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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폭탄에 돌무덤…태풍 강타한 포항 죽장면은 전쟁터 방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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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폭탄에 돌무덤…태풍 강타한 포항 죽장면은 전쟁터 방불

입력
2021.09.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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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호 오마이스 때 3시간 129㎜ 내려
산사태로 마을 농경지·하천 1주일 넘게 '돌무덤'
태풍 후에도 8일간 하루 빼고 비
첩첩산중에 위치…진입로 좁고 비탈져
대형 중장비 투입 못해 복구 '하세월'?
답답한 주민들 손으로 돌 나르기도?
?"추석 명절 코 앞…빠른 지원 절실"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월평리 박기윤(66)이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사과밭에서 1주일 전 태풍 '오마이스'가 몰고 온 폭우로 움푹 패인 땅을 가리키며 비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김정혜 기자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월평리 박기윤(66)이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사과밭에서 1주일 전 태풍 '오마이스'가 몰고 온 폭우로 움푹 패인 땅을 가리키며 비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김정혜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월평리 마을은 태풍이 남긴 생채기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1주 전인 같은달 24일 제12호 태풍 '오마이스'가 몰고 온 폭우로 물난리를 겪은 이곳 120여가구 대부분은 물에 젖은 가전제품과 살림살이를 거의 치운 상태였고, 박기윤(66)씨 집만 자원봉사자와 군 장병들로 북적거렸다. 이장인 그가 도움의 손길을 이웃에 양보하면서 마지막 순번이 된 것이다. 하지만 1일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리면서 박 이장은 애써 내놓은 짐을 눅눅한 방안으로 다시 밀어 넣어야 했다. 박 이장은 “이제 정리를 좀 하나 싶었는데 지긋지긋한 비가 또 내린다”며 “집은 둘째치고 임시 복구한 마을 저수지 둑과 진입로가 무너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태풍 피해 복구에 투입된 중장비 기사가 지난달 31일 수해 지역인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봉계리에서 돌들도 뒤덮인 하천을 바라보고 있다. 김정혜 기자

태풍 피해 복구에 투입된 중장비 기사가 지난달 31일 수해 지역인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봉계리에서 돌들도 뒤덮인 하천을 바라보고 있다. 김정혜 기자

지난달 24일 3시간 동안 129㎜의 폭우가 쏟아졌던 죽장면은 태풍 피해 1주일이 지나도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거센 물살에 쓸려 나간 입암교 등 도로와 전봇대 유실로 끊어졌던 전기와 통신은 응급 복구됐지만, 마을 곳곳이 여전히 돌무더기에 파묻혀 있었다. 죽장면은 포항 도심에서도 차량으로 꼬불꼬불한 31번 국도를 40분 넘게 달려야 할 만큼 첩첩산중이라 산사태로 동네 전체가 돌무덤이 된 상태였다. 양이 워낙 많다 보니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이 희뿌연 먼지를 휘날리며 쉴새 없이 돌을 퍼 날라도 진척이 없었다. 태풍 후에도 8일 넘게 계속 비가 내려 손을 쓸 시간마저 부족했다.

지난달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월평리 신정숙(64)씨 집 전경. 이 집은 지난달 24일 태풍 오마이스가 몰고 온 폭우로 부서져 1주일이 지나서도 복구를 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있다. 김정혜 기자

지난달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월평리 신정숙(64)씨 집 전경. 이 집은 지난달 24일 태풍 오마이스가 몰고 온 폭우로 부서져 1주일이 지나서도 복구를 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있다. 김정혜 기자

월평리 입구의 주택이 파손된 신정숙(64)씨는 대구에 사는 친언니와 아들 집을 전전하며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수지 둑이 무너지면서 하천 물이 집으로 들이닥쳤고, 10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이 쓰던 작은방이 순식간에 뜯겨져 나가면서 집 전체가 내려앉았다.

신씨는 “수해를 입고 두 번 정도 집에 가봤는데 다 쓸려 나가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며 “놀란 가슴도 진정하지 못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리를 해야 하나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과 산지로 유명한 죽장면은 사과 밭마다 흙 대신 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어른 주먹만한 돌들이 50㎝ 이상 높이까지 메운 곳도 있었다. 하지만 마을 진입로가 비탈지고 좁아 대형 중장비가 투입되지 못해 돌을 치우는 작업 속도도 더디기만 했다.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봉계리 주민 강명호(62)씨가 지난달 31일 태풍 오마이스가 몰고 온 폭우와 함께 떠내려 온 돌들로 뒤덮인 사과밭에서 애써 키운 사과나무를 매만지고 있다. 김정혜 기자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봉계리 주민 강명호(62)씨가 지난달 31일 태풍 오마이스가 몰고 온 폭우와 함께 떠내려 온 돌들로 뒤덮인 사과밭에서 애써 키운 사과나무를 매만지고 있다. 김정혜 기자

죽장면 봉계리 주민 강명호(62)씨는 “힘들게 돌을 치웠더니 물살 탓에 사과나무 뿌리가 다 뽑혀져 덩굴처럼 얽혀 있더라”며 “뿌리가 뽑히면 땅속 영양분을 빨아들이지 못해 더 이상 사과를 키울 수 없게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죽장면 석계리 마을은 산사태로 굴러 내려 온 돌들이 농수로를 막았지만, 중장비로 꺼내기 어려운 상태였다. 비가 또 내리자 하천이 범람할 것을 걱정한 주민들은 군 장병들과 맨손으로 참호를 파듯 돌을 퍼 올리고 있었다. 급기야 소방서에 진압용 호스로 뚫어달라 요청했고, 포항북부소방서장이 살수차를 동원해 직접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수로에 잔뜩 끼어 있는 돌무더기는 미동조차 없었다.

경북 포항북부소방서 살수차가 지난달 31일 태풍으로 산사태가 난 포항시 북구 죽장면 석계리에서 돌에 막힌 농수로를 뚫고 있다. 김정혜 기자

경북 포항북부소방서 살수차가 지난달 31일 태풍으로 산사태가 난 포항시 북구 죽장면 석계리에서 돌에 막힌 농수로를 뚫고 있다. 김정혜 기자

1일 포항시에 따르면 죽장면 지역의 예상 복구비용은 1,454억원으로 집계됐다. 유실된 도로와 교량 등 공공시설 복구에 197억원, 돌무덤이 된 하천 개선 복구에는 1,005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부서진 집과 농경지 등 사유시설 복구에는 252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은 행정안전부에 죽장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조기 선포해달라고 건의하고 나섰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추석 명절이 코 앞인데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민이 있을 정도로 복구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비가 계속 와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신속히 복구될 수 있도록 정부의 조속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태풍 '오마이스'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지난달 24일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교 연결 도로가 끊어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태풍 '오마이스'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지난달 24일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교 연결 도로가 끊어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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