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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이 주도한 세계와 맞닥뜨린 조선… 한국의 미래, 역사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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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이 주도한 세계와 맞닥뜨린 조선… 한국의 미래, 역사에 묻다

입력
2021.09.09 11:22
수정
2021.09.09 11: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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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힘 좀 쓴다는 국가들의 정상이 모이는 G7정상회의가 올해 6월 영국의 휴양지 콘월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주최국인 영국을 비롯해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등 7개 회원국이 참가했다. 이들의 구성은 1900년 6월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베이징에 군대를 보냈던 국가들과 거의 똑같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가 구성한 연합군은 청나라를 돕고 서양세력을 물리치자는 구호를 내세운 의화단을 55일 만에 제압한다. 세계를 움직이는 강대국들의 면면은 12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한국 근대 정치사를 연구해온 최덕수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계는 G7(혹은 G8)의 시대였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그래서 역사는 국가에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지도나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이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는지,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전망할 실마리가 역사적 기록에 담겨 있다. 19세기 중엽 열강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와 맞닥뜨린 조선이 내렸던 결정들을 추적하면서 한국이 내려야 할 결정들을 그릴 수도 있다. 최 교수는 최근작 ‘근대 조선과 세계’에서 “역사가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면서도 “그것을 단초 삼아 우리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벌어졌던 1882년 당시 일본에서 발행된 잡지 '단단진분'에 실린 삽화. 임오군란 당시 조선 출정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구로다 장군이 일본군을 통솔하며 출진하는 모습이다. 삽화 우측에는 야포(유리 대포)와 군량(고구마)이 그려졌고 군인들은 오합지졸처럼 보인다. 일본군의 군비가 모자라 군대의 위용을 갖추기 어려우니 군비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도가 담긴 삽화다. 일본 정부는 바다 건너에서 벌어진 소요를 자국의 내치에 적극 활용했다. 열린책들 제공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벌어졌던 1882년 당시 일본에서 발행된 잡지 '단단진분'에 실린 삽화. 임오군란 당시 조선 출정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구로다 장군이 일본군을 통솔하며 출진하는 모습이다. 삽화 우측에는 야포(유리 대포)와 군량(고구마)이 그려졌고 군인들은 오합지졸처럼 보인다. 일본군의 군비가 모자라 군대의 위용을 갖추기 어려우니 군비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도가 담긴 삽화다. 일본 정부는 바다 건너에서 벌어진 소요를 자국의 내치에 적극 활용했다. 열린책들 제공


미래를 상상하려면 과거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널리 알려진 상식마저 반쪽짜리일 수 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최 교수는 대원군이 성리학적 척화론에 근거해 서양 세력을 철저하게 배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지적한다. 그의 개인 취향만으로 국제무대로부터의 고립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그보다는 조선 내부의 정치적 상황이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실시하도록 만들었다고, 그런 면에서 대원군은 권력 유지를 바랐던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가였다고 최 교수는 지적한다.

실제로 대원군은 처음부터 서양 세력을 무조건 배척하지는 않았다. 최 교수에 따르면 1860년 러시아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자 대원군은 프랑스 천주교 주교와의 면담을 계획한다. 프랑스를 이용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면담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일이 틀어진다. 대원군 정권에 밀려났던 안동 김씨 세력이 정치 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결국 대원군은 자신이 서학 세력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선전하려고 천주교를 가혹하게 탄압한다. 오늘날 한국을 비롯해 동북아시아 각국이 취하는 대외정책 역시 국내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근대 조선과 세계'. 최덕수 지음ㆍ열린책들 발행ㆍ296쪽ㆍ1만8,000원

'근대 조선과 세계'. 최덕수 지음ㆍ열린책들 발행ㆍ296쪽ㆍ1만8,000원


최 교수는 다양한 사건을 넘나들며 과거가 현재와 맞닿아 있음을 드러낸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시민들을 동원해 대피훈련을 벌이는 일본 정부를 보면서 1882년 임오군란 당시의 일본 정부를 떠올리는 식이다. 서울에서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신식 군대와의 차별에 항의해 폭동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일본인이 살해되자 일본은 이를 그들의 내정에 적극 활용한다. 바다 건너의 사건을 메이지 유신 이후 ‘해외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일 운동’으로 자국에 선전하면서 군비 확장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최 교수는 독자에게 “국민들의 위기감을 한껏 부채질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에서 140여 년 전 임오군란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상상력이 지나친 것인가?”라고 묻는다. 역사를 되짚는 과정은 그 답을 구하는 여정이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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