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영약' 명성만큼 특이한 발아 과정
그냥 파종 시 싹 나는데 2년…발아율도 '뚝'
석 달 열흘간 특별한 '개갑' 과정 필수
천재지변 대비 종족보존 안전장치 해석도
신비의 영약 인삼, 싹은 어떻게 틔울까.
추석을 맞아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은 홍삼 백삼 수삼 등 인삼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최근에는 인삼에 간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이 때문에 평소 한방에서 약재로 많이 쓰였고, 건강기능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금산인삼약초산업진흥원이 5년간 실시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간기능 개선 효과를 인정했다.
그러나 정작 인삼을 어떻게 싹을 틔워 키우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인삼은 그 신비한 효과만큼이나 재배하는 방법이 까다롭다. 최근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인삼씨앗을 구입해 화분이나 뒤뜰에서 몇 포기 취미 삼아 키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전문가들이 쉽게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씨앗에 미리 손을 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9일 경북도농업기술원 풍기인삼연구소에 따르면 인삼씨앗을 그냥 흙에 심는다고 싹이 트지 않는다. 다른 농작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유별난 싹 틔우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장명환 연구사는 “인삼 종자는 미성숙 상태로, 반드시 개갑(開匣)한 뒤 파종해야 하고, 저온처리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발아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인삼씨앗을 바로 뿌리면 안 되고 100일가량 개갑이라는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만 제대로 싹을 틔운다는 것이다.
장 연구사 설명에 따르면 인삼은 5월에 꽃이 피고, 7월 중ㆍ하순에 인삼딸로도 불리는 빨갛게 익은 열매를 따 과육을 벗긴 뒤 물에 잘 씻어 7월 말, 늦어도 8월 초까지는 개갑장에 넣어야 한다. 예전에는 마대자루에 담아 흐르는 물에 몇 달간 담그는 방법도 썼지만, 요즘은 콘크리트나 플라스틱으로 된 개갑장에서 개갑을 하게 된다.
씨알이 굵고 고른 종자를 망사 같은 자루에 담은 뒤 모래를 깐 개갑장에 놓고 다시 모래를 살짝 덮는 방법으로 시루떡처럼 적당한 높이로 층층이 쌓는다. 내부 온도를 15~20도 정도 유지하면서 적절하게 물을 주면서 100일 정도 지나면 개갑이 완료된다.
종자 자루를 쌓는 것부터 물주기까지 까다롭기 이를 데가 없어 인삼재배 농민들도 상당수는 전문가들이 개갑한 종자를 구입해 파종할 정도다. 이 때문에 인삼재배 주산지인 금산이나 풍기 지역에는 채종기인 7월 말~8월 중순과 개갑이 완료되고 파종기인 11월쯤에 씨앗만 팔고 사는 임시장터인 씨전이 열릴 정도라고 한다.
인삼은 왜 석 달 열흘이나 걸리는 개갑이라는 골치 아픈 과정을 거쳐야 땅에 심을 수 있는 것일까.
그냥 파종할 경우 파종에서 발아까지 18~22개월 정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1차적인 이유다. 또 뿌린 씨앗이 비슷한 시기에 일제히 싹이 나지 않고 제각각이 된다. 전체적인 발아율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농사를 망치는 지름길인 셈이다.
장 연구사는 “종자는 보통 잎이나 줄기가 되는 배(씨눈)와 영양분인 배유(배젖)로 돼 있는데, 인삼종자는 배가 미성숙한 상태여서 그대로 심으면 싹이 트는 데 1년 이상 걸린다”며 “개갑을 통해 배가 성장하면서 딱딱한 껍질이 벌어지게 되고, 그 씨앗을 땅에 파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개갑하더라도 반드시 저온처리를 해야 한다. 11월에 파종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추운 겨울을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저온처리가 되는 것이다. 이듬해 3, 4월이 되면 비로소 싹이 튼다.
인삼의 유별난 싹 틔우기는 벼나 보리 같은 곡물류와 달리 재배환경이 극히 제한적인 인삼 입장에서 종족보존을 위한 안전장치라는 해석도 있다. 쉽게, 한꺼번에 싹이 튼다면 폭풍우 등 천재지변이 닥쳤을 때 ‘몰살’할 수 있다. 대가 끊기는 셈이다. 오랜 시간 땅속에 묻혀 있다가 그 시기를 달리해 발아한다면 먼저 싹이 튼 인삼이 죽더라도 남은 씨앗이 유전자를 보존할 수 있게 되는 생존본능의 발로라는 설명이다.
농민들은 이렇게 어렵게 싹을 틔운 인삼을 따로 묘종을 길러 1년 뒤에 본밭에 옮겨 심는 이식재배, 곧바로 파종하는 직파재배 2가지 방식으로 한다. 인삼의 체형이 중요한 홍삼가공용은 이식재배가 필수라고 한다. 직파는 이식보다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어 수삼으로 출하하거나 백삼 등으로 가공할 경우 직파가 경제적이다.
풍기 지역 인삼재배 농민들에 따르면 예전에는 3, 4년근을 주로 재배했고, 6년근은 극소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5, 6년근이 대부분이다. 재배기술이 상향평준화한 덕분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인삼 주산지인 충남 금산과 경북 영주 풍기읍 일대는 본격적인 수확기를 맞아 깊은 시름에 잠겼다. 수삼가격이 유례없는 약세이기 때문이다. 인삼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산지역 수삼 4년근 1채(750g)가 1만4,000원 선으로 지난해 절반 수준이다. 이 때문에 지난 13일 충북 보은지역에선 농민들이 2년생 인삼 1만여㎡를 갈아엎기까지 했다. 금산보다 2주가량 늦은 10월 본격 수확하는 풍기지역 농민들도 이 같은 추세가 지속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인삼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인삼 이외 건강기능식품이 늘어난 것도 인삼가격 하락 요인이지만, 지난해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면세점 소비와 관광버스로 산지 인삼시장을 찾는 수요가 사라진 게 결정적”이라며 “코로나19 때문에 전반적인 벌이가 줄다 보니 상대적으로 고가인 인삼을 외면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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