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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계굴 사건' 억울한 무명 희생자, 국가위령시설에 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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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계굴 사건' 억울한 무명 희생자, 국가위령시설에 안치

입력
2021.09.05 15:30
수정
2021.09.05 18:1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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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 무연고 유해 발굴 이달 착수
100여 구 수습 국가 추모공원에 안치
"미군에 희생된 억울한 영령들 추도"

단양 곡계굴 사건 현장에 세운 표지석. 단양군 제공

단양 곡계굴 사건 현장에 세운 표지석. 단양군 제공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피란민 수백 명이 희생된 충북 ‘단양 곡계굴 사건’의 무연고 유해가 국가위령시설에 안치된다.

충북 단양군은 이달 중 곡계굴 사건 무연고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에 착수한다고 5일 밝혔다. 수습한 유해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시설인 대전 산내평화공원에 안치할 예정이다.

유해 발굴이 이뤄지는 곳은 곡계굴과 인접한 단양군 영춘면 상리 산 9번지와 6-8번지 일원이다. 군은 이곳에 무명 희생자 100여 명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곡계굴 사건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월 20일, 단양군 영춘면 곡계굴에 숨었던 피란민들이 미군에 의해 희생된 참사다. 미 공군이 북한군의 은신처를 폭격한다는 명분으로 네이팜탄을 쏟아부어 굴 안에 있던 피란민 대부분이 숨졌다. 동굴 밖으로 나온 사람들도 미군의 기총 사격으로 죽거나 다쳤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50여명은 심한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폭격 후 영춘면 희생자의 주검은 웅덩이 등에 숨어 있던 유가족들이 대부분 수습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온 피란민의 시신은 방치됐다가 두어 달 뒤 영춘면사무소가 수습해 이곳저곳에 임시 매장했다. 이들은 영월과 정선, 태백 등 인근 강원지역에서 피란 온 사람들로 추정된다.

이후 1970년대 야산 개발 과정에서 이들 무연고 유해가 현 매장지로 옮겨졌다. 곧 발굴이 시작될 이곳엔 ‘단양 곡계굴 사건 유해 매장지’란 푯말과 작은 시멘트 비석만 놓여 있다.

단양 곡계굴 희생자대책위와 단양군 관계자들이 곡계굴 위령비 앞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위령제는 미군 폭격이 있던 날(음력 12월 12일)에 매년 열린다. 단양군 제공

단양 곡계굴 희생자대책위와 단양군 관계자들이 곡계굴 위령비 앞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위령제는 미군 폭격이 있던 날(음력 12월 12일)에 매년 열린다. 단양군 제공

잊힐 뻔한 곡계굴 사건은 또 다른 피란민 희생 사건인 충북 영동 ‘노근리 사건’이 AP통신에 보도된 이후 세상에 알려졌다. 1999년 희생자 유족들로 꾸려진 대책위는 이 사건의 희생자가 360여 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관련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국가 차원의 희생자 유해 발굴과 추모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단양군이 곡계굴 입구에 위령비를 세우고 매년 합동위령제를 지낼 뿐이다.


단양= 한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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