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 해봤다]당근마켓 초보 나눔러?
첫 나눔 받고 생긴 궁금증 "왜 나눔을 할까?"?
①고향집 물품 샅샅이 살펴 나눔 물품 선정?
②평소 안쓰던 물건 막상 내놓으려니 망설여져?
③가족 설득해 물품 챙겨 나눔 올려?
④순식간에 여러 곳서 연락 받고 놀라?
⑤나눔 위해 만난 짧은 순간 이야기와 감정 공유
모든 건 베개로부터 시작됐다. 인턴을 위해 고향 대구를 떠나 서울서 시작된 첫 자취 생활은 막막하기만 했다. 당장 필요한 살림살이를 구하기 위해 말로만 듣던 당근마켓을 깔았다. 이것저것 물건들을 둘러보는데, 주황색 하트가 붙은 나눔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사서 한 번 쓰고 보관해뒀다는 새 베개였다. 서울 상경에 첫 자취 등등 구구절절한 나의 사연에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나의 당근 첫 거래는 '나눔'이 됐다.
베개를 받기로 한 날은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비를 뚫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이렇게까지 베개를 받아야 할까? 차라리 돈 좀 주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음료수라도 사가려 했는데, 시간이 촉박했다. 빠른 걸음에 우산을 쓰고도 바지가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왠지 모르게 설레는 마음으로 당근 이웃을 기다렸다. '서로 모르는데 알아볼 수 있을까, 무슨 옷을 입었는지 말씀드려야 하나, 아 그건 너무 소개팅 같나' 싶은 생각들이 차례로 머리에 떠올랐다. 다행히 베개가 담긴 커다란 파란색 쇼핑백은 충분히 눈에 띄었고,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물건을 건네받고, 1초 남짓한 인사로 나눔은 끝났다.
그 사람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쏟아지는 비에 우산을 쓰고, 자기 몸보다 큰 파란색 쇼핑백을 들고 서 있던 모습은 생생하다. 베개가 젖지 않도록 품에 꼭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 사람은 이 비오는 날 왜 굳이 시간을 들여 나눔을 하셨을까?'라는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았다. 타인에게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당근마켓의 나눔러들(나눔을 하는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이득 될 것도 없는, 손해 보는 장사인 나눔을 하는 걸까?
나눔을 결심했지만...내 안의 숨은 욕심과 마주하는 순간
나눔을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을 앞두고 대구 고향집에 예정보다 이틀 일찍 내려왔다. 민족의 대명절을 맞아 착한 일도 하고 이웃들과 정을 나눌 수 있겠다는 나름의 명분이 생겼다. 가족들에게 나눔 할 만한 것을 물어보니 스탠드를 나눔 하겠다는 언니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그걸 써서 공부해서 합격했으니 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과학적이지 않은' 설명이 따라왔다.
막상 나눔 하려니 어떤 것을 나눠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우리 집에서는 사용하지 않아 쓸모가 없으면서, 최대한 새것이거나 깨끗한 것을 고르려고 했다. 몇 년 동안 포장 그대로 서랍에 처박혀 있었던 손수건을 가장 먼저 집어 들었다. 선물 받아 박스 그대로 찬장에 들어가 있던 보온병도 꺼냈다.
있는지도 잊어버리고, 사용할 생각도 없었던 물건도 막상 나눔을 하려 하니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 이건 잘 쓸 것 같은데' '이건 돈 받고 팔아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욕심이 많았나.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이것저것 내놓는 나눔러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오래전 선물로 받았지만 몇 년째 태그도 뜯지 않은 채 신발장만 지키고 있던 신발도 꺼내 들었다. 신발은 아직 깨끗했다. 언제부터 있던 건지도 모르는 청소용품 세트를 주방 구석에서 발굴해냈다. 열어보니 구성품이 꽤 알찼다. '아 이건 진짜 청소 할 때 쓸모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망설여졌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그대로 있었다는 생각에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청소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가면 제 역할과 쓸모를 다하며 살 수 있겠지.
가득한 나눔거리, 한가위의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
물건을 챙기고, 적당한 크기의 쇼핑백을 고르고 있는데, 밭에서 고구마를 캐던 아빠가 돌아왔다. 퇴직 후 작게 농사를 짓는 아빠가 땀방울로 기른 고구마가 창고에 한가득이었다. 그야말로 좋은 나눔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품 가치가 없어 팔지 못하는 고구마를 모아놓은 상자에서 상태가 가장 좋은 것들로 담았다. 다섯 개만 담았는데도 벌써 쇼핑백이 묵직했다. 무게 때문에 더 많이 가져갈 수 없어 아쉬웠다.
각각 제품들을 쇼핑백에 넣어 모아두자 선물 꾸러미 같았다. 집에 있는지도 몰랐던 쓸모없는 물건들이 선물이라니. 이상한 일이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챙겨 나오는데 마치 내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루돌프와 함께 길을 떠나는 산타클로스라도 된 것 같았다. 아직 누구에게 가게 될지도 모르는 물건들이 주인을 잘 찾아가야 할 텐데.
정성껏 찍은 사진을 올리고 나눔 글을 처음으로 올렸다. 나눔 글자 뒤의 주황색 하트를 보니 벌써부터 착한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먼저 연락을 주신 분과 시간을 맞춰 약속을 잡는데, 다른 연락들이 이어서 왔다.
의외로 고구마의 인기가 높았다. 물건은 하나인데 여러 명이 연락 오니 다 나눌 수 없어 난감했다. 나눔은 선착순이 아니라는 당근 자체의 정책이 있지만 일단 최대한 선착순의 원칙을 지켰다. 정말 몇 초 차이로 나눔을 놓친 이웃에게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이 드실 수도 있을 텐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매너 있게 알겠다며 받아들였다. 시간이 안 맞아 못 받게 되어도 '따뜻한 마음 너무 감사하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아무것도 못 주고도 감사하다는 말을 듣게 되어 내가 더 고마웠다.
쏟아지는 연락에 잠시 '인싸'의 삶이란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6개나 글을 올려서 그런지, 채팅으로 시간을 조율해 약속을 잡고, 못 받게 된 이웃에게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폰이 금세 뜨거워지고, 배터리용량이 훅 줄었다. 평소 연락하는 사람이 매우 한정적인 '아싸'에겐 조금 벅찬 시간이었다. 나눔 드릴 사람들이 모두 정해지고 약속을 정했다. 벌써부터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각자 주인을 찾아간 물건들, 사람도 사연도 제각각
가장 먼저 나눔으로 만난 이웃은 안경이 잘 어울리는 멋쟁이 여사님이었다. 커피숍 앞에서 만나자는 말에 70대라 잘 모르신다더니, 내비게이션에 검색해서 오겠다며 한 번에 잘 찾아왔다.
할머니 생각도 났고, 어렸을 때부터 자주 뵌 어르신 같기도 했다. 어디선가 만나본 것 같은 친근함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고, 분명 초면이지만 뭔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짧은 찰나이지만 서로 눈을 맞추고 함께 웃었다. 고구마가 담긴 쇼핑백을 건네자 "와 고구마가 많네요. 구워먹어야겠다"며 좋아했다. 잘 먹겠다는 인사를 들으며 '고구마가 맛있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만난 이웃은 횡단보도를 건너 오면서부터 나를 알아봤는지 웃음 가득한 눈으로 걸어오며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젊은 아가씨네?" 웃음 가득한 말씀이 유난히 정겨웠다.
"이거 타이니환(뭔가 이런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인데, 키울 수 있겠어요?" 내가 물건을 건네기도 전에 손에 들고 있던 작은 화분을 먼저 건넸다. "다육이 선인장 종류라 물 자주 안 줘도 되고, 새끼도 잘 쳐요. 이것도 새끼 친 거예요." 화분 나눔을 하러 온 것처럼 나눔받을 물건은 뒷전이고 화분에 대해 설명했다.
나눔을 자주 하시냐는 질문에 "제 것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나눔 자주 한다"며 "작은 거라도 사람도 만나고 소소한 재미가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손에 화분을 들고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나눔은 내가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고받는 것이었다. 일방의 베풂이 아닌 쌍방향의 '나눔'이었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게 화분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 같았다.
나눔을 도와주러 온 친구가 가득한 쇼핑백을 보고 "와 언니 진짜 풍성한 한가위네요?"라며 웃었다. 이 정도 소소한 것들이 추석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싶은 민망한 마음에 멋쩍게 웃었다.
다른 물건들도 각자 주인을 잘 찾아갔다. 보온병은 외손녀 주려고 가지러 오셨다는 이웃이 받아갔다. 외손녀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학교에 가져갈 물병으로 쓰겠다며 귀한 걸 받아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채팅할 때의 무뚝뚝한 말투와 달리 실제로는 자상함이 넘쳤다.
청소용품은 숙소에 혼자 살아 주방 청소를 직접 해야 해 필요했다는 중년 남성에게 갔다. 일 때문에 주말부부로 타지에 혼자 사는데 유용하게 잘 쓸 것 같다며 웃는 눈빛이 선했다.
신발의 새 주인이 된 여성은 카페에서 음료를 사겠다며 카페로 이끌기도 했고, 스탠드는 나눔을 처음 해봤다는 20대 남성에게 갔다. 처음이라 오기 전에 뭐라도 사와야 할지, 빈손으로 와도 되는 건지 고민을 하셨다는 초보 당근러였다. 꼭 필요했던 건 아니지만 공기업 시험 공부 중이라 쓸 것 같기도 하고, 이걸 썼던 언니가 입사 시험 합격했다니까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받으러 오게 됐다는 말에 언니의 말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진정한 이웃이 되는 만남의 경험
몇 시간에 걸친 나눔이 몰아치고, 가득했던 쇼핑백들이 각자 주인을 찾아 갔다. 처음엔 다 처리했다는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손에 화분을 소중히 들고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열심히 먹는데 당근 알림이 다시 울렸다. 나눔받은 사람들의 후기였다. 잘 쓰겠다, 감사하다는 인사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집에서 쓸모없던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낯설었던 닉네임에 마스크 위로 웃던 따뜻한 눈빛들이 겹쳐 보였다. 네모난 화면 안에서 닉네임으로만 존재하던 이들이 만남으로 비로소 실제로 이웃이 된 것 같았다. 짧은 만남 속 나눈 이야기가 내 마음에 녹아든 것처럼, 내가 나눈 물건들도 그들의 일상에 잘 녹아들어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나눔은 주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다. 시간과 감정, 각자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길에서 쌩하고 지나쳤을 서로의 일상의 한 자락이 섞인다. 이러한 작은 연결로 우리는 서로에게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다. "서로 아무런 삶의 연결고리가 없을 때 더 쉽게 혐오하지만, 서로의 삶이 한 자락이라도 섞이면 이해하고 공감할 여지는 꼭 생긴다"는 은유 작가의 말처럼 나눔이라는 만남의 경험은 우리가 서로를 더 이해하고 공감할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만남이 늘어난다면 함께 살아갈 세상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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