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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 신상공개와 ‘응보적 분노’

입력
2021.09.10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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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7일 이른 새벽부터 서울 송파경찰서 현관에서 대기 중이던 방송기자들이 검찰로 송치되는 강윤성씨가 마이크를 향해 발길질할 것에 대비해 포토라인에서 경찰과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7일 이른 새벽부터 서울 송파경찰서 현관에서 대기 중이던 방송기자들이 검찰로 송치되는 강윤성씨가 마이크를 향해 발길질할 것에 대비해 포토라인에서 경찰과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전자발찌를 절단하고 여성 2명을 살해한 성범죄 전과자 강윤성이 지난달 경찰서 포토라인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시끌벅적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는 취재진의 마이크에 발길질을 하기도 했고 “더 많이 죽이지 못해 한이 된다”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의 적반하장적 태도에 일각에선 신상 공개 대상 범죄를 확대하고 피의자의 신상을 더 명확히 식별할 수 있게 제도를 손보라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 군사정권 시절 반인권적 수사에 대한 비판으로 2000년대 초부터 마스크, 모자 등을 씌워 피의자 신상보호 정책을 펴왔던 경찰의 정책이 선회한 건 유영철, 조두순 등 강력범들의 행태가 미디어에 노출되면서다.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검거되자 일부 언론들은 관행을 깨고 그의 얼굴사진을 공개했다. 이듬해 국회는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는 법 조항을 신설했는데, 그 이후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40여 명, 올해만 7명에 달한다.

□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는 90% 이상이 찬성할 정도로 여론 지지가 압도적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 감수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피의자에게도 인권이 있다” "신상 공개와 강력범죄 예방과는 관련성이 없다"는 인권단체의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 법원의 솜방망이 판결 등에 불만이 쌓인 대중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지 못한다. 즉각적 신상 공개로 피의자에게 모욕을 줘야 한다는 ‘응보적 분노’의 표출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 경찰청 인권위원회가 9일 ‘피의자 얼굴 등 신상 공개 지침’ 등을 개선하라는 권고안을 냈다. 피의자에게 의견진술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고 외부 공개를 최소화하라는 내용이다. 명확한 법적 근거나 기준 없이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식의 현재의 신상 공개가 공익성보다는 ‘여론재판’으로 흐를 우려 때문이다. “반성하지 않는다”는 자기변명이나, 반대로 재판을 위해 취재진 앞에 무릎을 꿇는 등 언론 플레이를 하는 듯한 피의자들을 지켜보는 일도 곤욕스럽다. 신상 공개 시기를 사건에 대한 법원 판단이 이뤄진 1심 판결 이후로 미루고, 논란이 많은 언론 공개가 아닌 관보나 웹사이트에 게재하는 등 제도 개선을 꾀할 때도 됐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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