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 몰리는 대출 가수요 폭발
신용대출 연봉 이내· 마통 5,000만 원
대출절벽 오기 전... "진짜 막차 타자"
#5년 차 한의사 A(42)씨는 최근 한 시중은행에서 급하게 신용대출(8,000만 원)을 받았다. 올 10월 주택 매매 잔금일을 앞두고 주택담보 및 신용대출 계획을 세웠던 A씨는 최근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대출 규제에 미리 신용대출부터 실행했다. 당장 쓰지도 않는 돈에 두어 달치 이자가 붙는 게 아깝지만 그때 가선 아예 대출이 안 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A씨는 "의료인 우대상품으로 작년까지 3억 원은 받을 수 있던 신용대출 한도가 1년 새 최대 1억 원으로 줄었다"며 "이마저도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은행을 찾았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멈추라는 금융당국 압박에 시중은행들이 줄줄이 대출을 중단하거나 한도를 줄이자, 우려했던 가(假)수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은행들이 내달부터 본격적으로 '연봉 이내' 한도로 신용대출을 내주기로 하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자 '대출 구멍이 아예 막히기 전에 미리 받자'는 수요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기 전까지 이런 가수요 쏠림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5대 은행 일주일 새 신용대출 2.9조↑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6일 현재 신용대출 잔액은 143조1,804억 원으로 지난 20일 이후 일주일 새 약 2조9,000억 원 불었다. 증가 폭으로 보면 지난 직전 일주일(13~19일·약 4,600억 원)의 6.2배로 뛰었다.
특히 신용대출 가운데 마이너스통장 잔액이 지난 일주일 새 2조7,0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이 기간(20~26일) 개설된 마이너스통장 수만 무려 1만5,366개에 달했는데, 이는 앞서 7일(13~19일) 개설된 마이너스통장(9,520개)보다 61% 급증한 결과다.
이는 앞으로 시중은행에서 연봉 이상의 신용대출을 받거나 한도가 5,000만 원이 넘는 마이너스통장을 뚫기가 어려워진 데 따라, 대출을 미리 받아 두려는 가수요가 몰린 탓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27일 5대 은행과 외국계(씨티·SC제일은행) 및 인터넷은행(카카오뱅크·케이뱅크) 등은 금융감독원에 신용대출 상품 대부분의 최대 한도를 '연봉 이내'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금융당국의 집중 규제 대상이던 NH농협은 이미 개인 신용대출 한도를 '1억 원·연 소득의 100%'로 줄였고, 하나은행도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제한한 상태다. 나머지 은행들도 대부분 '9월 중' 같은 내용을 실행하겠다는 입장을 당국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너스통장 대출 한도 역시 대부분의 시중은행(신한·하나·우리)이 일찌감치 한도를 5,000만 원으로 낮춘 데 이어, KB국민은행도 조만간 같은 규제에 나설 계획이다.
대출절벽 앞 "미리 뚫은 자가 승자"
이전까지는 주요 시중은행에서 개인 신용대출은 일반 직장인의 경우 1억5,000만 ~2억 원, 의사 등 전문직의 경우 최대 3억 원까지 한도가 나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느 직종이든 연 소득 범위 내에서만 대출이 가능해진다.
체감상 한도가 많이 줄어드는 탓에 '타격'이 큰 고소득자(의사 전문직 포함)를 중심으로 최근 대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직장인 B씨는 "사실 주거래 은행에선 올해 초부터 한도가 줄고 금리는 올라 대출절벽을 실감한 상태였다"며 "동료들 사이에선 '대출은 미리 받은 자가 승자'란 말이 오간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실상 다음 달부터는 '억대 마통'이 자취를 감추는 등 신용대출 한도가 쪼그라드는 만큼, 진짜 막차를 타려는 대출자들의 문의가 당분간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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