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 교원 채용시험을 시도교육감에게 위탁하는 내용을 담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교육계에서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사립학교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는 모두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시각 차이가 크다. 논란이 될 게 자명한 사안을 의견수렴 없이 밀어붙이는 모양새가 내년 선거를 염두에 둔 포퓰리즘적 행태라는 지적도 많다. 사학들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헌법소원에 나서겠다고 밝힘에 따라 논란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립 교원 채용시험도 징계도 교육청에 위탁
29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30일 열릴 국회 본회의에 상정,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교육위원회, 25일 법제사법위원회도 여당 단독으로 일사천리 통과된 만큼 본회의에서도 강행 처리가 예상된다.
개정안은 사립학교가 신규 교원을 뽑을 때 1차 필기시험을 교육청에 위탁해 시행하도록 의무화한다. 현재는 필기시험 위탁을 권고사항으로 두고 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여당이 교원 임면권을 학교장에게 위임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재단이 임면권을 갖는 대신 공개전형을 의무화하고 시도교육감에게 위탁할 수 있게 했다. 정의당이 교육부 자료를 분석한 ‘사립학교 신규 교원 채용시험 교육감 위탁 현황’에 따르면 전국 사립학교의 교원 채용 위탁률은 2017년 38.5%에서 △2018년 36.6% △2019년 49.5% △2020년 63.2% △2021년 67.2%로 꾸준히 상승했다.
위탁률 상승 배경에는 웅동학원 채용 비리와 같은 ‘사학 흑역사’가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3~2017년 5년간 채용 비리에 연루돼 징계를 받은 사립학교 관계자가 234명으로, 이 중 62명이 파면?해임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따르면 국민권익위원회 사학비리·부패 신고센터에 최근 1년간(2019년 6월~2020년 6월) 접수된 사안 중 인사·채용 비리가 108건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때문에 대구 등 일부 교육청은 1차 필기시험을 교육감에 위탁하면 장려금을 지원하는 유도책을 써왔다.
개정안은 이 밖에 △사립학교 교사 외에 직원 징계권까지 교육청이 관할하고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의 법적 성격을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상토록 했다. 이렇게 되면 학교법인의 회계처리, 예·결산이 학운위 심사?의결로 확정된다.
여론 수렴 없이 강행... "정교사 채용 감축 검토 중"
개정안에 대해 전교조, 전국교사노조연맹 등 진보 교원단체들은 환영 입장을 내놓았다. 전교조에 따르면 한 해 7조 원이 넘는 돈이 사립학교로 들어간다. 사립학교는 교직원 급여, 건물 증·개축 비용, 화장실 개선 공사비, 칠판과 책걸상 교체 비용 등 교육 활동에 필요한 비용 대부분에 해당하는 학교 운영비를 모두 지원받는다. 전교조는 “무상교육 시대에 걸맞게 사학의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의당도 찬성한다. 송경원 정의당 교육정책위원은 “1차 필기시험만 교육청에 위탁할 뿐 교원 최종 선발권은 사립학교가 갖고, 교육감 승인을 받은 경우 필기시험을 다른 시험으로 대체하거나 위탁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사학 채용의 공정성, 투명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사학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안배한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개정안 처리 강행에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개정안이 사학 운영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헌재는 2001년 “사립학교는 설립자의 의사와 재산으로 독자적인 교육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므로, 사립학교 운영의 독자성을 보장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적 요체”라고 결정했다. 24일 국회 법사위에서도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통해 “개정안이 헌법상 보장되는 사학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므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여당은 단독으로 처리를 강행했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일부 사학 비리를 이유로 사학의 인사권을 박탈하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조희연 교육감의 특별채용이 ‘특혜’로 판결나면 교육감 특채 권한도 없앨 건가”라고 비판했다.
국민들의 사학 불신을 이용한 정치적 개정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한 교육계 인사는 “교육계가 수십 년째 사학 비리 척결 방안을 요구했지만, 여당이 하필 지금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건 내년 선거를 의식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라며 “여당도 개정안의 위헌 가능성을 모르진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섭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은 “사학 비리 해결을 목표로 개정한다면 비리 사학에 처벌 수위를 강화하고 내부 고발자 보호?보상 규정을 강화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를 비롯한 사학 단체들은 개정안 본회의 통과에 대비해 헌법소원 제기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의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이경균 사립초중고협의회 사무총장은 “개정안은 사학의 자율성을 헌법의 기본권으로 정한 2007년 대법원 판결에 어긋난다”며 “필기시험 위탁을 거부하거나 정교사 채용을 줄이는 단체행동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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