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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한 대선

입력
2021.09.10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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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6개월 앞두고 여전히 최대인 부동층
모든 후보 거부하는 ‘투표 포기자’도 생겨
부적합 후보 탓만 하면 결과 참담할 수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오른쪽)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금천구 즐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 시그널 면접을 마친 후 박진 후보와 악수하며 스튜디오를 나가고 있다. 뉴스1

윤석열(오른쪽)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금천구 즐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 시그널 면접을 마친 후 박진 후보와 악수하며 스튜디오를 나가고 있다. 뉴스1

대선 6개월을 앞둔 지금 자칭 투표 포기자, 기권자가 주변에 제법 많다. 정치 혐오가 주된 이유이겠으나 한편으로 후보 혐오를 말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이들은 질문부터 다르다. ‘누가 당선될 것 같으냐’가 아니라 ‘누굴 찍어야 하느냐’이다. 물론 답을 찾으려는 진지한 고민이기보다 지지할 후보가 없다는 하소연에 가깝다.

이런 모습은 정확하진 않지만 일부 수치로도 간접 확인되고 있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동층은 32%로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높았다. 과거 대선 6개월 전 수치들과 비교하면 10%포인트가량 많은 것이다. 어느 경우보다 많은 20명 넘게 출마했음에도 지지 후보를 못 찾겠다는 기현상이다.

부동층은 지지 후보가 없거나 모르거나 질문에 응답하지 않는 모든 경우를 말한다. 과거엔 선거가 임박할수록 부동층이 감소해, 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선거 막판의 일이었다. 이재명 후보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 안 찍겠다고 민주 진영 탈퇴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자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움직이지 않는 지금의 부동층은 정상적이지 않다.

부동층이 많은 배경에는 강력한 후보나 이슈의 부재, 네거티브에 따른 정치 혐오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후보들의 문제가 크다. 특히 지지 후보를 위한 선택적 비난이 아닌 여야 후보 모두에 대한 동시 혐오는 전에 없는 현상이다. 이번 선거를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의 대결로 비유하는 건 극단적이긴 하나 이런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사실 대선주자들이 “내가 무섭냐”라고 물으면 “두렵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누가 그 자리에 있든 대통령은 무서운 존재다. 그 자리가 소통이 힘든 구조인 것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이 되면 함부로 말하는 참모도 줄고, 후보 시절처럼 말을 듣지도 않는다. 여야의 주요 후보들에게서 그런 대통령의 성향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보인다. 말의 품격들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행보를 살펴볼 때 그들이 집권할 5년의 모습을 우울하게 색칠하는 이들도 많다.

대통령과 청와대를 무서워할 다른 조건들 역시 충분하다. 원래 청와대와 여당 관계는 당정분리가 맞다. 열성 지지자들을 통해 집권당을 통제한 현 정부에서 당정은 분리가 아닌 통합으로 갔다. 그만큼 청와대 비서실은 백악관만큼 비대해졌고 제왕적 대통령 체제는 복원됐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 모두 대중 동원에 성공하면서 정치는 양극화로 한층 퇴행해 있다. 이번 선거는 공교롭게 금융위기 이후 그랬듯 위기가 포퓰리즘을 낳고 스트롱맨을 출현시키는 시기와도 맞물려 있다.

부동층 문제는 선거를 도입한 나라들의 공통된 고민이긴 하다. 투표 독려로 잘못된 후보의 선출을 막는 차원에서 기권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나라도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부동층이 줄지 않자 반대투표(negative voting)를 가미해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지지도를 조사를 한 적이 있다. 후보에게 찬성 또는 반대 기표를 하도록 한 조사는 트럼프에게 크게 불리한 결과로 나타났다.

미국도 민주주의에 적합하지 않은 후보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황을 피해가지 못했다. 후보 탓만 하기엔 결과가 참담했던 셈이다. 우리의 부동층도 균형적이거나 합리적인 중도성향만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움직이게 한다면 언제든 배는 뒤집힐 수 있다. 어느 때보다 가변성이 커 섣부른 예측이 힘든 상황이지만 부적합 후보 탓만 하면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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