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생태계가 요동치고 있다. 완성차 업체부터 배터리 제조사, 배터리 소재 공급사까지 전기차 생태계의 가치사슬을 구성하고 있는 기업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급망 구축에 나서면서다.
전기차 산업은 대표적인 성장 산업으로 꼽힌다.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2030년을 기점으로 대부분 내연기관에서 전동화 모델로 생산의 무게추를 옮길 것이라고 선언했다. 현재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업체와의 합종연횡을 통해 배터리를 확보하는데 매진하고 있지만, 생산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2030년 이후에는 배터리 부족 현상이 심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 광파증권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이 계속해서 확대되는 점을 감안해도 올해 17기가와트시(GWh), 2024년 45GWh, 2025년 370GWh로 생산능력 부족량은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기차 가치사슬을 구성하고 있는 업체들이 생산능력 향상, 공급망 확충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테슬라·폭스바겐 이어 도요타까지 배터리 내재화 선언
완성차 업계의 화두는 배터리 내재화다. 제너럴모터스(GM)-LG에너지솔루션의 얼티엄셀즈, 포드-SK이노베이션의 블루오벌에스케이처럼, 지금까지 완성차 업계에선 배터리 업체와 합작사를 설립해 배터리 수급 문제를 해결해 왔다. 하지만 최근엔 완성차 업체가 직접 배터리 개발·생산에 나서 수급 안정화는 물론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택하는 추세다.
도요타는 지난 7일 전기차 배터리 개발·생산에 2030년까지 1조5,000억 엔(약 16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연간 200GWh 이상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자체적으로 갖추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계획이 현실화하면 도요타는 2030년엔 외부 배터리 업체와의 거래 없이 300만~40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하이브리드 전기차에 매진해 온 도요타가 배터리 내재화 발표와 함께 순수 전기차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요타에 앞서 테슬라와 폭스바겐은 진작에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했다. 테슬라는 '반값 배터리'를 위해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를 자체 개발 중이며, 주요 원자재인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호주 광산업체와 5년간의 공급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폭스바겐 역시 내년 독일에 첫 번째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등 전동화 투자액 중 상당 부분을 배터리 개발·생산에 쓸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현대자동차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 내재화를 목표로 남양연구소 내 연구·개발(R&D) 조직을 확대했고, 메르세데스-벤츠도 배터리 자체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배터리 업체는 공급망 확보 위해 수직계열화 주력
한편 배터리셀 생산 업체들은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 등 주요 소재를 계열사를 통해 생산하는 수직계열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회사나 계열사를 통해 공급망을 확보하는 수직계열화는, 완성차 업체의 내재화와 유사한 전략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분리막), 계열사인 SKC(동박), SK머티리얼즈(음극재) 등을 통해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소재를 수급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인 LG화학은 양극재 생산능력을 올해 8만 톤에서 2026년 26만 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LG전자의 분리막 사업 인수·분리막 합작 공장 설립 추진 등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에 안정적으로 소재를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소재 및 원자재 확보를 위한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8일 에코프로비엠과 2024~26년 10조 원대의 대규모 양극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양극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함과 동시에, 협력을 통해 소재 산업 자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SK이노베이션은 또 중국 업체들과 공동으로 양극재 생산 법인을 세우는가 하면, 중국 최대 리튬생산업체와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호주 니켈·코발트 제련업체인 QPM에 120억 원을 투자해 지분 7.5%를 인수했고, 전 세계 니켈 생산량의 25%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에 현대차와의 합작 공장 착공도 앞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부품 공급망 문제와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라인을 멈추는 경험까지 한 자동차 업계에선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에서 만큼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며 "배터리 업계 역시 완성차 업체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시장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공급망 확보 경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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