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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거시기' 장르의 브라질 영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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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거시기' 장르의 브라질 영화가 온다

입력
2021.09.02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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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개봉하는 브라질산 이색 하이브리드 장르 영화 '바쿠라우'

영화 '바쿠라우'의 도입부. 광활한 브라질 북동부 내륙의 풍광과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를 떠나 보내는 전통 장례식 풍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바쿠라우'의 도입부. 광활한 브라질 북동부 내륙의 풍광과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를 떠나 보내는 전통 장례식 풍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사 진진 제공

'거시기(whatsit)' 장르.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201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브라질 영화 ‘바쿠라우’를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미스터리 스릴러, 슬래셔 호러, 서부극, 정치극에 심지어 SF와 마술적 리얼리즘까지 아우르는 이 기묘한 장르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바쿠라우'는 2016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아쿠아리우스'의 클레베 멘돈사 필류 감독이 자신의 데뷔작부터 줄곧 미술감독으로 함께했던 줄리아누 도르넬리스와 처음 각본을 함께 쓰고 공동 연출한 작품이다. 두 감독은 모두 브라질의 북동부 도시 헤시피 출신이다.

영화의 배경도 브라질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가운데 하나인 세르탕(포르투갈어로 오지라는 뜻의 브라질 북동부 내륙 지역)의 시골 마을이다. 북동부 지역은 브라질에 노예로 끌려 온 흑인들이 자유를 얻은 뒤 정착한 곳으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는 바쿠라우 마을의 족장 카르멜리타를 떠나 보내는 전통 장례식과 함께 시작한다. 바쿠라우는 밤에만 사냥하는 새를 뜻하는 이름으로 실재하지 않는 가상 공간. 여러 인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 마을은 최근 시장의 농간으로 급수가 차단돼 불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연임을 노리는 시장이 유통기한 지난 음식과 폐기 직전의 헌책 무더기, 마약성 진통제를 선심 쓰듯 풀어놓고 간 뒤 마을에는 이상한 일들이 잇달아 생긴다. 총격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식수 차량, 마을의 존재가 사라진 인터넷 지도, UFO(미확인 비행물체)처럼 생긴 드론의 출현, 농장에서 풀려나 마을까지 달려온 말들. 난데없이 나타난 두 명의 바이커…

무슨 이야기인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던 영화는 정체불명의 미국인들이 등장하면서 괴짜 하이브리드 장르 영화로 탈바꿈한다. 마지막 40분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일본영화 ‘7인의 사무라이’ 같은 서부극과 슬래셔 호러, 디스토피아적 SF, 핏물이 흥건한 하드보일드 액션이 공존하는 진귀한 풍경이 후반부를 장식한다.

플롯만 놓고 보면 괴짜 장르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매우 정치적인 영화다. 서부극의 주객을 전복시킨 복수극 형식부터 그렇다. 장르적 형식 뒤에는 브라질의 고질적 문제인 북부 지방의 소외, 빈부 격차와 계층 갈등, 인종 차별, 제국주의적 야만 등의 이슈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북동부 지역 특유의 역사적, 지정학적 맥락이 바탕에 깔려 있는 건 물론이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룽가는 1960년대 브라질 영화에서 자주 등장했던 캉가수(산적) 캐릭터와 현대 액션영화의 영웅 캐릭터를 결합시킨 인물이다.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룽가는 1960년대 브라질 영화에서 자주 등장했던 캉가수(산적) 캐릭터와 현대 액션영화의 영웅 캐릭터를 결합시킨 인물이다. 영화사 진진 제공

개인의 삶과 지정학, 역사를 엮는 서사 전략은 필류 감독의 전작 ‘아쿠아리우스’와 결을 함께하는 부분이다. '아쿠아리우스'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 중산층·하층민의 주거지가 지도상으로 뚜렷이 나뉜 헤시피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개인적 삶과 역사를 엮으며 자본의 폭력에 맞서는 한 노인의 투쟁을 그린다. 주연을 맡았던 명배우 소냐 브라가는 ‘바쿠라우’에도 출연했다.

‘바쿠라우’는 브라질 영화의 전통을 이으며 선배 감독들에게 경의를 바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두 감독은 196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브라질 고유의 민중 문화를 그렸던 영화 운동 '시네마 노보'의 대표 감독들인 글라우베 로샤, 호베르투 산투스,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투스 등의 영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시네마 노보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1960년대 브라질의 저항 문화를 이끌었던 갈 코스타, 제라우두 반드레 등 MPB(보사노바, 삼바, 재즈 록 등을 녹여낸 브라질의 팝음악) 가수들의 1960년대 음악은 그중 하나다.

브라질의 역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바쿠라우'는 뜻하지 않게 브라질 영화의 암울한 미래를 예언하는 은유가 됐다. 영화 속 시장이 물길을 끊듯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문화부를 폐지하고 영화계 지원을 중단하는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 억압에 나선 것이다. 2016년 칸영화제 당시 탄핵 위기에 처해 있던 호세프 전 대통령을 지지해 정부의 눈 밖에 났던 필류 감독과 도르넬리스 감독은 바쿠라우 주민들처럼 극우 정권에 맞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안팎으로 브라질 영화의 현재를 첨예하게 보여주는 작품인 셈이다. 2일 개봉. 상영시간 131분, 청소년 관람불가.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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