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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 끝판왕 쿠팡 물류센터... "나는 '톱니바퀴'가 됐다"

입력
2021.09.16 04:30
수정
2021.09.16 10:0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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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취재기자 하루 체험 ... 9시간 근무에 일당 8만원

편집자주

물류센터는 추석을 앞두고 가장 붐비는 곳이다. 하루 수백만 개의 택배가 몰린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까지 늘어 물류회사들은 연일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빠른 배송'을 앞세우며 속도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수만 명의 노동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물건을 옮기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그들의 현실을 직접 들여다봤다.


쿠팡 물류센터는 로켓배송을 위해 하루 10번 마감한다. 그때마다 근무자에게 주어지는 PDA에는 빨리 공정을 마무리해달라는 경고 메시지가 뜬다. 토트풀은 플라스틱 상자를 채웠다는 의미다. 독자 제공

쿠팡 물류센터는 로켓배송을 위해 하루 10번 마감한다. 그때마다 근무자에게 주어지는 PDA에는 빨리 공정을 마무리해달라는 경고 메시지가 뜬다. 토트풀은 플라스틱 상자를 채웠다는 의미다. 독자 제공

"조금만 빨리 걸으실게요." "일단 던져요, 던져!"

오후 3시가 가까워오자 관리자들이 다가와 소리를 지른다. 마감을 재촉하는 방송이 나오고 손에 쥔 PDA(개인정보단말기)에는 ‘토트(플라스틱 상자)를 빨리 옮겨주세요’라는 긴급 메시지가 뜬다. 곳곳에 ‘뛰지 마세요’라는 경고문구가 붙어 있지만, 수천 명의 직원들이 허겁지겁 달리며 물건을 옮기고 있다. 주간에는 4번, 야간엔 6번 이런 '마감 전쟁'이 벌어진다. 다음날 아침 6시 현관 앞에 도착하는 ‘로켓배송’을 위해서다. 이곳은 쿠팡이 자랑하는 5대 메가 물류센터 중 한 곳인 고양센터다.

쿠팡은 물류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4,000여 개가 넘는 전국의 물류센터 가운데 풀필먼트(상품 보관·포장, 출하, 배송 등 일괄 처리) 시스템을 처음 도입했다. 약속한 시간에 배송이 완료되는, '도달률 99%'의 비결도 여기에 있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과도한 노동과 비인간적 통제의 결과라는 비난도 나온다. 이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단일센터로는 최대 규모(연면적 13만2,231㎡)인 고양센터에 직접 찾아가봤다.

경기 고양 쿠팡물류센터 모습. 한 층은 다시 3개의 메자닌 층으로 나뉘어 있다. 조소진 기자

경기 고양 쿠팡물류센터 모습. 한 층은 다시 3개의 메자닌 층으로 나뉘어 있다. 조소진 기자


1초도 쉬지 않고 지시하는 '쿠파고'

‘취업’은 쉬웠다. 아르바이트 모집 사이트를 보니 쿠팡 직원을 모집하는 공고만 수십 개에 달했다. 오후 6시에 일용직 지원 문자를 보냈는데 다섯 시간 후 합격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휴대폰 반입금지, 투명 물병 외 반입 금지 등 주의사항을 알리는 문자도 왔다. 출근 날짜는 바로 다음날 아침이었다.

오전 8시 간단한 교육 후 업무가 시작됐다. 물류센터 일은 크게 4가지(입고·재고 정리·출고·집품)로 나뉘는데, 그중 집품에 투입됐다. 작업장에 도착하자 개인마다 지급된 PDA 화면에 ‘43B11-120-102 푸룬주스(946ml) 5개’라는 글자가 떴다. 첫 지시였다. 4-3층 B11열 120행 첫 번째 줄에 가서 상품을 카트 위 토트에 넣으라는 의미다. 상품을 토트에 넣으니 1초 만에 또 다른 숫자가 뜬다. 빨리 이동하라는 지시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쿠파고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며 "14L짜리 세제를 레일 위로 올릴 자신이 없어 토트풀(집품완료)을 하려고 했는데, 이런 경고음이 떠서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독자 제공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쿠파고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며 "14L짜리 세제를 레일 위로 올릴 자신이 없어 토트풀(집품완료)을 하려고 했는데, 이런 경고음이 떠서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독자 제공


"좀 느리세요, 속도 좀 내줘요" 속도압박 심해

쿠팡 물류센터에서의 일은 크게 입고, ICQA, 출고, 허브로 나뉜다. 쿠팡 공정 설명 캡처

쿠팡 물류센터에서의 일은 크게 입고, ICQA, 출고, 허브로 나뉜다. 쿠팡 공정 설명 캡처

센터 안에서의 업무는 모두 이런 식으로 숫자화돼 있다. 사람이 아니라 ‘쿠파고(쿠팡+알파고)’라 불리는 인공지능(AI)이 내리는 지시다. AI만 재촉하는 건 아니다. 점심시간이 지나니 노란 조끼를 입은 PS(문제 해결) 직원이 세 번이나 찾아와 말했다. "조금만 더 속도를 내실게요. 좀 느리세요." 이동시간을 아끼기 위해 한 번에 토트를 많이 싣고 나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지시가 가능한 것은 직원들의 움직임이 모두 기록되고 있어서다. 작업장 가운데에 있는 관리자 컴퓨터에는 직원들의 HTP(시간당 생산량)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과거엔 직원들이 들고 다니는 PDA에도 이 수치가 떴는데, 감시 논란으로 그나마 개선된 것이다.

동료들의 관심사도 대부분 ‘속도’에 맞춰져 있다. 포장업무를 담당하는 한모(33)씨는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10분 동안 속도가 안 났는데, 직원이 찾아와 '유휴시간 없게 해달라'라고 했다"고 말했다. 단지 압박으로만 끝나는 건 아니다. 이런 지적을 많이 받으면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른다. 한씨는 "다음날 '출확(출근 확정)'을 안 주면 속도 때문에 그런가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쿠팡 물류센터의 70%는 일용직 노동자다. 계약직은 25%, 정규직은 3%가 채 안 된다. 일용직은 매일 근무를 지원한 뒤 '출근 확정' 통보를 기다린다. 계약직도 3개월, 9개월, 12개월 단위로 계약이 이뤄진다. 일하는 속도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쉬는 시간 따로 없고... 휴게 공간도 열악

작업장 한쪽에 마련된 쿠팡 물류센터의 휴게실. 문을 나가면 바로 작업장이다. 밤 11시인데도 휴게실 온도는 31도를 기록했다. 쿠팡 노조 제공

작업장 한쪽에 마련된 쿠팡 물류센터의 휴게실. 문을 나가면 바로 작업장이다. 밤 11시인데도 휴게실 온도는 31도를 기록했다. 쿠팡 노조 제공

9시간 근무 중 쉬는 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뿐이었다. 다리와 허리가 아프다고 하니 PS직원은 "오래 쉬면 이름 적어 가니까 눈치껏 쉬라"고 했다. 위치 바코드를 찍어놓고 박스를 뜯을 때 1분씩 앉아있으라는 팁도 줬다. 화장실에 자주 갈 것 같아 목마른 것을 참고, 다녀온 시간만큼 더 뛰어다녀야 하니 정수기 근처에도 안 가게 됐다.

쉴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지상 7층, 축구장 17개에 이르는 건물 내에 에어컨이 나오는 휴게실은 4곳뿐이다. 그래서 대부분 작업장 옆 의자에 앉아 쉰다. 그나마 이곳은 사정이 낫다고 했다. 한 동료는 "서울 장지센터에서 야간조로 일했는데, 거기는 식사시간이 30분이고 식당 줄이 길어 도로변에서 밥을 먹었다"고 전했다.

'친구와 오면 보너스' '일주일에 3회 이상 출근하면 10만 원'. 오후 6시 일을 마칠 무렵 채용 공고에 떴던 인센티브가 떠올랐다. 방학 동안 쿠팡에서 일한 대학생 이재원(22)씨는 “처음에는 일자리도 주고, 돈도 준다니 신기했는데 일을 해보니 이유를 알겠다”며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서 도망가는 ‘추노’가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날 통장을 보니 8만2,180원이 입금돼 있었다. 최저임금(시급 8,720원)에 1시간 연장근무 수당을 합한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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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당 하루 47톤 옮기는 물류센터 노동자의 절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91316390004062)

☞ [단독] 로켓배송에 '갈리는' 노동자 ... 10명 중 7명 "근육통·전신피로"(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91409330000200)

☞"물류센터=저장창고?... 정부는 낡은 인식부터 바꿔야"(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91516300000904)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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