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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너머를 봐야 패션이 보인다

입력
2021.09.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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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추석을 목전에 둔 주에는 조금 일찍 한 해를 반추하고 내년을 그려보는데 올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후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가 떠올랐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과 그들의 배경 환경은 패션업계 사람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붉은 여왕의 나라에 간 앨리스는 그곳에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뒤처지게 된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란다. 앨리스가 자기가 살던 세계는 이렇지 않다고 하니 붉은 여왕은 '거긴 아주 느린 나라구나! 앞으로 가길 원한다면 지금보다 2배는 빨리 달려야 해'라고 한다.

정말 패션다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패션계는 보통 6개월 전에 '선 기획'을 한다. 예를 들어 올겨울에 팔 패딩 점퍼는 이미 5월에 모든 원부자재와 주문 수량이 발주 완료된 상태로 진행된다. 통상 패션 브랜드에서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출시하는 패션 제품의 디자인 가짓수가 200개 정도 되니, 봄을 살(live)면서 이미 겨울에 살(buy) 것과 공존하며 사는 것이다.

하얀 여왕을 만난 앨리스는 또 놀라게 되는데 하얀 여왕이 미리 알고 미리 느끼기 때문이다. 하얀 여왕은 자신의 브로치에 찔리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며 아파하지만, 실제로 브로치에 찔리고는 아파하지 않았다. 앨리스가 하얀 여왕에게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묻자, 당연한 듯이 '다음 주에 일어날 일들이지!'라고 말한다. 그녀는 다가올 미래만을 기억했다.

'진정한 패션 리더는 한 계절 앞서서 옷을 입는다'라는 말이 있다. 패션업계는 하얀 여왕처럼 대중보다 더 빨리 더 먼저 미리 느껴야만 6개월 또는 1년 후의 옷을 기획하고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상 그해 그 겨울을 위한 디자인을 입을 때쯤에는 그다음 해 봄을 사는 것처럼 살곤 한다.

그런데! 그런 패션이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 '더 빨리, 더 먼저' 대신에 레트로와 아날로그를 지향하고 더 의미 있게 옷을 소비하려는 대중은 패션을 비건, 굿즈, 콜래버레이션으로 소비하고 있다.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이 힘을 잃은 걸까?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재버워키(Jabberwocky)라는 난센스 시가 나온다. (여러 단어와 그 맥락을 짚어내지 못하면 엉뚱하게 해석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모든 게 앨리스의 꿈이었던 걸로 끝난다. 작자인 루이스 캐럴은 '더 빨리! 더 먼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는 '서두를수록 뒤처진다(The hurrier I go, the behinder I get)'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패션은 소비자를 '더 빨리, 더 먼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19, 4차 산업혁명,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개선) 경영이라는 변화는 우리를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의 시대로 이끌고 있다.

2022년은 난센스의 시대가 될 것이다. 서둘러서 누가 내 브랜드의 소비자가 될 것인지 보는 대신에 소비자가 아닌 사람들의 맥락을 '더 빨리, 더 먼저' 간파해야만, 불확실의 시대에 새로운 궤도를 만들어 계속해서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으로 업계를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박소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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