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커스 출범 뒤늦게 안 동맹들 거센 반발
프랑스 "뒤통수 맞았다"·자체 전략 강화 EU
"동맹 다독이지 못하면, 중국이 이득 볼 수도"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영국·호주가 손잡은 새로운 3자 안보 협의체 '오커스(AUKUS)'가 출발부터 서방의 전통적 동맹 관계를 뒤흔들고 있다. 핵심 대서양 동맹국인 프랑스는 "뒤통수를 맞았다"며 배신감을 적나라하게 표현했고, 최대 동맹인 미국을 영국에 뺏긴 꼴이 된 유럽연합(EU)은 자체적 대(對)인도·태평양 안보 전략을 강화할 태세다. 호주와 가까운 뉴질랜드에서도 자국이 배제된 안보 협의체 탄생에 불만이 터져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우선주의)를 벗어나 동맹 관계 복원을 강조했던 조 바이든 행정부지만, 아프가니스탄 철군 강행에 오커스 출범까지 굵직한 결정마다 전통적 우방 관리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16일(현지시간) 오전 현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호주와 신뢰 관계를 구축했는데 배신당했다"며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했다. 미국을 향해서도 "일방적이며 예측할 수 없었던 이런 결정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하던 짓"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전날 르드리앙과 함께 오커스 출범에 비판 성명을 냈던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 역시 다른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호주가 몹시 나쁜 소식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보복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미국에도 "동맹국을 어떻게 대했는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전날 오커스 출범으로 호주가 미국, 영국의 지원을 받아 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기로 하면서 프랑스 방산업체 나발 그룹과 560억 유로(약 77조 원) 규모의 디젤 잠수함 공급 계약을 파기한 데 따른 반응이다. 심지어 협의체 출범 발표에 임박해서야 프랑스 정부에 이 사실을 통보해 프랑스의 화를 더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커스 발족에 대한 항의는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주미 프랑스 대사관은 미국이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독립전쟁을 축하하는 행사를 17일 열기로 했다가 전격 취소했다. 당시 미국을 지원한 프랑스가 영국과 싸워 이긴 '체사피크만 전투' 240주년 갈라 리셉션이다.
EU와의 동맹 역시 동요하고 있다. 오커스가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EU 가운데 미국의 선택을 보여줬다고 해석됐기 때문이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유럽은 오커스 출범일을 "중국의 부상에 대항하는 전략과 관련, EU와 프랑스가 '지정학적 빅리그(주요 집단)'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최악의 날"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소외감은 곧 EU의 자체적 안보 전략 강화로 연결될 조짐이다. 이날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인도·태평양 지역과 협력을 강화하는 자체 전략을 공개하면서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듯 자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커스 3국과 기밀정보 공유동맹 '파이브아이즈'(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 속한 뉴질랜드 역시 떨떠름해하는 분위기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기존 동맹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야당은 자국이 협상에 소외된 것에 대해 정부에 해명을 요구했다. 동맹 그룹에서 강등된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적지 않다.
결국 오커스 성공의 관건이 '비(非)오커스' 동맹과의 관계 유지에 달린 역설적 상황이 됐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프랑스도 중요한 파트너"라면서 해명에 나섰지만 상처 난 동맹 관계의 복원은 쉽지 않은 과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이 프랑스의 분노를 다독이지 못하면 결국 오커스가 견제하려던 중국이 장기적으로 이득을 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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