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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잘라야 한다고요?

입력
2021.08.28 10:00
수정
2021.08.2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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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가 쓰는 건강 칼럼] 김병준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손톱에 생긴 암인 흑색종일 때 이전에는 무조건 손가락을 잘랐는데 최근 병변 부위만 절제하는 수술을 할 정도로 수술 기법이 발전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손톱에 생긴 암인 흑색종일 때 이전에는 무조건 손가락을 잘랐는데 최근 병변 부위만 절제하는 수술을 할 정도로 수술 기법이 발전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평소 친분이 있던 다른 병원 성형외과 교수의 연락을 받았다. “김 교수, 잘 지내지? 내 환자 중에 가시에 찔려서 손가락에 상처가 생겼는데, 몇 달이 지나도 낫지 않고 상처가 악화되어 오셨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김 교수가 좀 봐줄 수 있어요?”

며칠 뒤 외래에서 뵙게 된 환자는 평소 건강하던 60대 남성이었다. 병력을 청취해보니 평소 산을 즐겨 타는 분이었다. 2년 전 산에서 엄지손톱을 가시에 찔려 상처가 생겼고, 인근 병원을 방문하여 소독 치료를 6개월간 받았다고 했다. 이후 손톱을 뽑는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궤양ㆍ진물ㆍ통증이 생겨 성형외과 진료를 받았다고 하였다.

손톱 조직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염증, 육아 조직으로 변했지만 손톱뿌리 부근에 검은 색소 병변이 보였다. 일반적으로 이물질 등에 의해 염증이 발생하면 항염증제ㆍ항생제 등을 먹고 원인이 되는 물질을 제거하면 낫는다. 하지만 적절한 치료에도 병변이 한 달 이상 낫지 않고 진행한다면 피부 악성 종양 등을 의심해야 한다.

조직 검사 결과, 악성 흑색종으로 확진되었다. 이미 깊게 진행된 상태로 엄지손가락 절단이 불가피하였다. 환자는 기겁을 했다. “엄지손가락을 자른다고요? 아직 젊고 일도 많이 해야 하는데 절대 안 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위이기에 미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기도 하지만, 엄지손가락이 없어지면 손 기능의 40%가 떨어진다. 엄지가 없다면 유인원처럼 주먹을 쥐고 펴는 일밖에 할 수 없다. 미세한 손가락 기능은 모두 엄지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과거에는 무조건 손가락을 잘랐는데 최근에는 조금 더 보존적으로 병변 부위만 절제하고도 예후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병변 절제 후 남은 결손 부위는 신체 다른 부위의 피부 전체를 가져와 덮는 ‘피판술(Skin flap surgery)’ 등으로 재건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절단술을 시행해도 복원은 가능하다. 다만 이때에는 발가락을 희생해야 한다. 엄지발가락이나 2번째 발가락을 뼈와 인대, 굴곡건, 신전건, 신경, 혈관과 함께 잘라내 이를 미세혈관 수술로 엄지로 만드는 최고난도 수술이다.

이 환자도 엄지손가락을 절단하고 엄지발가락을 이용한 전이술(轉移術)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수술 전에 시행한 전이 검사에서 악성 흑색종이 이미 림프절, 폐, 간으로 전이돼 있는 4기(말기) 흑색종으로 확인되었다.

빨리 항암 면역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결국 엄지손가락 절단만 시행하고 복원술은 다음으로 기약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전이가 된 상황에서는 예후가 좋지 않아 복원술을 시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모든 암은 조기에 발견하여 뿌리째 뽑는 것(외과적 절제)이 제일 중요하다. 이 환자처럼 진단이 늦으면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일도 적고, 확률적으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조피에 흑색종이 번진 환자가 가장 위험하다. 서울대병원 제공

하조피에 흑색종이 번진 환자가 가장 위험하다. 서울대병원 제공

대부분 손발톱 악성 흑색종은 손발톱에 검은색 띠 모양으로 나타난다. 이를 흑색조갑증(melanonychia)라고 한다. 흑색조갑증이 모두 흑색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겉으로 보았을 때 악성 흑색종을 의심할 수 있는 ‘ABCDE’가 있어 자가 검진에 이용할 수 있다.

A는 나이(Age)가 40대를 넘거나 혹은 아시아인 등 특정 인종 (Asian 혹은 African American)을 의미한다. B는 검은색 띠(Band)의 폭을 의미하며, 3mm가 넘으면 악성 흑색종의 위험도가 높아진다. C는 변화(Change)를 의미하는 것으로, 병변 크기나 색상 등 양상이 변화하는 것을 일컫는다.

D는 병변이 발생한 손가락(Digit involved)을 의미하며, 엄지손톱이나 엄지발톱에 발생하면 다른 손가락ㆍ발가락에 발생하였을 때보다 악성일 위험성이 높다. E는 확장(Extension)을 가리키며 검은색 띠가 손톱을 넘어서 주변의 손가락 살 부분까지 번지는 것을 뜻한다.

손발톱 흑색종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요약ㆍ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의심이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 의심을 가지고 관찰하자. 진행돼 신경조직을 침범할 때까지는 대부분 증상이 없으므로 통증ㆍ궤양 등이 생기면 이미 병변이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위에 기술한 ABCDE에 근거하여 손톱ㆍ발톱의 색소 병변이 더 진해지거나 범위가 더 넓어지지는 않는지 관찰해야 한다. 한 달 간격으로 동일한 조건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변화를 기록한다면 질환 진단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②전문의 진료를 받는다. 손발톱 악성 흑색종은 발병률이 높지 않고 무좀ㆍ외상 등 다른 원인에 의한 병변과 감별이 어려워 오진율이 높다. 대학병원 성형외과, 피부과 전문의 중에서 피부암을 세부 전공하는 의료진에게 진료받는 것을 권한다. 필요 시 조직 생검 등의 정밀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

③충분한 시간을 두고 경과 관찰을 한다. 흑색 조갑증은 시간이 흐르면서 진행하거나 악성화될 수 있다. 양성 병변이라고 안심하지 말고 반드시 정기검진하기를 권한다.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다. 가볍게 여겨 대증치료에만 의존한다면 병을 키울 수 있다. 반대로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진행된 병변이어도 더 늦기 전에 수술ㆍ방사선ㆍ항암 면역 치료 등을 받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병준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김병준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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