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임금 8% 인상 등 담은 사측 최종안 찬반투표 실시
해운재건 희석·해운대란 부담… 파업 실현은 미지수
요즘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옛 현대상선)의 속내는 복잡하다. 사상 최대실적 행진에 함박웃음도 지을 법하지만 임금 인상을 둘러싼 노조와의 갈등에 속앓이는 깊어지고 있어서다. 노조 측에선 "낮은 임금으로 인력 유출 우려까지 현실화되고 있다"며 '임금 정상화'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상황에서 단기간의 호실적을 이유로 과도한 임금 인상은 어렵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코로나19 효과일 뿐… 임금 25% 올릴 만큼 체력 갖췄나
18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HMM 사측은 이날 노조 측에 임금 8% 인상안과 성과급 500%를 지급하는 최종안을 제시했다. 앞서 사측은 4차례 진행한 노조와의 교섭에서 임금 5.5% 인상과 성과급 200% 지급을 제안했지만 노조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측의 최종안에 대해 노조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찬반 투표를 실시한다. 사측은 주채권자인 산업은행을 설득해 조정안을 마련한 만큼 협상 타결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이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비록 교통비·복지카드 포인트 등을 포함하면 실질적인 임금 인상률은 두 자릿수를 넘는다고 하지만 임금 25% 인상과 성과급 1,200% 지급 등을 내세운 노조의 요구안에 비하면 간극이 크다.
전례 없는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사측과 채권단은 여전히 파격적 임금 인상에 부정적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3조 원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른 만큼, 구성원들의 희생은 필수적이란 시각이다. 또 다른 걸림돌은 불확실성이다. 최근 HMM의 매 분기 '깜짝실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급등한 해상운임 덕분이다. 코로나19로 글로벌 물동량이 급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만약 물동량이 평시 수준으로 떨어지면 해상운임은 다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현재 노조 측에서 주장한 임금 인상은 HMM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게 회사 측 판단이다.
파격적 임금 미끼로 노골적 선원 빼가기 현실화
노조 측의 생각은 다르다. HMM 노조 관계자는 "장기간 임금이 동결되면서 낮아진 임금 수준 탓에 글로벌 해운사의 인력 빼가기 타깃이 되고 있다"며 "파업을 하지 않아도 선원이 없어서 배가 멈추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력 유출을 방지할 수준의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최근 글로벌 2위 해운사인 스위스의 MSC는 한국인 선원 채용 공고를 낸 데 이어 HMM이 용선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현대 글로벌호' 선원 10명에게 입사지원서 전달과 함께 이직을 제안했다. 현대 글로벌호는 HMM의 대여 기간이 끝나면 MSC에서 대여해 운항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승선 경험이 있고,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HMM 선원들을 사실상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MSC는 현재 HMM 선원이 받는 급여의 2배가량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10년이던 HMM의 평균 근속연수는 지난해 상반기 8.39년으로 줄었다. 그만큼 숙련된 선원들이 이탈했다는 뜻이다.
중소형 선사에서의 경력직 채용도 어려운 형편이다. HMM의 평균 직원 급여는 중소형 선사보다도 낮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HMM이 최근 스마트 해운 시스템 도입을 위해 개발자 채용에 나섰는데, 최종 합격한 개발자들마저 '임금이 이렇게 낮은 줄 몰랐다'며 입사를 포기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해운 재건은 문 정부 공적… 파업 현실화 가능성은 낮아"
HMM 사측과 노조는 20일까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조정회의를 거쳐 막판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중노위 조정에서도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HMM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파업을 맞게 된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까지 고려하면 파업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 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HMM의 초대형 선박 명명식과 출항식 등에 두 번이나 참석할 정도로 공들인 산업 정책이라 파업으로 빛이 바래는 걸 정부도 원치 않을 것"이라며 "노조 역시 해운대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파업 카드는 부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HMM 노조는 청와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HMM 육·해상 노조 위원장은 이달 초 청와대를 찾아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를 만났고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배가 서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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