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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도 채식으로... 추석 때 가벼운 비건 한 끼 어때요?

입력
2021.09.18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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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석 셰프가 만든 비건식 만두. 최 셰프 가족은 명절마다 함께 둘러앉아 채식 만두를 빚는다. 수작걸다 제공

최태석 셰프가 만든 비건식 만두. 최 셰프 가족은 명절마다 함께 둘러앉아 채식 만두를 빚는다. 수작걸다 제공

채식주의자의 젓가락은 명절 식탁 위에서 종종 갈 곳을 잃는다. 유독 기름진 음식이 올라오는 탓이다. 풍성한 상차림이 무색하게 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많지 않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도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요즘,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명절을 보낼 수는 없을까. 비건 셰프, 비건인들에게 방법을 물었다. 이번 추석은 딱 한 끼라도, 맛있는 비건식으로 먹어 보면 어떨까.

셰프들이 말하는 '고기 없는' 명절 음식

최태석 셰프 가족의 명절 단골 음식인 동그랑땡. 수작걸다 제공

최태석 셰프 가족의 명절 단골 음식인 동그랑땡. 수작걸다 제공

채식 34년 차. 부산의 비건 빵집 '꽃사미로'의 셰프이자 '시작하는 비건에게(수작걸다 발행)'의 저자 최태석 셰프는 명절마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다. '표고버섯김치만두'다. 두부, 김치, 데친 숙주, 잔파와 볶은 표고버섯에 참기름을 버무려 만두소를 만든다. 버섯의 쫀득쫀득한 식감이 살아 있는 만두를 맛볼 수 있다. 표고버섯 중에서도 최상품인 '화고'를 쓰면 만두의 풍미가 더 살아난다. 동그랑땡도 최 셰프네 명절 단골 메뉴 중 하나다. 물기를 꽉 짠 두부에 양파, 당근, 다진 표고버섯·느타리버섯을 넣어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한다. 전분을 넣고 동그랗게 뭉친 후 팬에 부친다.

'맛있어서, 하루 비건(미호 발행)'의 저자 박정원 셰프는 "명절에 특별한 비건 요리를 하기보다는 익숙한 명절 음식을 재료만 식물성으로 바꿔서 먹는 편"이다. 박 셰프의 추천 음식은 잡채다.

박정원 셰프가 만든 '비건 잡채'. 계란 지단과 고기 대신 두부면, 유부, 목이버섯, 느타리버섯, 양송이버섯을 넣어 만들었다. 박정원 셰프 제공

박정원 셰프가 만든 '비건 잡채'. 계란 지단과 고기 대신 두부면, 유부, 목이버섯, 느타리버섯, 양송이버섯을 넣어 만들었다. 박정원 셰프 제공

기존 잡채 레시피를 따르되, 계란 지단 대신 유부를 얇게 썰어 구워 넣거나 두부면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볶아 넣는다. 간은 소금, 후추로 한다. 잡채에 들어가는 고기 대신으로는 간장 양념에 볶은 표고버섯을 추천한다. 간장에 졸인 우엉으로 '우엉 잡채'를 만들어 색다르게 즐길 수도 있다.

박 셰프가 추천하는 또 다른 명절 음식은 '들깨 무국'이다. 경상도식 소고기 무국의 비건 버전이다. 다시마와 표고버섯으로 채수를 내고 무를 기름에 볶아 간장으로 간을 한 뒤 들깻가루를 넣어 끓인다. 들깻가루의 고소함과 무의 시원한 맛, 단맛이 어우러진다. 기호에 따라 두부를 작게 썰어 바싹 구운 뒤 국에 넣어 먹어도 좋다.

콩고기로 만든 탄두리콩치킨. 이도경씨 제공

콩고기로 만든 탄두리콩치킨. 이도경씨 제공


콩고기로 만든 양념콩치킨. 이도경씨 제공

콩고기로 만든 양념콩치킨. 이도경씨 제공

채식요리연구가이자 '채식의 즐거움(소금나무 발행)'의 저자인 이도경씨는 콩고기 요리를 권한다. 명절 식탁에서 고기가 빠지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한 이들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채식 요리다. 시중에 파는 콩고기를 불고기 요리하듯이 양파, 양배추, 알록달록한 파프리카와 함께 볶아내 상추와 곁들여 먹는다. 콩고기로 만든 치킨, 채식 떡갈비도 명절 메인 메뉴로 손색이 없다.

쫄깃쫄깃한 버섯모둠구이도 간단하면서도 명절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음식이다. 새송이, 표고버섯을 큼지막하게 썰어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앞뒤로 굽는다. 잘 구운 버섯을 소금, 후추, 마늘을 넣은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버섯모둠구이. 버섯을 앞뒤로 노릇노릇 굽는 게 중요하다. 이도경씨 제공

버섯모둠구이. 버섯을 앞뒤로 노릇노릇 굽는 게 중요하다. 이도경씨 제공

그는 명절 고깃국은 '캐슈넛 감자 미역국'으로 대체해 보라고 권한다. 감자와 캐슈넛을 넣고 미역국을 끓이면 감자를 넣어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 캐슈너트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더해져 별미다.

'비건 차례상', 핵심은 간소하게

유튜버 '하리'씨가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추석 때 직접 차린 비건 차례상. 유튜브 캡처

유튜버 '하리'씨가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추석 때 직접 차린 비건 차례상. 유튜브 캡처

비건 인구가 늘어나면서 차례상을 비건식으로 차리는 가정도 점차 늘고 있다. 비건 8년 차 유튜버 '하리'씨도 코로나19 확산 직전 차례상을 비건으로 차린 경험이 있다. 새우튀김, 산적, 전, 탕국 등을 콩고기, 비건 새우, 비건 어묵과 같은 시중 제품을 이용해 모두 비건화했다. 계란물 대신에 강황으로 색을 내 노란 튀김옷을 만들고 액젓 대신 국간장을 넣어 맛을 냈다. 그는 "차례상에 항상 동물들이 너무 많이 올라오고, 여자들만 일하는 것도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직접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튜버 '하리'씨가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추석 때 비건 차례상을 위해 만든 음식들. 유튜브 캡처

유튜버 '하리'씨가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추석 때 비건 차례상을 위해 만든 음식들. 유튜브 캡처

비건 차례상은 명절 차례상을 간소화하는 움직임과도 맞닿아 있다. 대구에 거주하는 4년 차 비건이자 20대 직장인 조현지(가명)씨는 귀촌한 아버지와 함께 명절마다 비건 차례상을 차린다. 그는 "아버지가 간소한 차례상, 감사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셔서 주로 직접 기른 과일, 채소를 차례상에 올린다"며 "여건이 되지 않는 분들은 제철 채소, 제철 과일을 소량만 구입해서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전했다.

최태석 셰프도 "비건을 한다는 건 가벼워지고, 단순해지고, 음식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다"며 "명절 음식은 그래서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데 의미를 두고 준비한다"고 말했다.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도 비건이 된 이후 수십 년간 비건 차례상을 차려 왔다. 육고기로 만든 전 대신 차례상에는 빨간색, 노란색, 흰색의 '삼색전'이 올라간다. 연근에 비트물을 들인 연근전, 단호박전, 마전이다. 차례상에 올라온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 나물 등은 차례가 끝난 후 비빔밥으로 해 먹는다.

조 대표는 "완두콩에서 단백질을 100g 섭취하면 0.4㎏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소고기로 단백질을 100g 섭취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50㎏에 달한다"며 "육식 중심 식단의 탄소 발생량, 과도한 칼로리, 버려지는 음식물을 생각해 명절 한 끼는 채식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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