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자본시장법 따라 내년 8월부터 여성 이사 필수
여전히 OECD 평균 25.6% 한참 밑돌아
국내 500대 기업(매출 기준)의 여성임원 비중이 지난해 처음으로 5%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상장법인마다 여성 등기임원을 의무적으로 두게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제도의 압박이 여성임원 비율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 고위직 비중은 경제규모나 발전 정도에 비춰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500대 기업의 여성임원 비중은 전년보다 1%포인트 높아진 5.6%를 기록해, 사상 처음 5%선을 돌파했다. 5년 전인 2016년의 여성임원 비중은 2.7%에 불과했다. 2014~2018년 증가폭이 0.1~0.6%포인트에 그친 것에 비해 2019, 2020년에는 1%포인트씩 늘어나 그나마 증가폭을 키우는 추세다.
이런 변화 이면에는 최근 각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심 경영을 강화한 데 더해 제도적 압박이 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2월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 상장법인의 경우, 이사회를 특정 성별로만 구성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법 시행 시점은 내년 8월 5일부터지만 주요 기업들이 이에 대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여성 등기임원을 조금씩 늘리는 과정에서 여성임원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LG그룹과 한화그룹 등이 올해 처음 여성 사외이사를 선발한 것도 이런 영향으로 해석된다.
최근에는 기업의 최고위 의사결정 직위에도 종종 여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이날 신임 이사회 의장에 이은형(58) 사외이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SC제일은행 사상 첫 여성 이사회 의장이다. 이 의장은 경향신문 기자와 산업자원부 외신 대변인을 거쳐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앞서 효성은 지난 6월 조현준 회장이 내려놓은 이사회 의장직을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에게 맡기며, 재계 최초로 여성 이사회 의장을 선임하기도 했다. 2006년 KT가 윤정로 카이스트 교수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한 적은 있으나,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점을 감안하면 민간기업인 효성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렇듯 제도가 일정 부분 성 불평등을 개선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의 '유리천장'은 선진국보다 훨씬 두꺼운 게 현실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OECD 국가의 평균 여성 이사(임원) 비율이 25.6%라고 밝혔다. 한국은 OECD 평균의 5분의 1 수준에 그치는 셈이다. 또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2015~2019년 상장기업의 여직원 수 대비 여성임원 비중은 불과 0.3%였다. 남직원 대비 남성임원 비중(2.3%)에 비해 매우 낮다.
재계 관계자는 "앞으로 ESG 경영이 강화되면 여성임원, 사외이사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여전히 유능한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서 일과 생활의 양자택일 선택을 강요받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사회 전반에서 여성의 역할을 활성화할 여건 조성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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