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일 취임 1,000일
소방수 역할 자임했으나, 경제사령탑으로선 아쉬워
여권 압박에 선회, "정부 정책 신뢰도 타격" 우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는 5일 취임한 지 1,000일을 맞게 된다. 올해 4월 이미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842일)의 최장수 재임 기록을 넘어선 그는 사상 처음으로 재직 1,000일의 최장수 경제사령탑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홍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 두 번째 경제사령탑으로 2018년 12월 취임한 뒤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는 등 ‘경제 소방수’ 역할을 자임했다. 그러나 건건이 여당에 이끌려다니며 경제 컨트롤타워로선 아쉬운 정책 추진력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는다. “최장수 부총리 비결이 예스맨”이란 세간의 혹평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재정준칙 존중하겠다더니...내년 ‘슈퍼 예산’ 편성
2일 당정 안팎의 평가를 종합하면, 홍 부총리는 여당과 긴밀하게 공조하며 주요 정책을 발 빠르게 추진해왔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경기침체에 전력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지난해 국내 경제성장률(-0.9%)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다섯 번째로 높았다. 코로나 충격을 최소화했다는 뜻이다. 홍 부총리는 2025년까지 160조 원을 투입해 일자리 19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한국판 뉴딜' 정책 마련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여당과의 협력관계에 발목 잡혀 자신이 추진한 정책을 번번이 뒤집는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 모습도 보여 왔다. 대표적인 게 재정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한 재정준칙이다.
급격한 확장재정으로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자 정부는 지난해 10월 ‘한국형 재정준칙’을 마련한 뒤 그해 12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60%,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겠단 내용이다. 당시 홍 부총리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재정준칙 적용 시기를 2025년으로 정했으나 2022년, 2023년 예산을 짤 때도 준칙을 존중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해마다 역대 최대 예산을 마련한 정부가 내년에도 올해보다 8% 이상 증액된 604조 원 안팎의 예산을 편성하기로 하면서 재정준칙은 시행도 하기 전에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2차 추경 편성시 전망한 올해 말 국가채무비율은 47.2%, 통합재정수지 적자비율은 ?4.5%다. 기준선(-3%)을 넘긴 적자비율 등을 재정준칙 산식에 대입해 계산한 값은 1.2다. 재정준칙에서 정한 한도치(1.0)를 이미 웃돈다.
재정준칙을 지키려면 내년부턴 총지출을 줄여야 하지만 확장재정을 강조한 여당 압박에 떠밀려 정부 역시 사상 처음으로 600조 원을 넘긴 ‘슈퍼 예산’을 들고 나온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건전성이 지금처럼 빠르게 악화하면 국가신용등급 강등 등의 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국회에서도 9개월째 방치된 상태다.
정부 정책 방향 중심 잃어 우려 상당
홍 부총리가 도입을 공언했거나, 주도적으로 추진하다가 정치권 입김에 표류·무산된 정부 정책도 부지기수다.
불과 두 달도 안 돼 없던 일이 돼 버린 1주택 고령자 대상 종합부동산세 납부유예도 그중 하나다. 홍 부총리는 앞선 6월 “종부세 개편안 검토 초기부터 과세이연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만큼 제도를 도입해볼까 한다”며 종부세 납부유예 방안 마련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달 19일 종부세 부과 기준을 완화하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납부유예까지 함께 추진하는 데 부담을 느낀 여당이 해당 법안을 폐기하면서 무산됐다.
지난해 11월에는 현재 주식 양도소득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 기준을 3억 원으로 낮추겠다고 했다가 여당 압박에 물러서 현행 수준(10억 원)을 유지하기로 했다. 2023년부터 도입되는 금융투자소득세의 기본 공제액도 2,000만 원으로 제시했다가 반발이 들끓자 한 달 만에 5,000만 원으로 부랴부랴 수정했다.
홍 부총리가 국장이던 2011년 제출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벌써 10년째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보건·의료 분야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조항 때문에 의료 민영화 논란에 발목 잡힌 탓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에 이끌려 다니는 홍 부총리의 오락가락 행보로 정부의 정책 방향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대한부동산학회장)는 “부총리가 공언한 정책마저 정치 논리에 밀려 뒤집히면서 정부 정책 신뢰도에도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됐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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