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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신화 속 인물의 이름 붙인다? 그리스의 실험은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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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신화 속 인물의 이름 붙인다? 그리스의 실험은 통할까

입력
2021.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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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부터 폭염 이어지며 그리스 전역 피해 극심
전문가 "미래 기후 예고편... 더위 과소평가 말아야"
국립천문대 측 "폭염 이름이 피해 예방에 도움 될 것"

8일 그리스 에비아섬의 페프키 마을이 불에 뒤덮인 모습. 그리스와 터키는 수십 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폭염으로 2주 넘게 산불과 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해를 키운 폭염이 기후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에비아=AFP 연합뉴스

8일 그리스 에비아섬의 페프키 마을이 불에 뒤덮인 모습. 그리스와 터키는 수십 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폭염으로 2주 넘게 산불과 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해를 키운 폭염이 기후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에비아=AFP 연합뉴스

폭염에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 이름을 붙인다?

올여름 기록적 폭염으로 대형 화재 등 큰 피해를 본 그리스가 앞으로 더위에도 태풍처럼 이름을 붙이고 등급을 매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그리스 과학자들이 극한의 고온에서 비롯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서 특별한 이름을 다는 연구를 시작했다고 전했는데요.

그리스는 올해 6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역대급 폭염을 겪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로 찾아온 폭염은 거의 3주 가까이 이어졌는데요. 지난주에는 기온 상승으로 아테네시 근교에 큰 산불이 나는 등 이례적으로 길고 강한 더위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코스타스 라구바르도스 아테네 국립천문대 연구실장은 가디언 주말판 '업저버'에 "그동안 더위를 과소평가했다"며 "이번 폭염은 20~30년 후 미래의 기후를 예고한 것과 다름없다"고 경고했는데요. 이어 "폭염은 소리도 없고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잠재적 살인마'"라며 "더위에 이름이 있다면 앞으로 생길 문제에 사람들이 더 잘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폭염에 시달린 것은 그리스뿐만이 아닙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의 온도계에는 11일 관측 사상 유럽 최고 기온인 48.8도가 찍혔습니다. 그러나 아테네는 유럽 본토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지구온난화 피해 규모도 그만큼 클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3일 북부 그리스에서는 관측 사상 최고 기온인 47.1도가 기록됐어요.

더위 자체도 문제지만 이 때문에 발생하는 화재도 심각해요. 방화, 과실로 시작된 불씨가 고온과 가뭄으로 크게 번지면서 최근 몇 주 동안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리스 에비아섬에서는 산불을 피해 주민과 관광객 수백 명이 대피했어요.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최악의 산불 속에서도 제대로 대응을 못 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자 결국 사과했습니다. 그는 "전례 없는 날씨로 일주일 동안 600여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사실상 온 나라가 화약고가 됐다"고 말했는데요.

이번 기후 재난으로 그리스는 폭염을 책임지는 장관급 자리를 따로 만들었고, 섬 재건 및 피해자 지원에만 5억 유로(약 68억 원)를 쓴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라구바르도스 박사는 이런 상황에서 "폭염에 이름과 등급을 매기는 것은 온도 분포와 인구밀도를 규격화하고 분류해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이라면서도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40도 이상의 기온이 일주일 이상 계속되면 특별한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4년 전부터 국립 천문대가 이상기후 이름 직접 관리

피에르나르시스 게랭의 1815년 작 '디도에게 트로이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아이네이아스'. 디도는 카르타고의 시조이자 최초의 여왕이다. 디도는 연인 아이네이아스가 떠나자 그를 저주했고 훗날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는 포에니 전쟁이 발발한다. 트위터 캡처

피에르나르시스 게랭의 1815년 작 '디도에게 트로이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아이네이아스'. 디도는 카르타고의 시조이자 최초의 여왕이다. 디도는 연인 아이네이아스가 떠나자 그를 저주했고 훗날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는 포에니 전쟁이 발발한다. 트위터 캡처

그리스에서 이상기후에 특별한 이름을 다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해요.

아테네 국립천문대는 2017년 1월부터 인명 및 재산 피해를 가져오는 악천후에 이름을 붙이는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리스 온라인 매체 '그릭리포터' 등에 따르면 아테네 국립천문대2019년 이후 그리스를 강타한 주요 폭풍에 라파엘, 소피아, 텔레마코스 등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코스타스 라구바르도스 국립천문대 연구소장은 폭풍에 이름을 붙인 이유를 "시민들이 이상기후 때문에 발생하는 재난에 더 잘 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는데요.

그는 "세계기상기구(WMO)가 '열대성저기압'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어려운 수치와 기술 용어에 따로 이름을 붙이면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고 경고 메시지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며 "이미 많은 지역에서 폭풍 등 거센 바람에 따로 이름을 붙여왔다"고 덧붙였어요.

한국을 비롯한 14개 나라가 북태평양 서부 열대 해상에서 발생한 강력한 폭풍우를 동반하는 저기압인 태풍(Typhoon)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떠올리면 됩니다.

그렇다고 그리스에서 모든 이상기후 현상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니에요.

악천후에 이름이 붙으려면 다음 중 하나 이상의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①넓은 지역에 걸쳐 영향을 주거나 아테네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 영향을 주는 경우 ②예상 강우량이 홍수를 유발하는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③낮은 고도, 둘 이상의 고속도로가 만나는 지점, 공항에 내리는 눈뿐만 아니라 도시 일상에 영향을 줄 정도의 강설이 예상되는 경우 ④바다에서는 바람이 시속 75~88㎞, 내륙에서는 시속50~61㎞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등이에요.

이 중 하나 이상의 조건을 채우고 축제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행사가 예정돼 있으면 이름을 붙일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지오반니 실바니의 1820년 작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니케스의 대결'. 에테오클레스는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의 아들로 형제 폴리네이케스와 권력 다툼을 벌여 전쟁이 일어난다. 게티이미지

지오반니 실바니의 1820년 작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니케스의 대결'. 에테오클레스는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의 아들로 형제 폴리네이케스와 권력 다툼을 벌여 전쟁이 일어난다. 게티이미지

특히 명칭은 알파벳 순서로 남성과 여성의 이름을 번갈아 사용하며 신화의 나라답게 신화와 고대 역사 속 등장인물의 이름을 주로 사용하고 있어요.

국립천문대는 2019년 12월 폭설과 강우, 폭풍을 동반해 그리스 전역에 영향을 준 기상 전선에는 '디도'(카르타고의 왕)를, 북서부 지역에 폭설과 강풍을 예고한 기상 전선에는 '에테오클레스'(테베의 왕)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도 파악이 안 되고 관리가 어려웠다면 지금은 국립천문대가 기준을 만들고 거기에 맞게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의 규모를 예상하거나 그로 인한 피해 규모도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그리스 정부의 설명입니다.

앞으로 폭염의 이름도 폭풍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역사·신화 속 인물의 이름이 사용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엘레니 미리빌리 폭염 책임자는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방안을 두고 "사람들이 잠재적 위험을 더 잘 알게 되고 정책 결정자도 꼼꼼하게 대비책을 세워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홍승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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