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반복되는 성추행·따돌림… "침묵 깨고 행동할 때 세상은 바뀐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반복되는 성추행·따돌림… "침묵 깨고 행동할 때 세상은 바뀐다"

입력
2021.08.20 04:30
18면
0 0
전 세계 '미투' 운동을 촉발한 미국의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지난해 2월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뉴욕 맨해튼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성범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3년형을 선고받은 와인스틴은 추가 재판을 위해 지난달 뉴욕주에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넘겨졌다. 뉴욕=AP 연합뉴스

전 세계 '미투' 운동을 촉발한 미국의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지난해 2월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뉴욕 맨해튼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성범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3년형을 선고받은 와인스틴은 추가 재판을 위해 지난달 뉴욕주에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넘겨졌다. 뉴욕=AP 연합뉴스

침묵은 때로 악이 된다.

여중사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했을 때 군 당국이 침묵 대신 적극 개입을 선택했어도 이들이 세상을 등졌을까. 성폭력, 학교에서의 따돌림, 상사의 부정행위 등 악을 보고 침묵하는 것은 큰 부정적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나 대신 누군가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방관자 효과'의 파장은 실로 엄청나다.

신간 ‘방관자 효과'는 방관과 무관심이 초래하는 나비 효과를 목격한 심리학자가 침묵이 아닌 행동을 이끌 방법을 강구한 실천적 지침서다. 저자는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격렬한 외침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인용하며, 사람들이 집단 속에서 도덕적 기준에 대한 감각을 잃는다고 진단한다. 좋지 않은 행동 앞에서 침묵하려는 인간 본성을 과학적으로 파헤치고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방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바로 그 침묵을 깸으로써 낡은 문화에 대한 반성과 혁신의 단초를 제공한 대표적 사례인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 성추문 폭로 취재기를 담은 '그녀가 말했다'도 때마침 번역 출간됐다.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NYT)의 관련 보도는 3년간의 취재, 수백 건의 인터뷰 끝에 나왔다. 두 권의 책은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도덕적 용기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도덕 저항가'의 시작은 용기 있는 첫걸음부터

캐서린 샌더슨 미국 앰허스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17년 아시아계 탑승객이 미국 유나이티드항공 여객기에서 강제로 끌어 내려진 사건 등을 지켜보면서 왜 사람들이 불의를 방관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시 초과 예약을 받은 항공사가 일방적 결정으로 승객에게 물리력을 행사했지만 현장에 있던 다른 승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만 분노를 표출했을 뿐 그 누구도 행동하지 않았다.

저자는 사람들이 나쁜 행동이 지속되도록 허용하고 침묵하는 심리적 요인을 설명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힘에 저항하는 실용적 방법을 소개한다. 선한 사람들이 침묵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비롯해 수많은 심리학 연구와 실험을 동원했다.

고 이모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장모 중사(왼쪽 세 번째)가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고 이모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장모 중사(왼쪽 세 번째)가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저자는 도덕적 용기를 보여주는 '도덕 저항가'를 키워야 침묵하고 방관하는 문화를 용기있게 행동하는 문화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함께 싸울 친구를 찾고, 사회적 집단의 실질적 기준을 널리 알리는 등 작은 변화부터 이루도록 훈련하라고 역설한다.

방관자 효과·캐서린 샌더슨 지음·박준형 옮김·쌤앤파커스 발행·364쪽·1만7,000원

방관자 효과·캐서린 샌더슨 지음·박준형 옮김·쌤앤파커스 발행·364쪽·1만7,000원


'기밀 유지 서약'으로 침묵시켜도 피해자들은 연대했다

2017년 10월 5일 조디 캔터·메건 투히 NYT 기자의 와인스틴 성추문 폭로 기사는 전 세계적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의 시발점이었다.

'그녀가 말했다'는 와인스틴이 할리우드에서 감독과 제작자 등으로 일해 온 30년간 100여 명의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폭로 보도를 하기까지 NYT의 취재 과정을 담은 책이다.

와인스틴 특종은 오랜 고민 끝에 침묵을 깨고 기사화에 동의한 피해자들의 용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다.

와인스틴은 '기밀 유지 서약'으로 피해자들을 침묵시켰다. 그는 추악한 비밀을 지켜내려 마지막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출신이 운영하는 첩보회사 '블랙큐브'를 고용해 성추행 의혹을 고발하려는 여배우들을 뒷조사하기도 했다.

책 말미에는 2018년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였던 브렛 캐버노의 성폭행 의혹도 다룬다. 와인스틴 사건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 이후 1년간 여성들은 달라졌다. 고등학생 때 캐버노 지명자로부터 성폭행당할 뻔했다고 폭로한 크리스틴 포드 팰로앨토대 교수는 온갖 정치적 공격에도 끝내 캐버노의 인사 청문회 증언석에 섰다. 캐버노는 결국 대법관으로 인준받았지만 와인스틴 관련 보도가 여성들의 침묵을 깨는 물꼬를 튼 셈이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사명감으로 성취한 취재 과정을 상세히 다뤄 탐사 보도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한다. 탐사 보도를 무디게 할, 정치권이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법이 적용될 한국에서라면 이 같은 보도를 볼 수 있을까.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할리우드 영화화가 예정될 만큼 긴장감을 놓치지 않은 전개로 가독성과 몰입감이 높은 점은 덤이다.

그녀가 말했다·조디 캔터·메건 투히 지음·송섬별 옮김·책읽는수요일 발행·460쪽·1만6,000원

그녀가 말했다·조디 캔터·메건 투히 지음·송섬별 옮김·책읽는수요일 발행·460쪽·1만6,000원


김소연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