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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시설 200개 다닥다닥 허가... 삶의 터전이 '저주받은 곳'으로

입력
2021.08.30 04:30
수정
2021.09.28 14:3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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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건강영향조사 청원 8개 지역 환경은

편집자주

어느 곳에 사느냐는 권력의 척도가 됐다. 소각로·공장·매립장이 들어서며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들. 암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곳도 있다. 그런데, 목숨에도 등급이 매겨진 걸까. 정부는, 사회는 조용하다. 서울 한복판이라면 어땠을까. 지난 10년 주민들이 '인근 시설로 환경이 오염돼 질병에 걸렸다'며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한 곳은 8곳에 이른다. 한국일보는 대책 없이 방치된 이들의 삶을 8회에 걸쳐 보도한다.


인천 서구 사월마을의 주택들은 200개 가량의 폐기물 처리 공장에 둘러싸여 있다. 인천=홍인기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인천 서구 사월마을의 주택들은 200개 가량의 폐기물 처리 공장에 둘러싸여 있다. 인천=홍인기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주민들이 환경오염에 따른 질병을 호소하며 조사 청원에 나선 곳은 문제가 하루 아침에 생긴 곳이 아니다. 공기가 오염될 때까지 소각로 인근에 또 소각로를 짓고 쓰레기매립지 옆에 폐기물업체들이 몰려들도록 허가한 안이함은 어느 순간, 누군가의 생의 터전을 '저주받은 곳'으로 만들었다.

인천 서구 왕길동 사월마을의 피해는 1992년 수도권매립지가 조성되면서 시작됐다. 매립지 인근으로 폐기물 중간 처리업체가 들어서서, 2019년 기준 52가구가 거주하는 지역에 각종 사업체 약 200개가 위치한다. 폐콘크리트를 부숴 골재(모래)로 만드는 대형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 각종 금속 가공 업체, 폐기물재활용 업체들이 즐비하다.

전북 익산 함라면 장점마을은 2001년 마을 약 1km 지점에 들어선 비료제조업체(금강농산)가 오염원이었다. 담뱃잎 찌꺼기(연초박)를 태워 비료를 만들었다. 연초박은 태울 경우 1군 발암물질인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이 배출돼서, 땅에 썩히는 ‘퇴비’ 원료로만 써야 하지만 불법으로 태웠다. 2009년부터 6년간 환경부 자원순환시스템(올바로시스템)에 공식 기록된 것만 약 2,242톤의 연초박이 사용됐다.

시멘트, 석탄이나 석유, 휘발유 등 유류를 주로 나르는 동해항과 불과 50m 떨어진 강원 동해 송정동에서는 마을 어디서나 항만과 우후죽순 들어선 관련 산업시설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송정동에서 바라본 인근 시멘트 공장의 모습. 동해=김용식 PD

시멘트, 석탄이나 석유, 휘발유 등 유류를 주로 나르는 동해항과 불과 50m 떨어진 강원 동해 송정동에서는 마을 어디서나 항만과 우후죽순 들어선 관련 산업시설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송정동에서 바라본 인근 시멘트 공장의 모습. 동해=김용식 PD

강원 동해시 송정동 일대는 1979년 동해항이 개항하며 분진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멘트, 석회석, 아연ㆍ망간 정광석, 석탄원료 등을 운반하는 항구로 국내 5번째 규모다. 인근에 세계 최대 규모 쌍용시멘트 공장과 국내 최대 합금철 공장인 동부메탈이 위치해 있다. 2014년 기준 총 3만425톤의 화물이 운반됐다.

대구 동구 안심동 안심연료단지는 1971년 대구와 인근 지역 연탄공장이 이주하며 형성됐다. 1971년에 6개 연탄 제조 업체가 들어섰고, 1994년 이후 아스콘ㆍ레미콘 제조 공장 3곳이 새로 들어섰다. 1991년까지 매년 100만 톤이 넘는 연탄을 생산했다. 당시 대부분의 연탄공장이 주원료인 석탄가루를 별다른 장치 없이 적재해서 비산먼지ㆍ무연탄ㆍ석탄입자 등 대기오염물질이 바람에 쉽게 확산됐다. 현재는 이 단지는 없어지고 뉴타운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 5일 부산 강서구 생곡쓰레기매립지로 향하는 도로에 이동 중에 떨어진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다. 부산=왕태석 선임기자

지난 5일 부산 강서구 생곡쓰레기매립지로 향하는 도로에 이동 중에 떨어진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다. 부산=왕태석 선임기자

부산 강서구 생곡마을은 1994년 생곡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며 주민 피해가 시작됐다. 이후 침출수 처리시설ㆍ매립가스 발전시설(1996년), 음식물처리시설(2000년), 폐비닐유화시설(2007년), 생곡자원재활용센터(2008년), 생활폐기물 연료화 시설(2010년), 하수 슬러지 육상처리시설(2013년) 등 11개 폐기물 처리시설이 들어섰다. 이 밖에 고물상ㆍ고철상 등 폐기물 중간처리업체 120여 곳이 있다.

강원 횡성 한 마을의 가축분뇨처리시설은 2009년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매일 가축분뇨 약 130톤을 비료로 만들 수 있다. 약 2,400톤 규모의 퇴비 저장 시설도 갖췄다. 약 50m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마을 주민들은 가축분뇨를 퇴비화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유독가스가 주변 토양과 주민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며 지난해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했다. 시설은 지난해 중순 적자를 이유로 가동을 중단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낙인 효과로 농산물이 팔리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어, 지역을 익명처리했다. 제대로 된 보상 체계가 없다보니, 피해자인데도 움츠러드는 상황이다.


지난달 29일 충북 청주 북이면에 위치한 클렌코(구 진주산업) 소각로 공장의 모습이 도로 반사경에 비치고 있다. 청주=홍인기 기자

지난달 29일 충북 청주 북이면에 위치한 클렌코(구 진주산업) 소각로 공장의 모습이 도로 반사경에 비치고 있다. 청주=홍인기 기자

충북 청주 청원구 북이면엔 1999년 우진환경개발이 소각시설을 설립했다. 이후 클렌코(2001년), 다나에너지솔루션(2010년) 등이 들어서 2017년 기준 하루 약 534.84톤의 폐기물을 소각할 수 있다. 1999년 대비 약 36배 늘어난 수치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엔 1997년 전선 제조업체인 ‘삼진전선’과 2004년 플라스틱 필름 제조업체 ‘대동’이 들어섰다. 주민들은 공장이 들어선 이후 20년간 축적된 오염물질 탓에 마을 주민 37명 중 12명이 암에 걸렸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가가 버린 주민들

<1부>이들이 겪어온 고통

①질병이 덮쳐오다

②배상은 어디에

③이웃도, 생계도 잃다

④화 돋우는 지자체

※매주 월·목요일 연재합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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