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영화제 개막작 '티나'의 댄 린지 감독
남편과 듀오로 음악 활동을 했다. 1960~70년대 큰 인기를 누렸다. 부와 명성이 쌓였다. 아내의 재능이 돋보이자 남편은 질투와 시기를 했다. 신혼에 시작된 폭력이 일상화됐다. 돈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탈피하기 어려웠다. 아이들 양육이 신경 쓰였다. 결혼한 지 만 16년이 되고서야 탈출을 감행했다.
마흔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무일푼으로 홀로서기에 나섰다. 무대를 집어삼킬 듯한 춤과 가창력으로 대중을 다시 사로잡았다. “관객으로 대형 스타디움을 꽉 채운 채 공연하고 싶다”는 꿈을 이뤘다. 미국 가수 티나 터너(82)는 이혼 후 홀로 더 높은 곳에 이르렀다.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인 다큐멘터리 영화 ‘티나’는 한 여성이 고난을 딛고 대중음악 역사에 새겨질 성취를 이뤄내는 과정을 면밀히 돌아본다. ‘티나’의 댄 린지 감독을 13일 오후 충북 제천의 한 카페에서 만나 영화 안팎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T. J. 마틴 감독과 ‘티나’를 공동 연출했다. 2012년엔 ‘언디피티드’로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기도 했다.
린지 감독은 “티나의 솔로 활동을 MTV(미국 음악전문 케이블채널)로 보고 자란” 세대다. 전작 ‘LA 92’(2017)를 함께 한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영화 연출에 나섰다. 그는 “(대중에게 삶이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에게서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처음엔 연출을 망설였다”고 했다. 하지만 린지 감독은 “티나의 인생 이야기가 매우 강력하고 진정한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역사가 담겨 매료됐다”고 했다.
영화는 1981년 티나가 미국 유명 잡지 '피플'에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과거를 처음 털어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티나의 고백은 당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남편 아이크 터너(1931~2007)는 로큰롤의 전설 같은 인물이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아이크는 10대 후반 티나를 발굴한 후 아이크 앤 티나 터너라는 듀오를 결성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둘은 방송에 종종 출연해 화목한 부부 사이를 과시하기도 했다. 겉보기와 달리 결혼 생활은 착취와 피착취 관계였다. 아이크는 티나의 재능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었다. 티나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린지 감독은 티나의 인생 역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출 과정에서 이전에 몰랐던 세세한 부분까지 알게 됐고, 여기에서 나오는 미묘한 차이를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티나가 이혼할 때 노래 저작권 등 다른 건 다 포기하고 티나라는 이름만 가져가겠다고 주장한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녀의 본명은 애나 메이 불럭이고, 티나는 아이크가 만들어준 예명이다. 티나는 남편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후 그래미상을 12회 받았다.
린지 감독은 스위스 취리히에 살고 있는 티나를 네 차례 인터뷰했다. 그녀의 삶을 토대로 한 뮤지컬 ‘티나’가 2019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을 때도 만났다. 티나를 만나 가장 놀랐던 점은 “지금도 과거를 이야기하다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다”는 거였다. 린지 감독은 “티나의 강한 이미지와 역경을 이겨낸 과정을 고려했을 때 여든이 넘은 그녀가 여전히 힘들어한다고 해 예상 밖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티나의 상처가 되살아날까 봐 조심스러웠다. “세세한 과거는 자료 조사를 통해 영화에 반영하고, 티나와의 작업은 지금의 상태, 과거를 돌아보는 심정을 듣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가장 큰 우려는 완성된 영화를 티나가 본 후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였다.” 집에서 영화를 본 티나는 로스앤젤레스 시간으로 새벽 3시 프로듀서와 화상통화를 했다. “티나가 입이 양쪽 귀에 걸릴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만족했다고 하더군요.”
티나는 1986년 자서전 ‘나, 티나’를 냈고, 1993년엔 그녀의 삶을 담은 극영화 ‘왓츠 러브 갓 투 두 위드 잇?(What’s Love Got To Do with It?)’이 만들어졌다. 티나가 마음의 상처가 덧날 수 있는데도 말년에 다큐멘터리 제작에 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티나에게 계속 물어봤던 점입니다. 끝까지 대답을 안 했지만, ‘내 입을 통해 나와 관련된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자’라고 생각한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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