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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탈레반 총구 앞에서 시위한 아프간 여성들

입력
2021.08.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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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허스토리’는 젠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오전 8시 발송되는 뉴스레터를 포털 사이트에서는 열흘 후에 보실 수 있습니다. 발행 즉시 허스토리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메일로 받아보시면 풍성한 콘텐츠, 정돈된 화면, 편리한 링크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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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당신이 공정하지 않은 신이라면 믿지 않겠다.
if you are not fair, I'm not ready to believe in you.

이슬람 문화와 가부장제에 온몸으로 맞서 싸운 이집트 출신 페미니스트 작가, 나왈 엘 사다위


Her View : 여성의 관점

아프가니스탄 언론인 로트풀라 나자피자다(Lotfullah Najafizada)가 지난 15일 트위터에 올린 카불 풍경. 여성의 얼굴이 광고판에서 지워지고 있다. 출처=트위터 '@LNajafizada'

아프가니스탄 언론인 로트풀라 나자피자다(Lotfullah Najafizada)가 지난 15일 트위터에 올린 카불 풍경. 여성의 얼굴이 광고판에서 지워지고 있다. 출처=트위터 '@LNajafizada'


<21> 신이시여, 저 땅의 여성들을 (8월 19일자)

안녕하세요, 독자님. 왠지 이번 뉴스레터를 시작하면서는 '안녕하세요!'라고 힘차게 인사하기가 어려운 마음이 듭니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조직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탈환했다는 소식에, 국제 정세에 대한 우려만큼이나 그 곳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많은 여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프간 여성들의 소식을 공유하며 마음을 보태고 있습니다.

▶대체 탈레반이 어떠하길래?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1996~2001년 사이 탈레반이 집권했던 이 시기는 가히 '여성 인권의 지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여성은 남성 동반자 없이 외출할 수 없습니다. 외출할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게 가리는 부르카를 입어야 합니다. 12세 이상 여자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13세 이상 여자아이들은 탈레반 조직원과 강제로 결혼해야 합니다. '여성 인권 말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탈레반은 "이슬람법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며 '히잡'만 쓰면 여성의 학업과 사회활동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이를 순수하게 믿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고작 20년 만에 후퇴하는 여성 인권

남은 이들은 절망합니다. 20년 동안 차츰차츰 쌓아올린 여성 인권의 진보였습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탈레반 집권기 여자 아동의 초등학교 진학률은 0~3% 수준이었지만 2018년엔 82%까지 올랐습니다. BBC에 따르면,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여학생의 비율은 2003년 6%에서 2017년 39%까지 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남성 못지않은 교육을 받아온 여성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다시 '노예'를 상징하는 부르카를 쓰게 됐습니다.

▶남아 있는 여성들의 외침

희망을 쉽게 입에 올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무력감과 좌절이 엄습합니다. 벌써부터 여성들은 노동 현장에서 떠나라는 압박을 받고 있고, 무장 대원의 가택침입도 빈번해집니다. 여성들은 정부에서 일했다는 자료나 대학 졸업장을 숨깁니다.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한 여성을 총살했다는 소식도 전해집니다. 탈레반 점령지 곳곳에서 여성을 조직원과 강제 결혼시키거나 과부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며 분투하는 아프간 여성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외침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기록합니다.

랑기나 하미디(Rangina Hamidi)

"만약 우리가 살아 남는다면, 내 딸 뿐 아니라 수백만의 딸들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자리파 가파리(Zarifa Ghafari)

-아프간 최초 최연소 여성 시장
"젊은이들은 진보와 우리의 권리를 위해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그들에게 이 나라의 미래가 있다." (카불 함락 3주 전)

아프간 여성 영화인 사흐라 카리미

"나는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침묵을 이해할 수 없다. 나라를 위해 머물러 싸우겠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당신과 같은 동맹이 필요하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주목하도록 도와 달라."

페미니즘 노래를 부르는 아프간 여성들

이란의 언론인 마시흐 알리네자드가 공유한 영상입니다. 촬영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과거 이란 여성들을 위해 노래한 것인데 가사가 절묘합니다. "다 함께 손 잡고 걸으며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는 생존할 것이다. 연대와 자매애로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탈레반 앞에서 시위에 나선 여성들

그리고 8월 17일 ... 카불 시내에서의 첫 여성 시위가 열렸습니다. 무장한 탈레반 대원 앞에서 여성 너덧 명이 종이에 구호를 쓰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총탄이 무서울 법도 한데 이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출처: 미디어 Pajhwok Afghan News 트위터 / 언론인 Shakeela Ebrahimkhil 트위터)

▶#prayforafghanistan

아프간 출신 유명인과 인권 운동가 등은 국제 사회가 아프간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슬람 근본주의 아래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삶을 그린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버려졌다. 그들의 꿈과 희망, 20년 동안 싸워온 권리는?"이라 되묻습니다. 여성·아동 인권운동가인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국제 사회는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고 긴급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며 난민과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97년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말랄라는 11살 무렵 탈레반의 여학생 교육 금지 방침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총격을 당했었어요.

탈레반 재집권 소식은, 국제 정세 측면에서도 빅뉴스예요. 하지만 오늘 허스토리는 '여성 인권'에 특히 초점을 맞춰 들여다봤어요. 지금 당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혼돈의 구름이 걷히고 나면 분명 한 사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 믿고 '연대의 힘'을 잊지 말아요. 아 참, 상단 Her Words에서 소개했던 이집트의 페미니스트 작가 '나왈 엘 사다위'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이 기사(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41509170005020)를 읽어보세요. 문화권, 나라, 시대, 종교를 막론하고 세상을 확장해가는 든든한 여성을 또 한명 알게 될 것이에요.

※ 포털 정책 상 본문과 연결된 하이퍼링크를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포털에서 이 뉴스레터를 읽으시는 독자는 아래 '관련 기사 링크'에서 연관 기사를 확인하세요!

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핸드메이즈 테일(시녀 이야기)

저출생이 심각한 현상으로 떠오른 미국. 강력한 가부장제와 종교 근본주의로 무장한 전체주의 국가가 등장해 여성을 배급하고 출산을 통제하는데...

여러분, 저는 아프가니스탄 소식을 접하고 이 작품이 곧바로 떠올랐어요. 마거릿 애트우드의 동명 소설 '시녀 이야기'를 토대로 한 디스토피아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이에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직장을 다니며 잘 살고 있던 어느 날, 총기로 무장한 괴한들이 여성 직원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요. 그리고 갑자기 '여성의' 은행 계좌만 동결되죠. 체제가 전복된 겁니다. 이후, 미국이었던 땅에 새로 들어선 나라 '길리어드'에서 여성은 임신 가능 여부로 계급이 나뉘어요. 정부는 고위직 남성에게 시녀를 배급하고, 여성은 오로지 출산을 위한 도구로 전락합니다. 여성은 이름을 잃고 '누구의 소유물'이라는 호칭을 얻어요. 이곳에서 재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불임 여성은 식민지에 보내지고, 동성애자는 배성자(성을 배신했다는 뜻)라는 낙인이 찍혀 사형 당합니다.

소설 속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고 생각했던 설정이 오늘날 아프간 여성들에겐 더 이상 허구가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학교에 가지 못할 처지에 처한 여자 아이들, 남자를 동행하지 않으면 외출도 하지 못하는 종속된 삶, 부르카를 쓴 채 존재를 드러내서는 안 되는 여성들. 먼 땅의 그녀들이 놓인 처지에 함께 절망하게 되는 건 저 뿐만이 아니겠지요. 아프간 여성들의 안위와 평화를 바라며, 오늘 뉴스레터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 본 뉴스레터는 2021년 8월 19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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