㎞를 잘 지킨다 해도 자전거의 평균 속도보다 다섯 배나 더 빠르다. 조그만 실수도 대형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자전거도로가 따로 없는 경우 ‘자전거는 차도 갓길을 이용하라’는 통행 원칙은 자동차의 배려를 필수적으로 전제한다. 자동차가 자전거를 발견하면 시속 10㎞ 내외의 서행을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다만 실효성에는 많은 의문부호가 남는다.

때와 장소를 가리는 속도정책

속도를 낮추면 더 안전해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안전을 위해 도시의 속도를 무작정 낮출 수는 없다. 도시의 속도는 도시경쟁력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때 문제로 여겨졌던 ‘빨리빨리’ 문화는 근면 성실함에 더해져 우리나라를 단기간에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만들었다. 필요하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공기에 맞춰 고속도로를 놓고 반도체를 만들어 팔았다. 세계 최고의 배달체계는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일상을 유지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전도 확보하면서 도시의 속도를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핵심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는 데에 있다. 최근의 도시 속도제한 강화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며 총론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제는 섬세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선 ‘도시부 일반도로’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는 도시 내 도로의 기능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렵다. 물론 ‘소통상 필요한 경우 시속 60㎞까지 허용’한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실제 적용된 사례를 보면 충분한 분석은 없었던 것 같다.

한강 다리의 경우 소통이 매우 중요하며 도로를 횡단하는 보행자가 없는데도 시속 50㎞ 제한을 적용하고 있다. 강·남북을 연결하는 주요 간선도로인 왕복 14차선 영동대로도 예외가 아니다. 주변이 대부분 그린벨트로 보행자가 거의 없는 헌릉로 역시 50㎞로 강화됐다. 보행자와 자전거, 개인형 이동수단(PM)이 복잡한 통행을 하는 사대문 안에서 시범사업한 결과를 전혀 다른 기능과 주변환경을 가지고 있는 도로에까지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소통이 원활한 때에도 강화된 속도제한은 지켜야 하니 그만큼 도로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텅 빈 동호대교와 50㎞ 속도제한. 김진유 교수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속도제한은 더 큰 문제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스쿨존 속도제한은 특별한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실질적으로 365일 24시간 적용된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한밤에도, 등교하지 않는 휴일에도 규정속도를 지키며 서행해야 한다. 과연 합리적일까.

우리보다 훨씬 엄격한 교통법규를 가진 나라들도 대부분 스쿨존의 속도제한은 어린이가 실제 도로에 보행하고 있거나, 미리 정해놓은 등·하교 시간만을 대상으로 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쿨존에서는 어린이가 보일 때만 시속 25마일(약 40㎞) 제한이 되고, 시드니와 싱가포르의 경우 평일 등·하교 시간에만 시속 40㎞ 이하의 속도제한이 적용된다. 바꿔 말하면 이 시간을 제외하면 일반도로의 규정을 적용받는다는 것이다.

국가별로 다른 스쿨존 속도 제한. 왼쪽부터 서울, 시드니, 로스앤젤레스의 스쿨존 속도 제한 표기판. 김진유 교수, 이호준씨(시드니), 김기혜씨(로스앤젤레스) 제공


섬세한 속도가 도시를 살린다

모든 도시정책이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도로를 더욱 안전하게 만드는 속도제한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도시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결국 삶의 질에도 악영향을 주게 된다. 극단적인 파리의 정책이 일견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과하다고 느껴지는 이유이다.

단지 ‘도시부’라는 한 가지 기준을 적용하기보다는 도심과 부도심, 일반주거지, 외곽지역 등으로 세분화해 속도제한에 차등을 둘 필요가 있다. 세종대로와 헌릉로에 같은 속도제한을 하는 것은 난센스다. 더 나아가 필요한 시간에만 제한하여 도로의 효율성을 높이자. 학생들이 없는 야간이나 새벽에는 스쿨존을 해제하여 속도를 정상화하자. 새벽이나 늦은 밤 출근하는 시민들의 통근 시간은 짧아질 것이고, 도시는 안전과 속도를 모두 얻을 수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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