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만난 신진서(21) 9단은 명인전 결승 승부처를 되짚어 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거침없이 바둑알을 옮겼다. 무려 2년 전 대국까지 복기할 수 있다는 말에 그를 왜 '신공지능(신진서+인공지능)'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국내 랭킹 1위 신진서는 올해도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달 새 3개 타이틀을 휩쓸었고, 20개월 연속 국내 랭킹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7일 끝난 제44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 결승 3번기에서 변상일(24) 9단을 꺾은 신진서는 우승 소감으로 "입단했을 때부터 욕심나는 자리였다"고 했다. 우승을 밥 먹듯 하는 그에게 타이틀 하나 더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을 것도 같은데 명인전은 어떤 특별함으로 다가왔을까. 신진서는 "세 번 참가했는데 처음엔 예선 탈락했고, 두 번째는 2016년 이세돌 선배님에게 16강에서 졌다. 당시엔 이세돌 선배님과 10판 두면 운 좋게 한두 번 이기는 수준이었다"면서 "그땐 실력이 안 됐고, 기량이 늘었을 땐 대회가 중단됐다. 패자부활전을 통해 어렵게 왔지만 세 번째 도전 끝에 9명뿐인 44번째 명인에 올라 영광스럽고 뿌듯하다"고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신진서는 바둑을 잘 둘 뿐 아니라 승부사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랭킹 시드를 받아 본선에 직행한 그는 16강 첫판에서 변상일에게 불계패했다. 패자부활 방식이 없었다면 대회 초반 이변의 희생양이 되면서 그대로 탈락하는 상황이었다. 신진서는 "상대가 변상일 9단이었기에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면서 "졌지만 내용적으로 납득할 만했고, 강한 상대를 첫판에 만난 게 오히려 약이 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패자조로 떨어진 신진서는 6연승으로 부활해 결승에서 다시 만난 변상일에게 역전승으로 되갚았다.
명인전뿐 아니라 앞서 열린 쏘팔코사놀 최고기사결정전, GS칼텍스배에서도 1국을 패했지만 결국 승부를 뒤집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서막은 지난 2월 25일 열린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이었다. 당시 신진서는 중국 기사 2명, 일본 기사 2명을 내리 꺾고, 세계 1인자로 군림해온 중국팀 주장 커제 9단마저 쓰러뜨렸다. 농심배 22년 역사에서 두 번째 '끝내기 5연승'이 이뤄진 순간으로, 한국은 중국에 빼앗겼던 농심배를 3년 만에 탈환했다. 신진서는 "과거엔 연습 대국에서만 져도 바둑판을 엎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승부욕이 과했다"면서 "요즘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려 한다.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진서는 2016년 이후 잠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2018년 박정환을 제치고 처음으로 랭킹 1위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신진서의 시대를 열었다. 2018부터 3년 연속 다승ㆍ승률ㆍ연승 3관왕을 차지했다. 그가 꼽는 터닝포인트는 2019년 LG배 우승이다. 신진서는 "박정환 선배님의 벽이 높았다. 9연패 중이었는데 결승에서 만나 운 좋게 이기면서 부담을 덜고 바둑에 자신감이 붙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면서 "이제 시작이라 생각하고 선배 기사들이 워낙 잘했기 때문에 아직 그분들의 단계를 말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자세를 낮췄다.
명인전 우승으로 국내기전 5관왕에 오른 신진서는 세계대회인 응씨배와 춘란배 결승전도 앞두고 있다. 그는 "쉽게 우승하는 거보다는 지더라도 강한 기사를 만나 피터지게 싸우는 게 도움이 되고 넓게 봤을 땐 결국 세계대회 성적이 중요하다"면서 "국내에선 더 이상 큰 욕심은 없다. 이제는 세계대회에 좀 더 집중하고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싶다"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